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간, 조선시대 한글로 쓴 편지

[신간] 재일조선인 미술사 1945-1962
▲ 재일조선인 미술사 1945-1962 = 백름 지음. 노유니아·정성희 옮김.
김창덕, 김창락, 백령, 전철, 표세종, 성리식, 김희려, 한동휘, 박일대, 리철주, 리경조….
재일 조선인 미술가들의 해방후 15년간에 걸친 활동 기록을 담은 책에 등장하는 낯선 이름들이다.

'재일 코리안' 3세인 저자는 1962년에 발행된 '재일조선인미술가화집'을 실마리로 삼아 생존한 미술가들과 유족을 찾아 세밀한 조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화집에 게재된 도판 45점을 포함해 일본어와 조선어로 발행된 신문과 잡지의 기사, 사진, 회의록, 문건을 시각적으로 제시하는 한편 재일조선미술회의 기관지였던 '조선미술'의 해제도 부록으로 실었다.

책은 민족 교육을 위해 싸웠던 '4.24 한신교육투쟁'과 '제주 4.3 사건'을 포함한 한국전쟁, 4.19 혁명 등의 사건도 그려냈다.

액자와 캔버스에 담긴 유화, 판화, 삽화, 표지화, 만화 등이 격동의 시간을 표현한다.

[신간] 재일조선인 미술사 1945-1962
저자는 자신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계통이어서 한국에서 처음 출판하는 이 책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불안하다는 심정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저자는 책 발간이 분단의 고착화를 조장할 의도가 아님을 밝히면서, 알려지지 않은 미술가들이 제대로 평가받아 과거의 아픈 역사를 치유하고, 궁극적으로 한반도가 하나가 되는데 밀알이 될 목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도쿄대학에서 유학하면서 노유니아를 우연히 만나 '언니, 동생' 사이로 지냈던 사연과,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 코리안 4세 정성희 번역자와 함께 책을 펴내게 된 감동도 소개했다.

연립서가.

514쪽.
[신간] 재일조선인 미술사 1945-1962
▲ 언간, 조선시대 한글로 쓴 편지 = 이남희 지음.
"전편 편지 부친 것이 인편에 함께 갈듯하며…(중략)…벌써 여러 달을 편찮으시어 모든 근력이 오죽하시겠소? 우록전을 자시나 보니 그 약에나 쾌히 차도가 있을지 멀리서 심려 초조하고 간절하기 형용 못 하겠소…(후략)"
제주에 유배된 추사 김정희는 아내 예안이씨에게 보낸 이 언간(한글 편지)에서 병을 돌볼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담았다.

그러나 아내는 이 편지를 쓰기 5일 전 세상을 떠났고, 김정희는 그 사실을 몰랐다.

선조는 후궁 인빈 김씨와의 사이에서 난 딸 정숙옹주를 지극히 아껴 명의 허준의 처방을 제시하는 내용을 포함해 17건의 한글 편지를 보냈다.

흥선대원군은 중국 톈진(天津)에서 유폐 생활을 할 때 장남 이면제에게 '비밀 유지'를 위해 한문이 아닌 한글로 편지를 썼고, 사대부 송규렴은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 노비를 꾸짖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책은 여성과 양민, 천민 등 말고도 왕과 사대부 등이 주고받은 한글 편지의 내용을 분석했다.

왕실과 사대부가의 언간에는 기존 정치사에 드러나지 않았던 권력자의 고뇌, 왕후의 정치적 간섭, 한문으로 적을 수 없었던 비밀스러운 이야기 등이 담겼다.

명성황후는 조선 후기의 정치가 송시열에게 조정에 복귀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사대부가에서는 첩을 들인 남편을 구구절절 원망하는 편지도 등장했다고 한다.

16세기 중반부터 한글이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언간은 성별과 계층의 높고 낮음을 넘어 공유물이 됐다.

한문은 사대부 계층 이상 남성들의 전유물이었기에, 한글 편지는 받는 사람을 위한 배려와 소통의 수단이었다고 한다.

한문이 공적이라면 언간은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수단이었다.

희로애락, 생로병사 등 다양하고도 생생한 삶의 모습들이 보편적인 글쓰기 형태로 전개됐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은행나무.244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