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외로울 때 도쿄의 호텔 라운지바에 가면 생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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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정대건의 소설처럼 영화읽기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국내 포스터를 보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타이틀의 물음표에 하트 모양을 붙여가며 남녀 배우의 투 샷을 합성해 해두었다. (미국의 포스터에서는 전부 원샷으로 이루어진 독립된 장면이고, 이 작품의 원제 <Lost in Translation>은 ‘통역이나 번역 과정에서 말의 의미가 누락되었다’는 뜻이다.) 로맨틱 코미디 같은 뉘앙스를 주고 싶게 만든 마케팅 팀의 고충이 느껴진다.

영화가 시작되면 밥과 샬롯이 각각 고층의 호텔 방에 혼자 있는 장면,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장면이 반복되어 나온다. 두 사람의 쓸쓸함과 외로움이 잘 느껴진다. 연령대가 다른 두 사람은 호텔의 바에서 처음 만나는데, 같은 언어를 쓰고 잠이 통 안 온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샬롯은 갓 졸업을 했고, 갓 결혼을 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도시에서 샬롯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처럼 느낀다. 미래에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서 불안하다. 늙고 한물간 배우인 밥은 가족 생활이 예전 같지 않다.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자조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외로움에 교감한다. 그러나 섹슈얼한 사이로 넘어가지 않는다. 외국에 떠나와 이방인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비포 선라이즈>와 같은 설레는 만남을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으로 이어지는 만남이 아니어도 낯선 사람과 오래 기억에 남는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있다. 그런 대화들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더 잘 알게 된다. 창밖에 어둠이 짙게 깔린 밤 조도가 낮은 호텔의 바에서 낯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적적한 밤, 이 영화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