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요타는 지난해 약 1048만 대를 판매하며 글로벌 자동차 1위를 질주했다. 그러나 전기차 판매는 2만4000대 수준에 불과했다. 세계 20위에도 들지 못했다. 전기차 1위 테슬라(약 131만 대)의 5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내연기관차와 전기차의 중간 단계인 하이브리드카에 집착한 결과다.
'글로벌車 빅5' 모두 LG엔솔 배터리 단다
도요타는 ‘더 이상 뒤처지면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14년 만에 사령탑까지 교체했다. 지난 4월 취임한 사토 고지 도요타 사장은 ‘전기차 우선 사고방식’을 선언했다. 최근엔 2030년까지 30종, 연 350만 대의 전기차를 팔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전기차는 배터리가 핵심이다. 엔진과 달리 배터리는 도요타 혼자 만들 수 없다. 자국 업체인 파나소닉과 합작사를 세우긴 했지만 목표치를 달성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자존심을 접고 한국 최대 배터리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에 손을 내민 배경이다.

○1년6개월간 기술 검증

LG에너지솔루션은 5일 도요타에 2025년부터 연 20GWh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를 2035년까지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연 30만 대 수준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합작공장(JV) 형태가 아닌 단일 수주계약 중 역대 최대다. LG에너지솔루션은 연 3조원, 10년간 30조원 이상의 매출 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글로벌 완성차·배터리업계는 그동안 대부분 JV 형태로 손을 잡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에서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 혼다, 현대자동차그룹과 차례로 합작공장을 설립했거나 건설 중이다. 절반씩 투자해 자금 부담을 낮추고 안정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도요타가 JV 대신 공급계약을 맺은 것은 전기차 전환에 뒤처진 도요타 때문이다. 합작공장을 설립하려면 3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LG에너지솔루션의 기존 미국 미시간 공장에 도요타 전용 라인을 구축하면 2년 만에 납품이 가능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새 라인을 구축하는 데 4조원이 들어가지만 세계 1위 완성차 회사를 고객사로 확보해 고속 성장의 기반을 다졌다.

그렇다고 도요타가 성급하게 LG에너지솔루션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두 회사는 3년 전부터 물밑 접촉을 해왔다. 본격 협상은 지난해 상반기부터다. 도요타는 1년6개월가량 LG에너지솔루션의 기술력을 검증했다고 한다. 지난달 도요타 고위 경영진이 LG에너지솔루션의 충북 오창에너지플랜트를 찾아 최종 점검을 마쳤다.

○세계 1~5위에 모두 납품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계약으로 세계 1~5위 완성차 기업(도요타, 폭스바겐, 현대차·기아, 르노·닛산·미쓰비시, GM) 모두에 배터리를 공급하게 됐다. 세계 10위까지 넓히면 스텔란티스, 혼다, 포드, 볼보까지 아홉 곳을 고객사로 두게 됐다. 세계 10위 이내는 아니지만 전기차 1위인 테슬라까지 포함하면 전 세계 대부분 전기차가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를 장착하고 달리는 셈이다.

업계에선 LG에너지솔루션의 발 빠른 투자가 결실을 맺었다고 평가한다. 이 회사는 30년 전부터 기술 개발에 매진했고 2000년대 들어 수천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흔들림 없이 투자한 끝에 세계 선두권 업체가 됐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은 “도요타와의 새로운 협력이 북미 전기차 시장에 커다란 진전을 가져올 것”이라며 “북미 생산 네트워크와 제품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김일규/배성수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