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은퇴자의 천국’으로 불린다. 한 달에 1000만원 이상의 연금을 수령하면서 해외여행, 골프를 즐기는 은퇴자가 수두룩하다. 반면 한국 직장인 상당수는 집 한 채에 전 재산을 건다. ‘주식시장에 투자하면 패가망신한다’는 통념 때문에 예·적금 등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돈을 묶어두는 사람도 많다. 사교육비나 내 집 마련을 위해 연금계좌를 깨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2013년부터 2019년까지 7년간 연평균 9.49%. 같은 기간 한국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2.27%로 미국의 4분의 1토막 수준이다. 그만큼 한국 직장인들은 퇴직연금 관리에 무심했다. 하지만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2030세대가 연금시장에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직장인도 미국 직장인처럼 얼마든지 연금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확대되면서 과거보다 S&P500 나스닥 등 해외시장에 손쉽게 투자할 수 있게 됐다. 세제 혜택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래픽 = 이정희 기자
그래픽 = 이정희 기자

IRP 세액공제 한도 900만원으로 상향

연금관리를 위한 첫걸음은 본인의 연금계좌 운용 방식부터 확인하는 것이다. 먼저 확정급여(DB)형은 회사가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하고 근로자는 퇴직급여 계산식에 따라 정해진 퇴직금을 받는 방식이다. 퇴직할 때 평균 임금이 퇴직연금 정산에 반영되기 때문에 임금 인상률이 높은 기업의 직원에게 유리하다. 퇴직 시 지급액은 퇴직 직전 3개월간 월 평균 임금을 근속연수에 곱한 금액으로 결정한다.

확정기여(DC)형은 개인이 연금 운용을 책임진다. 회사가 매년 총급여의 일정 비율을 직원이 관리하는 계좌에 적립해주면 개인이 금융회사와 상품을 선택한다. 임금 인상률이 낮은 기업의 근로자에게 유리하다. 연금 운용 수익률을 임금 인상률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판단하면 이 방식이 좋다. 개인의 여유 자금으로 재테크하는 것보다 세금 측면에서도 혜택이 많다. 중장기 수익률을 목표로 투자한다면 DC형 연금계좌를 세밀히 관리해야 한다.

개인형퇴직연금(IRP)은 DB형이나 DC형 퇴직연금과 별도로 개인이 직접 가입하는 상품이다. 자금을 넣어 운용하다가 55세 이후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중간에 이직하더라도 연금을 정산하지 않고 계속 적립할 수 있다. 개인이 일정 금액을 납입하면 회사가 같은 금액을 매칭해서 넣어주는 방식으로 운용하는 경우가 많다.

IRP의 꽃은 세제 혜택이다. 납입한 금액에 비례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소득공제에 비해 체감할 수 있는 절세 효과가 크다. 세액공제율은 연간 총급여 5500만원(종합소득 4500만원) 이하에선 16.5%, 이보다 소득이 많으면 13.2%를 적용받는다. 특히 올해부터는 나이, 소득에 관계없이 세액공제 납입 한도가 700만원에서 900만원으로 확대됐다. 총급여가 5500만원 이하라면 최대 16.5% 환급률이 적용돼 148만5000원까지 돌려받을 수 있다.

과세이연 효과도

IRP는 과세이연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과세이연이란 말 그대로 세금을 내는 시기를 뒤로 미뤄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일반 증권 계좌에서 해외주식형 ETF에 투자하면 이익에 대해 15.4%의 배당소득세를 내야 한다. 하지만 IRP 계좌에서 해외주식형 ETF를 매매할 때 당장은 배당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미뤄놓은 세금은 나중에 만 55세 이후 연금을 손에 쥘 때 낸다. 세금으로 냈어야 하는 돈을 이자 없이 손에 쥐고 재투자할 수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연금계좌의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원리금 보장 일변도의 운용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ETF는 일반 펀드보다 수수료가 저렴하고 매매가 쉽다. 20~30대 직장인이라면 연금 계좌를 주식형 ETF 등 위험자산 70%, 예·적금과 채권 등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30% 비중으로 유지하는 방식을 추천한다.

지난 10년간 꾸준히 우상향한 미국 나스닥지수에 투자하는 ETF, 성장 기대가 큰 베트남 인도 등 신흥국에 투자하는 ETF,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ETF를 3분의 1씩 나눠 투자하는 전략도 좋다. 연금계좌에선 인버스와 레버리지 등 파생상품을 활용해 변동성이 큰 상품에는 투자할 수 없다.

40~50대부터는 안전자산 비중을 늘려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로 현금 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50대에는 거꾸로 위험자산 비중을 30%로 낮추고, 안전자산을 60%로 높이는 전략이 추천된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