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 곤란해야 처벌됐던 강제추행…40년만에 범위 넓어진다(종합2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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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불법 유형력 등 폭행·협박죄 인정 수준으로 기준 낮춰
"비동의 추행죄 우려" "법문언 맞는 재정비" 대법관들 견해차 대법원이 '저항이 곤란한 정도'를 요구했던 강제추행죄의 판단 기준을 완화하면서 처벌 범위가 넓어지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1일 성폭력처벌법 위반(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1천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강제추행죄에서 추행의 수단이 되는 '폭행 또는 협박'에 대해 피해자의 항거가 곤란할 정도일 것을 요구하는 종래의 판례 법리를 폐기한다"며 "상대방의 신체에 대해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해 상대방을 추행한 경우에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이 성립 요건이다.
기존 대법원 판례는 폭행이나 협박을 인정하는 판단 기준을 '상대방에게 저항하는 것이 곤란한 정도'로 설정했고 이 기준은 1983년부터 유지돼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런 기준이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봤다.
강제추행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피해자의 저항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강제추행죄를 '정조에 관한 죄'로 분류하던 옛 관념의 잔재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항거 곤란을 요구하는 것은 여전히 피해자에게 정조를 수호하는 태도를 요구하는 입장을 전제하고 있다"며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현행법 해석으로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따라서 일반 형법에서 폭행·협박죄가 인정되는 수준의 행위만 있다면 강제추행죄에서도 폭행 또는 협박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게 맞는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이 사건 피고인 A씨는 2014년 8월 주거지에서 여성인 사촌 동생을 끌어안아 침대에 쓰러뜨리고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 강제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인 보통군사법원에서는 강제추행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3년이 선고됐다.
그러나 항소심인 고등군사법원 재판부는 "피고인의 물리적인 힘의 행사 정도가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였다고 볼 수 없어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강제추행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폭행·협박이 없더라도 위력을 행사한 사실이 있으면 인정되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 위계등추행 혐의만 적용해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다.
군검사가 상고했고 대법원은 2018년부터 사건을 심리한 끝에 상고를 받아들였다.
다만 개정 군사법원법에 따라 사건을 군사법원이 아닌 서울고등법원으로 보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종래 판례 법리를 40여년 만에 변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관들 사이에서는 강제추행죄의 처벌 기준이 완화되면서 과도하게 처벌받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와 법 문언에 맞는 기준 재정비의 의미라 부당한 처벌 범위 확대로 볼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 엇갈렸다.
이동원 대법관은 별개 의견을 남겨 "폭행 또는 협박의 정도를 완화할 경우 책임주의 원칙에 반하는 과중한 처벌이 가해질 우려가 있다"며 "성범죄 피해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려면 다수의견과 같이 무리한 법률해석보다는 '비동의 추행죄' 도입에 관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 후 국회의 입법 절차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비동의 추행죄는 상대방의 명시적 동의를 받지 않고 신체 접촉 등을 통해 성적 불쾌감을 야기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의미한다.
안철상·노태악·천대엽·오석준·서경환 대법관은 다수의견에 동의하면서도 "피해자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신체 부위를 접촉했거나 추행 정도가 매우 가벼운 경우에는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추행 행위인지 면밀히 따져보아야 할 것"이라며 "그렇지 않다면 현행법 해석상 허용되지 않는 비동의 추행죄와의 구별을 모호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반면 민유숙·김선수·오경미 대법관은 "다수의견은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의 의미를 명확하게 다시 정의함으로써 사실상 변화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현재의 재판 현실과 종래의 판례 법리 사이의 불일치를 해소하려는 것"이라며 "처벌범위를 부당하게 넓히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최근 재판 실무에서 강제추행죄를 인정할 때 일반적인 폭행·협박에 준하는 수준이라면 사실상 '항거 곤란'에 이르렀다고 보는 경향이 있어 이를 대법원 판례로 명확히 정리하는 것이라는 취지다.
