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과 레고의 나라 덴마크가 ‘비만약’의 나라로 바뀌고 있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의 비만약 ‘위고비’가 세계 의약품 시장 패권을 장악하면서다. 노보노디스크의 기업가치는 덴마크의 국내총생산(GDP)도 넘어섰다.12일 글로벌 기업가치 분석사이트 컴퍼니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기준 노보노디스크는 기업가치 4381억8000만달러(약 586조2800억원)로 세계 14위다. ‘유통 공룡’ 월마트(4258억8000만달러), 세계 1위 투자은행 JP모간(4247억2000만달러)을 앞질렀다. 유럽 기업 중엔 기업가치 3821억4000만달러인 프랑스 명품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 노보노디스크 기업가치는 덴마크의 지난해 GDP(3954억달러)도 넘어섰다.올해 창업 100년을 맞은 노보노디스크는 192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덴마크 의사 아우구스트 크로그가 1923년 세운 회사다. 세계 인슐린의 절반 이상을 공급하는 전통적인 ‘당뇨 명가’다. 한우물을 꾸준히 파는 전략으로 당뇨와 비만 시장에서 후보물질을 확대하면서 GLP-1 계열 치료제로 ‘잿팟’을 터뜨렸다.노보노디스크는 이미 덴마크 경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8월 덴마크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6%에서 1.2%로 상향 조정했다.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 등 의약품 수출액이 6월 정점을 찍는 등 꾸준히 늘고 있어서다. 당시 덴마크 경제장관은 “제약산업을 제외하면 모든 산업이 쇠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노보노디스크 주가가 급등하면서 이 회사에 투자한 덴마크 연기금 수익률이 크게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021년 6월 위고비 출시 후 노보노디스크 주가는 세 배 가까이 올랐다. 노보노디스크의 실적이 향상되면서 이 회사를 통해 걷는 세금이 증가해 덴마크 정부의 세수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고용 증대도 이끌고 있다. 노보노디스크는 지난해에만 덴마크에서 3500명 정도의 인력을 추가 채용해 자국에서 2만1000명을 고용하고 있다. 노보노디스크의 전체 임직원은 5만9000명 정도로 알려졌다.일각에선 노보노디스크에 대한 덴마크 경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우려도 나온다. 1998년 이후 13년간 세계 휴대폰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면서 핀란드 경제를 이끌었던 노키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2007년 아이폰이 등장한 뒤 노키아 성장세가 꺾이면서 핀란드는 10여 년간 경제위기를 겪었다. 이른바 ‘노키아 쇼크’다. 이에 대해 톰슨 CEO는 “위고비와 오젬픽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 특허는 10년가량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비만약 시장 ‘게임체인저’로 평가받는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GLP)-1 계열 치료제가 세계 주식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선두주자인 덴마크 노보노디스크와 미국 일라이릴리의 임상 연구 결과에 따라 관련 기업 주가가 연일 출렁이면서다. 몸속 인슐린 등의 대사 작용에 영향을 주는 특성을 지닌 이들 치료제의 사용 범위가 비만이나 당뇨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시장 영향력이 더 확대될 것이란 평가다. ○GLP-1, 신장질환 효과 가능성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11일(현지시간) 노보노디스크의 주식예탁증서(ADR)는 6.27% 오른 98.84달러에 마감했다. 코펜하겐거래소에서 이 회사의 주가는 4.88% 상승한 681.80덴마크크로네에 거래를 마쳤다. GLP-1 계열 치료제 ‘마운자로’를 보유한 일라이릴리의 주가도 4.48% 올랐다.이들 주가가 요동친 것은 전날 노보노디스크가 만성 신장질환자 대상 ‘플로우(FLOW)’ 임상 소식을 전했기 때문이다. 노보노디스크는 당뇨병 환자 등에게 GLP-1 계열 당뇨약 ‘오젬픽’을 투여하는 플로우 연구를 중단하기로 했다. 약효 등을 중간 분석한 외부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iDMC) 위원들이 ‘미리 정해둔 약효 분석 지표를 이미 달성했다’고 판단하면서다. 오젬픽은 비만약 ‘위고비’와 같은 세마글루타이드 성분의 당뇨약이다.플로우 임상시험 성공을 가늠하는 지표는 만성 신장질환 진행 속도를 늦추고 신장·심장질환 사망 위험을 낮추는 것이었다. 당초 이번 임상시험은 내년 말까지 진행될 예정이었다. 이보다 이른 시점에 효과를 충분히 확인했다는 의미다. 노보노디스크는 내년 상반기 구체적 수치 등을 공개할 계획이다. ○된서리 맞은 신장 투석 기업들2형 당뇨병과 만성 신장질환을 앓는 환자는 미국과 유럽에서만 1360만 명에 이른다. 이들 질환을 개선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씨티은행은 노보노디스크 목표 주가를 기존 600덴마크크로네에서 745덴마크크로네로 상향 조정했다. 에밀리 필드 바클레이스 애널리스트는 “이 치료제의 효능이 당초 의도한 목적을 크게 뛰어넘는다”고 했다.신장 투석 관련 기업은 된서리를 맞았다. 만성 신장질환자가 줄어들 수 있다는 시장 전망이 반영되면서다. 투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비타는 전날보다 16.86% 하락한 75.89달러에 장을 마쳤다. 투석기기 등을 판매하는 독일 프레제니우스메디칼케어, 박스터인터내셔널 주가도 각각 8%, 12.27% 하락했다. 미국 경제주간지 배런스는 “오젬픽이 다양한 산업을 위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치매, 지방간 해결도 기대오젬픽과 위고비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는 GLP-1 호르몬을 모방해 췌장에서 인슐린이 나오도록 유도한다. 이런 원리로 식욕을 억제해 비만 치료 효과도 입증했다. 주 1회 집에서 맞는 주사제다. 이들보다 먼저 출시된 노보노디스크의 매일 맞는 주사제 삭센다(성분명 리라글루타이드)도 GLP-1 계열 치료제다. 