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와하푸르 화력발전소 조감도
자와하푸르 화력발전소 조감도
금융감독원이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가 2016년 말 인도에서 수주한 총 2조8000억원 규모의 화력발전소 공사에 대해 회계기준을 위반했다고 판단하고 징계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사 수주 후 원가 상승을 알고도 총 3000억원 안팎의 손실을 적시에 나눠 인식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회사 측은 회계기준 위반이 아니라고 맞서며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발주처와 원가 상승분 책임 분담을 놓고 분쟁 중이던 상황이라 손실을 반영할 수 없었고 분쟁 종결 후 확정 손실을 전액 반영해 적절하게 회계처리를 했다는 입장이다. 회계기준 위반 여부는 금융위원회 산하 회계전문기구인 감리위원회 심의와 증권선물위원회 의결을 거쳐 최종 결론 날 것으로 전망된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감리위원회는 지난달부터 두산에너빌리티 회계처리 위반 관련 심의를 벌이고 있다. 금감원은 2021년 4월부터 감리를 벌인 뒤 지난달 회사 측에 고의 등을 포함한 중징계를 예고하는 조치사전통지를 보내고 감리위 안건으로 올렸다.

감리위는 지난달 중순과 이달 초순 두 차례 심의했다. 오는 19일 금감원과 두산에너빌리티의 대질 방식으로 제3차 심의를 열 예정이다. 감리위는 다음달 초 심의를 마친다는 계획이다.

쟁점은 두산에너빌리티 인도 현지법인인 두산파워시스템즈인디아(DPSI)의 회계처리 위반 여부다. DPSI가 2016년 말 수주한 총 2조8000억원 규모의 자와하푸르 및 오브라-C 화력발전소 공사 진행 과정에서 원가 상승으로 발생한 손실을 적기에 회계처리했는지가 핵심이다.
오브라-C 화력발전소 조감도
오브라-C 화력발전소 조감도

금감원 "인도발전소 분식" vs 두산 "당시 손실 반영 불가"
금감원 "인도 손실 인지했으면 수주후 미리 나눠 처리했어야"

두산에너빌리티 회계기준 위반 논란의 시작점은 2020년이다. 그해 2월 두산에너빌리티가 공사 진행률을 높게 평가해 매출을 1조원 이상 과대계상했다는 의혹이 정치권에서 제기되며 금융감독원의 감리 촉구로 이어졌다.

회사 측이 이에 대해 “사업 특성상 3분기에 미청구 공사액이 높고 연말이 되면 낮아진다”고 해명하자 회계부정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금감원이 이듬해 4월부터 본격적인 회계감리에 나서면서 반전을 맞았다. 금감원은 감리 2년5개월 만인 지난달 두산에너빌리티가 2017~2020회계연도에 부실을 숨긴 의혹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해외 자회사 회계부정 놓고 공방

[단독] 두산에너빌리티 '분식회계' 논란
논란의 핵심은 인도 현지법인인 두산파워시스템즈인디아(DPSI)다. DPSI는 2016년 12월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에서 총 2조8000억원 규모의 자와하푸르 및 오브라-C 화력발전소 공사를 수주했다.

금감원은 수주 이후 원가 상승에 따른 손실 반영 회계처리를 문제 삼았다. DPSI는 화력발전소 수주 후 2017년 319억원, 2018년 291억원, 2019년 444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그러다 2020년엔 순손실이 3314억원에 달했다고 공시했다.

금감원은 2020년 순손실 중 대부분은 2017~2019년에 미리 나눠서 인식하는 게 정당한 회계처리였다는 입장이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수주 직후부터 발전소 총공사비 예정원가가 상승할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런데도 두산에너빌리티는 당시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 등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자 해외 수주사업 손실을 최대한 늦게 반영했다는 게 금감원 주장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회계기준 위반이 아니라고 맞섰다. 당시는 발주처와 원가 상승의 분담 책임을 놓고 분쟁을 벌이던 상황이기 때문에 손실이 확정되지 않아 반영할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이어 2020년 발주처와의 분쟁이 마무리돼 확정 손실을 일시에 재무제표에 반영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유동성 지원을 앞두고 있어 손실을 늦게 반영할 필요도 없었다는 주장이다.

증선위에서 최종 결론 날 듯

회계기준 위반 여부는 감리위원회 심의와 증권선물위원회 의결 등을 통해 최종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핵심 쟁점은 두산에너빌리티가 언제 확실하게 손실을 인지했는지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금감원이 감리 중 손실을 먼저 인지했다고 가늠할 수 있는 문건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두산에너빌리티는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였을 뿐”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계업계에선 두산에너빌리티가 2020년 손실을 모두 반영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증선위 단계에서 중과실 이하로 징계 수위가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공인회계사는 “손실이 확실한 상황에서 반영을 늦게 한 것은 문제일 수 있지만 불확실하다면 경영상 판단에 해당해 고의 분식으로 보기엔 무리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셀트리온, KT&G에 대한 회계감리 징계 과정에서도 금감원은 고의적 회계부정이라고 판단했지만 증선위는 중과실로 감경한 적이 있다.

수주산업 협상력 위축 우려도

산업계에선 두산에너빌리티 징계 수준을 떠나 이번 고강도 회계감리로 국내 수주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발주처와 원가 인상분을 놓고 책임 분담 협상을 벌이는 상황에서 원가 인상을 인지하고도 손실로 반영하지 않았다며 중징계를 내리면 발주처와의 협상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이 협상 와중에 손실로 회계처리한 것을 보고 해외 발주처가 지급 금액을 낮추는 데 악용할 여지도 생긴다는 지적이다.

한 서울 대학의 회계담당 교수는 “주주 이익을 보호해야 하는 회계가 오히려 영업에 지장을 줘 수주산업 경쟁력을 잃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