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막말에 정치 양극화 폐단 드러나
21대 마지막 정기국회가 문을 연 지난 9월 1일 김진표 국회의장은 개회사를 통해 "세종대왕께서는 '나라의 하늘은 백성이고, 백성에게는 밥이 하늘'이라고 하셨다. 화급한 민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와 정부가 비상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고작 나흘 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탄핵' 발언으로 여야는 '막말 대전'의 장을 열었다.
설 의원은 지난 5일 대정부 질문 첫날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고(故) 채모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질의하던 중 "이 사건은 대통령이 법을 위반한 것이고 직권남용 한 게 분명하다"며 "탄핵까지 갈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탄핵, 특검, 국정조사 중독"이라며 설 의원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이하 윤리특위)에 제소했다.
설 의원의 발언 바로 다음 날이었던 지난 6일 대정부 질문에서는 국회의원을 향한 '쓰레기'라는 막말이 국회의 품격을 떨어트렸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민주당을 비판하자,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북한에서 쓰레기가 왔네"(박영순 의원) 등 원색적인 비난이 나온 것.
이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국회의 행태는 국민들의 정치 혐오로 이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내년 총선을 8개월여 앞둔 가운데 시행되고 있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30%에 가까운 무당층이 집계되는 게 이미 만연해진 정치 혐오를 방증한다. 한국갤럽 9월 3주 차 조사(자세한 내용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에서 무당층 비율은 29%였다. 8월 1주 차 조사에서는 32%에 달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본회의장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중재가 안 되는 의원들의 모습을 보면 TV에 나오는 '금쪽이'들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 정치의 양극화 심화', '의원들 간의 비방이나 막말'은 유권자들의 '국회 불신'을 강화한다는 지적이다. 국회법 제25조에 따르면 본회의나 위원회에서 다른 사람을 모욕하는 발언을 하면 안 된다. 또 회의 중 함부로 발언하거나 소란한 행위를 해 다른 사람의 발언을 방해해서도 안 된다. '국회의원 윤리강령'에도 품위 있는 발언 규범을 규정하고 있다. 이같은 규정을 어기면 의장은 경고나 제지를 할 수 있고, 그 정도가 심할 경우 국회법 제155조에 따라 징계사유에 해당할 수도 있다.
의회제도의 '모국'인 영국은 어떨까. 의원의 명예와 권위를 매우 중요시하는 영국은 그에 걸맞은 발언 예절을 중시하는 전통이 강하다. 영국에서 최고 권위를 갖는 의회 선례집에 따르면 의회에서는 '온화하고 절제하는'(good temper and moderation)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발언이 금지되는 단어가 별도로 정해져 있지 않지만, 선례에 따르면 '멍청이, 거짓말쟁이, 불한당, 겁쟁이, 부랑아, 훌리건, 쥐새끼, 배신자' 등이 '비의회적인 언어'(unparliamentary language)라고 여겨진다.
또 의장에게는 발언 질서 유지를 위해 강력한 권한이 주어진다.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한 의원이 의장의 중재에 따르지 않거나 의장의 권위를 훼손할 경우, '해당 의원을 직무 정지에 처한다'는 동의를 토론 없이 표결에 부칠 수도 있다. 직무 정지 처분을 처음 받는 의원은 회의일 기준 5일간 직무 정지에 처하고, 두 번째 직무 정지일 경우에는 20일간, 세 번째 이상일 경우에는 별도의 의결이 있을 때까지 직무가 정지된다. 실제로 49년간 하원의원으로 재직했던 데니스 스키너 노동당 의원은 비의회적인 언어의 사용으로 10여 차례나 의회에서 퇴장당한 바 있다.
그러면서 "우리 국회도 의원의 막말에 대해서 경고나 퇴장명령 등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을 엄격하게 집행하고, 중상모욕적 발언에 대해서는 면책특권의 적용을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발언질서의 확립을 위해서 제12대 국회까지 존재했던 '발언취소'를 명령할 수 있는 의장의 권한을 재도입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