일라이릴리의 주 1회 주사제 마운자로(성분명 터제파타이드), 레타트루타이드 등도 모두 같은 계열 약이다.당뇨 탓에 혈당이 높아지면 몸속 혈관이 망가진다. 염증 수치도 높아진다. 혈당을 떨어뜨리고 식욕을 억제해 체중을 줄여주는 GLP-1 계열 약은 이론적으론 대부분의 대사질환 치료에 활용될 수 있다. 올해 6월 미국 연구진은 아직 제대로 된 치료제가 없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환자들에게 레타트루타이드를 투여해 간에 쌓인 지방을 80% 넘게 없앴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로 활용하는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노보노디스크는 세마글루타이드를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에게 투여하는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치매는 ‘3형 당뇨’로 불린다. 당뇨 탓에 혈관이 망가지고 몸속 염증이 늘면 치매 위험이 크게 높아지기 때문이다.다양한 질환 치료제로 쓰임새가 확대되면서 비만약 수요는 꾸준히 늘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모건스탠리는 지난해 24억달러(약 3조2000억원)였던 세계 비만 시장 규모가 2030년 770억달러(약 103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이지현/신정은 기자 bluesky@hankyung.com
미국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이 최대 58억 달러(7조8249억원)를 투입해 미라티 테라퓨틱스(미라티) 인수합병(M&A)에 나섰다. 이번 M&A가 완료되면 BMS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신속승인을 받은 KRAS 변이 항암제를 확보하게 된다. BMS, 최대 58억달러에 미라티 인수 BMS는 8일(현지시간) 나스닥 상장사 미라티와 합병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미라티 주식 1주당 58달러, 총 48억 달러에 미라티를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6일 사노피가 미라티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 이후 급등한 종가보다 2달러 정도 낮은 수준이다.미라티 주주들은 1주당 12달러, 총 10억 달러 규모로 거래가 불가능한 조건부가격청구권(CVR) 옵션을 받았다.CVR은 MRTX1719이 미국 FDA로부터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NSCLC) 적응증으로 2차 이하의 전신요법(systemic therapy) 승인을 얻으면 받게 된다. 이를 포함하면 최대 계약 규모는 58억달러다. 이런 계약 조건은 BMS와 미라티 이사회에서 모두 만장일치로 승인됐다. 지오반니 카포리오(Giovanni Caforio) BMS 최고경영자(CEO) 겸 이사회 의장은 “암 환자에게 더 많은 치료법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며 “(미라티 자산을) 포트폴리오에 추가하고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크리스 보너(Chris Boerner) BMS 최고상업책임자(CCO) 겸 부사장은 “미라티는 크라자티(KRAZATI)를 포함해 여러 표적 항암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며 “다양한 종양학 포트폴리오를 성장시킬 것”이라고 했다. 'KRAS G12C 변이' 표적 크라자티 확보미라티는 시판 중인 표적항암제 크라자티를 포함에 여러 굵직한 항암제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MRTX1719는 MTAP(메틸트리오아데노신 포스포릴라아제) 효소 결손 암 PRMT(단백질아르기닌메틸트랜스퍼라아제)5 저해제다. 내년 상반기 임상 2상에 들어갈 예정이다.MRTX1133는 췌장암 및 대장암과 관련된 KRAS G12D 돌연변이를 타깃으로 한다. MRTX0902는 RAS의 활성화를 막는 SOS1 저해제다. 크라자티는 지난해 12월 KRAS G12C 변이 국소진행성 또는 전이성 NSCLC 성인 환자 치료를 적응증으로 FDA의 신속승인을 받았다. KRAS G12C 변이는 NSCLC 환자의 14% 정도를 차지한다. FDA는 환자 116명을 대상으로 한 크라자티 임상 2상 KRYSTAL-1 연구를 토대로 승인했다. 크라자티는 객관적반응률(ORR) 43%, 반응기간(DoR) 중앙값 8.5개월, 질병조절률(DCR) 80%로 1차 평가지표를 달성했다.유럽의약품청(EMA) 조건부 허가 신청도 이 데이터를 근거로 진행했다. 다만 EMA 산하 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가 지난 7월 크라자티의 시판 허가 신청을 거부할 것을 권고하면서 유럽 승인이 불투명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CHMP 측은 “크라자티가 미충족 수요를 충족한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했다”며 “추가 분석 데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환자에게 즉시 약을 제공해야 할 정당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미라티 측은 “CHMP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며, 재심사를 요청할 것”이라고 반박했다.크라자티의 경쟁 약물은 암젠의 루마크라스(LUMAKRAS)다. KRAS G12C 변이 NSCLC 치료제 루마크라스는 2021년 FDA 신속승인을 받았다. 지난해 EMA로부터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승인됐다.루마크라스 승인 근거는 KRAS G12C 변이 환자 124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2상 임상 연구 CodeBreaK 100이다. ORR 37.1%, DOR 11.1개월, DCR 80.6%를 확인했다. 미국에서 신속승인 후 정식 허가를 앞두고 있지만, 최근 FDA가 정식 허가를 위한 루마크라스의 후기 임상이 잘 통제되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크라자티가 반사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김유림 기자 youforest@hankyung.com**이 기사는 2023년 10월 9일 17시 42분 <한경 바이오인사이트> 온라인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