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장 진출을 노리는 국내 스타트업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가 유망 기술 스타트업 투자·유치를 통해 산업별 디지털 전환(DX)을 주도하는 경제 정책을 펼치면서 국내 기술 스타트업에도 기회가 열렸다.

특히 관광 분야 기술 스타트업의 일본 진출이 활발하다. 2019년 촉발된 일본제품 불매운동 ‘노(no)재팬’ 물결과 코로나19 확산으로 수년간 얼어붙었던 한·일 관광시장이 지난 5월 양국 정상 간 셔틀 외교 복원을 기점으로 5년 전 수준을 거의 회복하면서다. 정부와 유관 기관도 트래블테크 기업의 일본 진출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캐플릭스 등 ‘성공 사례’ 잇따라

그래픽=전희성 기자
그래픽=전희성 기자
4일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여행 플랫폼 제주패스 운영사 캐플릭스는 일본 시장에서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 회사는 올해 초 일본 오키나와에 모빌리티 전사적자원관리(ERP) 솔루션과 키오스크 시스템을 도입해 해외에서 첫 렌터카 실시간 예약 서비스를 시작했다. 윤형준 캐플릭스 대표는 “제주패스로 달성한 매출 증가 기록보다 일본에서의 성장 속도가 더 가파르다”며 “내년에는 하와이, 괌을 시작으로 미국 본토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년 전부터 일본 진출을 준비한 숙박 큐레이션 플랫폼 스테이폴리오는 코로나 여파로 고전하다가 올 들어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이상묵 스테이폴리오 대표는 “다시 로컬화를 주제로 일본 도쿄와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호시노야, 아만 등 고급 리조트 브랜드와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고 설명했다.

○DX 기술 앞세워 시장 공략

이 밖에도 DX 기술력을 내세운 스타트업들이 일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카드 없이 모바일 앱으로 환전 후 즉시 ATM 인출이 가능한 캐시멜로는 홍콩, 타이완, 싱가포르에 이어 올해 일본으로 서비스를 확장한다. 로드시스템은 모바일 여권 신원인증 ‘트립패스’를 기반으로 면세 간편결제 서비스를, 더서비스플랫폼은 온라인 쇼핑 물품을 비대면으로 수령하고 세금을 환급받을 수 있는 ‘펀치 리워드’를 들고나왔다. 두왓은 호텔 DX 솔루션으로 일본 숙박업계를 공략할 계획이다. 교통 분야에선 최상위 항공권 유통 솔루션을 확보한 누아, 글로벌 출장여행객 모빌리티 플랫폼 무브, 운수회사와 고객 기업을 연결하는 그라운드케이가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체험을 제공하는 스타트업은 양국 여행객 모두를 노리고 있다. 취미 기반 소셜 액티비티 플랫폼 ‘프립’을 운영하는 프렌트립은 취향 기반으로 여행 경험을 제공하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관광지 연계 보상형 액티비티 게임 ‘플레인’을 개발한 핑퐁과 레이싱 테마로 ‘9.81 파크 제주’를 운영하는 모노리스도 일본 관광객을 공략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지난 8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진행한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 한국사무소 및 일본 벤처캐피털(VC) 대상 투자설명회(IR)에도 참여했다.

○관광수요 회복→기업 진출 ‘선순환’

국내 트래블테크의 일본 진출 행렬은 양국 관광시장이 회복된 영향이 크다. 외교 관계가 회복되자 양국 방문객 수요가 급증하고, 이에 따라 경제 교류도 활발해지는 선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들어 8월 말까지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655만2117명 가운데 일본인은 20.4%로 최대다. 이어 중국(15.7%), 미국(10.7%), 대만(9.2%), 베트남(4.1%) 순이다.

내국인의 해외 여행지 1순위 역시 일본이다. 올해 7월까지 1208만 명이 해외여행을 떠난 가운데 세 명 중 한 명은 일본(375만 명)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엔저와 무비자 입국 영향으로 일본 여행을 떠나는 한국인이 증가한 영향이다.

일본 내 일고 있는 ‘4차 한류’와 ‘DX 산업화 추진’ 붐도 관광 기업엔 호재다. 한류 콘텐츠가 소비재 소비로 이어지고 있는 만큼 K뷰티 등 제품과 체험을 연계한 관광 O2O 플랫폼, 기술을 통해 관광객 편의성을 높이는 트래블테크의 일본 진출이 유망할 것으로 전망된다. 관광공사가 지난해 말 118개 관광 벤처기업의 해외 진출 수요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기존 진출 국가 및 진출 계획 국가 모두 일본이 1순위로 나타났다. 이재환 관광공사 부사장은 “일본 Z세대를 중심으로 한류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일본 내 디지털 전환 수요가 커지면서 기술과 서비스 혁신을 주도하는 한국 관광 스타트업에 큰 기회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도쿄 현지에 지원거점 마련

일본 정부 역시 산업별 DX가 시급해지면서 해외 스타트업에 손을 내밀고 있다. 작년 말 스타트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2027년까지 벤처투자액을 10조엔(약 89조5000억원) 규모로 10배 넘게 확대하기로 했다. 도쿄도는 내년 스타트업 관련 예산을 286억엔(약 2800억원)으로 대폭 늘렸다. 향후 5년 동안 도쿄도 스타트업 수,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수, 해외 스타트업 협력 프로젝트를 각각 10배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문체부와 관광공사도 올해 안에 도쿄에 해외 관광기업지원센터(KTSC)를 열고 트래블테크 기업의 현지 진출을 돕는다. 지난해 싱가포르에 이은 두 번째 해외 거점이다. 주요 지원 대상은 AI 데이터, 관광 서비스, 실감형 콘텐츠 기업이다.

앞으로 트래블테크 기업의 해외 진출은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다. 관광공사는 글로벌 관광 기업 육성 규모를 2020년 8개사에서 올해 88개사로 확대했고, 내년 목표는 118개사로 늘렸다. 용호성 문체부 관광산업정책관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도 제78차 유엔 총회에서 대한민국의 디지털 선도 역할을 강조했다”며 “우리의 정보통신기술(ICT) 강점을 관광산업 분야에도 적극 도입해 관광 기업이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트래블테크 전문가 포럼을 구성하고 체계적으로 지원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허란 기자

한경-한국관광공사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