의사가 가격을 임의로 정할 수 있는 ‘비급여’ 진료가 실손보험금 누수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어린이병원.  한경DB
의사가 가격을 임의로 정할 수 있는 ‘비급여’ 진료가 실손보험금 누수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어린이병원. 한경DB
자궁 근종을 치료하는 하이푸시술 비용은 병원마다 천차만별이다. 서울 A의원에서 30만원에 받을 수 있는 이 시술을 경남 B의원에선 83배 비싼 2500만원을 받는다. 이처럼 가격 차이가 큰 진료 항목은 수두룩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하지정맥류 수술은 병원에 따라 최대 33배, 백내장수술용 다초점렌즈는 30배 차이가 난다.

의사가 마음대로 정하는 비급여 진료비가 실손보험 보험료를 올리는 주범이란 지적이 나온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는 의사가 자체적으로 가격을 결정한다. 처음 온 환자에게 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묻고 보험에 가입돼 있으면 ‘환자와 병원에 윈윈’이라며 고가의 비급여 진료를 권하는 의료 관행이 자리잡은 배경이다.

백내장·도수치료·전립선 시술까지

 30만원짜리 근종 시술비, 실손 가입자엔 2500만원
2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13개 손해보험사의 올해 상반기 기준 실손보험 위험손해율은 120.2%로 집계됐다. 지난해 평균 117.6%에 비해 2.6%포인트가량 올랐다. 손해율은 보험사가 지급한 보험금을 받은 보험료로 나눈 값이다. 올 상반기 보험사가 가입자로부터 100원가량의 보험료를 받았는데, 이보다 20.2원 더 많은 금액을 보험금으로 돌려줬다는 얘기다.

보험사만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다. 손해율이 상승할수록 보험사는 가입자에게 받는 보험료를 올리기 때문이다. 혜택은 소수가 보고 부담은 전체 가입자가 나눠 지는 셈이다.

손해율이 높아진 가장 큰 원인은 비급여까지 보장하는 실손보험 구조에 있다는 분석이다. 실손보험은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는 급여 항목에서의 본인부담금과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의 비용까지 보장한다. 보건당국으로부터 진료 수가와 진료 대상, 진료량을 관리받는 급여 진료와 달리 비급여 진료는 의사가 가격을 매기고 횟수와 양도 늘릴 수 있는 관리 ‘사각지대’에 있다.

작년에 지급한 전체 보험금 12조8900억원 중 비급여는 7조8600억원으로 60% 이상을 차지했다. 문제가 되는 비급여 항목은 백내장수술 도수치료 영양주사 하지정맥류 맘모톰시술 등 다양하다. 보험사가 한 진료 항목에서 보험금 청구를 깐깐하게 살펴보면 또 다른 항목에서 새로운 문제가 벌어지는 식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실손보험 손해율 관리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다”고 했다.

올해 들어선 발달 지연, 여유증, 전립선 비대증과 관련한 지급 규모가 크게 늘어났다. 고액의 전립선 시술인 전립선결찰술과 관련된 한 보험사의 월평균 지급 보험금은 작년 7억900만원에서 올해 8억9900만원으로 26.8% 뛴 것으로 나타났다.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자 경험이 없는 산부인과 의사까지 높은 가격을 매기고 전립선결찰술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4세대 상품 손해율도 악화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문제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손해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지자 실손보험을 취급하는 보험사는 2012년 25곳에서 지난해 15곳으로 줄었다. 금융당국은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가입자의 자기부담금을 높이는 방향으로 실손보험 구조를 개선해왔다.

실손보험 구조를 바꿨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실손보험은 1~4세대로 분류된다. 2021년 7월 출시된 4세대 실손보험은 비급여에 대한 과잉 이용을 제한하기 위한 여러 장치를 뒀다. 급여보다 비급여 자기부담금이 높고, 각자 비급여 진료를 많이 받으면 보험료가 비싸지도록 했다. 가입자 수를 늘리기 위해 올해까지 보험료 ‘반값 할인’도 하고 있다.

하지만 4세대 실손보험의 손해율도 올 상반기 10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해율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 고심 끝에 내놓은 상품도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본다는 얘기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출시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손해율이 크게 나빠져 당혹스러운 분위기”라며 “비급여 진료체계에 변화가 없으면 보험상품 구조 개선만으로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한종/강현우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