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으로 증폭시킨 소리의 힘…객석서 '얼쑤'·'얼씨구' 추임새
애달픈 소리 뽑아낸 창극 '심청가'…판소리 멋 살린 정통무대
판소리는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제대로 들어본 사람은 많지 않은 '익숙하지만 낯선' 장르다.

그도 그럴 것이 판소리는 우리말이지만, 옛날 말이 많아서 들어도 이해하기 쉽지 않고, 이야기를 소리로 풀다 보니 완창하는 데 길게는 8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판소리 다섯마당 중 하나인 '심청가' 역시 완창에 5시간이 걸리고, 아니리(사설)보다는 소리의 분량이 많아 오늘날 관객이 전 바탕을 따라가기 쉽지 않다.

심봉사와 효녀 심청의 이야기는 연극, 뮤지컬 심지어 발레 레퍼토리로도 쓰이지만 구성진 우리 소리로 들을 기회는 많지 않다.

2018년 초연과 2019년 재연에 이어 4년 만에 무대에 오른 국립창극단의 창극 '심청가'가 반가운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오롯이 소리가 주인공이 되는 작품'이란 사명 아래 판소리 고유의 멋에 집중한 정통 창극이다.

분량을 2시간으로 압축하고 소리에 극을 더해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개막 둘째 날인 지난 27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는 고운 색상의 한복을 입은 소리꾼들이 하나둘 나와 어깨를 덩실거렸다.

무대에 모든 출연자가 오를 때까지 조명이 훤히 켜진 객석에서는 꽤 오랜 시간 박수가 이어졌다.

보통 암전 속에서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받는 등장인물로 극을 시작하는 공연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1부는 심청의 어머니인 곽씨 부인의 죽음부터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 가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까지 슬프고 비장한 대목들이 주로 구성돼 관객들을 소리에 집중시켰다.

해설자 격으로 이야기 안팎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극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도창(導唱)의 비중이 지배적이었고, 배역을 맡은 소리꾼들도 연기를 보여주기보다는 소리를 들려주는 데 집중했다.

애달픈 소리 뽑아낸 창극 '심청가'…판소리 멋 살린 정통무대
심봉사 역을 맡은 유태평양은 앞을 못 보는 연기를 자연스럽게 소화하면서 부인을 잃고 홀로 딸을 키우는 아비의 애달픔이 깃든 가락을 뽑아냈다.

그의 소리는 우렁찬 성량을 내세우기보다는 슬픔을 머금은 듯 비장했다.

심청이 자신 때문에 공양미 삼백석에 몸을 팔았다는 사실을 접한 뒤 몸부림치며 다소 격양된 소리를 낼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극의 비장함은 소리꾼들이 함께 소리를 내는 합창 대목에서 폭발했다.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범피중류' 대목에서는 소리꾼 26명이 구슬픈 목소리를 더해 웅장한 느낌을 냈다.

판소리가 가진 소리의 힘이 증폭하는 순간이었다.

다만 1부는 비장한 극의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서인지 해학성은 다소 떨어졌다.

심봉사가 물에 빠진 장면을 느린 동작으로 연출해 관객들이 웃음을 터트리긴 했지만,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가 이어지고 공연 시간도 85분에 달해 늘어지는 느낌도 있었다.

대신 2부에서는 '신스틸러' 뺑덕이 등장하는 장면을 비롯해 관객들이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거나 웃을만한 대목이 곳곳에 배치됐다.

뺑덕과 도창이 말장난하듯 "삣죽 허면 뺏족 허고, 뺏족 하면 삣죽 허고"라며 주고받는 호흡도 흥을 돋웠다.

신명이 나니 객석에서 간간이 '얼쑤', '얼씨구'라고 들려오던 추임새도 한층 커졌다.

이번 공연은 '정년이', '베니스의 상인들' 등 최근 현대적인 감각을 입힌 작품을 흥행시킨 국립창극단이 다시 '정통'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손진책 연출은 앞선 간담회에서 "판소리 자체를 창극으로 제작했다"며 "판소리의 근본 틀은 바꾸지 않고 소리가 두드러질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공연은 10월 1일까지.
애달픈 소리 뽑아낸 창극 '심청가'…판소리 멋 살린 정통무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