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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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 건너 같은 메뉴.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거리의 탕후루 가게를 두고 하는 말이다.

1일 기준 홍대입구역 대로변에서 두세 블록 떨어진 골목길 약 1km를 걷는 동안 확인한 탕후루 가게만 10곳에 달했다. 이 중 몇 가게는 한 블록 내에서 스무 걸음도 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영업 중인 모습이었다. 일부 식당은 거의 마주보고 있다시피 한 곳도 있었다. 대표적인 중국 길거리 음식인 탕후루는 딸기, 귤, 파인애플, 포도 등 각종 과일을 꼬치에 꽂은 뒤 설탕과 물엿을 입혀 굳힌 전통 디저트다. 달콤한 과일을 걸어 다니면서도 간편하게 먹을 수 있고, 알록달록한 비주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장식하면서 10대, 20대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홍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이화여대 정문 앞도 만만치 않은 ‘탕후루 밀도’를 자랑했다. 이대역에서 이대 정문 앞을 지나 신촌기차역까지 이어지는 약 400m 범위 안에 탕후루 가게는 총 6곳이 자리 잡고 있다. 대개 탕후루 프랜차이즈 식당들이다. 이 중 두 곳은 문을 연 지 한두 달이 채 안됐다. 연세대 인근에서도 탕후루 전문점 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전문점이 아니더라도 비슷비슷한 신메뉴를 내건 곳도 많았다. 이 지역 한 탕후루 가게 업주는 “이 동네에 탕후루를 파는 집이 적진 않지만 번화가이고 대학 근처라 그런지 손님들은 꽤 온다”며 “10~20대가 많은 곳이라 수요가 많을 것 같아 치열한 경쟁은 이미 감안하고 들어왔다”고 말했다.

핫한 ‘탕후루 창업’

특정 유행을 좇는 ‘베끼기 창업’의 대표적인 사례다. 급증하는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그 수요가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서울 지하철 강남역 인근의 한 탕후루 전문 프랜차이즈 매장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 사진=한경DB
서울 지하철 강남역 인근의 한 탕후루 전문 프랜차이즈 매장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 사진=한경DB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다음달 열리는 국정감사에 탕후루 전문 프랜차이즈 ‘왕가탕후루’를 보유한 달콤나라앨리스의 김소향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한 상태다. 청소년 설탕 과소비 문제가 이슈화되면서다. 이 때문에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며 매장 숫자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탕후루 프랜차이즈들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나오고 있다.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의 방송 영향으로 ‘자영업 줄도산’을 겪은 2017년 ‘대만 카스테라 폐업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왕가탕후루의 매장 수는 △2020년 16개 △2021년 11개 △2022년 43개였으나, 탕후루 인기가 급증하면서 현재 매장 수는 약 420개로 지난해 대비 10배가량 뛰었다. 달콤나라앨리스는 연내 450개까지 매장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동일한 업종인 ‘황후탕후루’ ‘판다탕후루’ 등 종류도 증가 추세다. 최근 3개월 사이 특허청에 등록된 신규 탕후루 상표만 150개가 넘는다. 조리가 간편하고 초기 투입 자본도 크지 않아 소규모 창업에 뛰어든 자영업자들이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탕후루를 주로 소비하는 건 청소년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식품산업통계정보를 분석해보면 탕후루는 올해 상반기 냉동·간편조리식품 중에서 10대가 가장 많이 검색한 품목이었다. 인스타그램·페이스북·카카오스토리 등 SNS에서 수집한 정보다. 단맛에 약한 10대가 앞장서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마트용 ‘아이스 탕후루’까지 생겨난 데다, 과일의 알록달록함이 사진용으로 좋고, 깨물 때 나는 파열음을 ASMR(소리로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로 즐기는 유행이 일면서 SNS 인기 아이템이 됐기 때문이다.

혹했다간 ‘말아먹기’ 십상

탕후루가 ‘반짝 유행’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늘어나는 속도가 빨라 희소성이 금방 사라지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열기도 금방 식는다. SNS 등에서 급증하는 유행은 그만큼 쉽게 식상해지기 때문이다. 이날 기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탕후루 관련 해시태그인 ‘#탕후루’는 14만5000여건에 달한다. 쉽게 달아오른 유행 품목은 내실을 다질 준비 기간이 짧아 식품 안전이나 과장 광고, 서비스 품질 등에 대한 논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탕후루 역시 고열량 식품이라는 점에서 청소년 건강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문제는 국감에서까지 논의될 예정이다.
탕후루 꼬치가 길거리에 버려진 모습. 사진=한경DB
탕후루 꼬치가 길거리에 버려진 모습. 사진=한경DB
늘어나는 꼬치 쓰레기를 지적하는 위생 논란도 있다. 최근에는 ‘노(NO) 탕후루존’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홍대입구역 인근 식당에는 얼마 전 가게 출입문 부근에 ‘탕후루×’라고 적힌 종이 안내문이 붙었다. 탕후루를 든 손님들이 바닥에 설탕 시럽 등을 흘리는 탓에 청소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식당 관계자는 “탕후루 시럽이 바닥에 잘 떨어지는데 끈적해서 치우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라며 “나무꼬치나 종이봉투를 아무 데나 버리는 사람들도 많아 골칫거리”라고 푸념했다.

문제는 인기가 급격히 사그라들게 되면 결국 자영업자만 피해를 보기 쉽다는 것이다. 대만 카스테라가 대표적 예다. 2016∼2017년 서울 시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던 이 점포는 불과 1∼2년이 채 지나지도 않아 그 자취를 찾기 힘들어졌다. 많은 업주가 초기자본조차 회수하지 못한 채 빚을 떠안아야 했다. 앞서 2013년에는 벌집아이스크림이 파라핀이 들어가 있다는 논란으로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뒤이어 유행한 저가 주스 업체는 설탕 과다 첨가와 용량 논란을 겪었다. 장사만 되면 자영업자들이 뛰어들어 과당경쟁으로 몰리는 구조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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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풍에 뒤늦게 합류한 자영업자들은 매출을 내는 것도 쉽지 않다. 공정위 정보공개서에 따르면 달콤왕가탕후루의 전국 가맹점 월 평균 매출액은 지난해 기준 1150만원이다. 인건비, 월세, 재룟값 등 각종 비용을 제하면 통상 300만원대 수준으로 순이익이 남는다. 직원을 두 명 이상 고용하거나 월세가 비싼 지역에서는 이 만큼 이익을 내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게 업주들의 설명이다.

창업비용도 적지 않다. 업계 평균을 계산해보면 10평 기준 매장에 7000만원 정도(권리금·보증금 제외, 부가세 별도)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저가 커피 브랜드인 메가커피(약 5800만원)나 간식 브랜드인 명랑핫도그(약 5500만원) 창업비용을 훌쩍 넘는다. 경기도 학원가 인근에서 몇 달 전 탕후루 전문점을 연 한 점주는 “근처에 탕후루 가게가 워낙 많고 최근에도 연이어 개점을 하고 있어 경쟁이 치열하다”며 “한 달에 200만원대 수준으로 집에 들고 간다. 사실상 일반 직장인들 최저임금 수준에도 못미친다”고 푸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