노정희 대법관도 "세계 주요 국가의 법률이나 판례법은 피해자의 '저항'을 요구하던 데에서 피해자의 '동의 부재'를 그 본질적 기준으로 파악하는 것으로 전환하고 있다"며 "현행법상 범죄구성요건인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를 해석함에 있어서도 헤아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도 "(다수의견은)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을 법 문언 그대로 해석하자는 취지이지 법 해석만으로 비동의 추행죄를 인정하자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날 대법원판결을 시작으로 강간 등 성폭행 범죄에서도 요구되는 폭행·협박의 수준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강제추행죄는 A씨 사건과 같이 폭행이나 협박을 수단으로 추행하는 '폭행·협박 선행형'과 폭행 자체가 곧바로 추행에 해당하는 '기습추행형'으로 나뉜다.
이번 판결은 폭행·협박 선행형에 관한 법리에 한정한 것이라고 대법원은 설명했다.
/연합뉴스
"비동의 추행죄 우려" "법문언 맞는 재정비" 대법관들 견해차 대법원이 '저항이 곤란한 정도'를 요구했던 강제추행죄의 판단 기준을 완화하면서 처벌 범위가 넓어지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1일 성폭력처벌법 위반(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1천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강제추행죄에서 추행의 수단이 되는 '폭행 또는 협박'에 대해 피해자의 항거가 곤란할 정도일 것을 요구하는 종래의 판례 법리를 폐기한다"며 "상대방의 신체에 대해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해 상대방을 추행한 경우에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이 성립 요건이다.
기존 대법원 판례는 폭행이나 협박을 인정하는 판단 기준을 '상대방에게 저항하는 것이 곤란한 정도'로 설정했고 이 기준은 1983년부터 유지돼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런 기준이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봤다.
강제추행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피해자의 저항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강제추행죄를 '정조에 관한 죄'로 분류하던 옛 관념의 잔재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항거 곤란을 요구하는 것은 여전히 피해자에게 정조를 수호하는 태도를 요구하는 입장을 전제하고 있다"며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현행법 해석으로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따라서 일반 형법에서 폭행·협박죄가 인정되는 수준의 행위만 있다면 강제추행죄에서도 폭행 또는 협박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게 맞는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이 사건 피고인 A씨는 2014년 8월 주거지에서 여성인 사촌 동생을 끌어안아 침대에 쓰러뜨리고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 강제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인 보통군사법원에서는 강제추행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3년이 선고됐다.
그러나 항소심인 고등군사법원 재판부는 "피고인의 물리적인 힘의 행사 정도가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였다고 볼 수 없어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강제추행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폭행·협박이 없더라도 위력을 행사한 사실이 있으면 인정되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 위계등추행 혐의만 적용해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다.
군검사가 상고했고 대법원은 2018년부터 사건을 심리한 끝에 상고를 받아들였다.
다만 개정 군사법원법에 따라 사건을 군사법원이 아닌 서울고등법원으로 보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종래 판례 법리를 40여년 만에 변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관들 사이에서는 강제추행죄의 처벌 기준이 완화되면서 과도하게 처벌받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와 법 문언에 맞는 기준 재정비의 의미라 부당한 처벌 범위 확대로 볼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 엇갈렸다.
이동원 대법관은 별개 의견을 남겨 "폭행 또는 협박의 정도를 완화할 경우 책임주의 원칙에 반하는 과중한 처벌이 가해질 우려가 있다"며 "성범죄 피해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려면 다수의견과 같이 무리한 법률해석보다는 '비동의 추행죄' 도입에 관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 후 국회의 입법 절차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비동의 추행죄는 상대방의 명시적 동의를 받지 않고 신체 접촉 등을 통해 성적 불쾌감을 야기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의미한다.
안철상·노태악·천대엽·오석준·서경환 대법관은 다수의견에 동의하면서도 "피해자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신체 부위를 접촉했거나 추행 정도가 매우 가벼운 경우에는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추행 행위인지 면밀히 따져보아야 할 것"이라며 "그렇지 않다면 현행법 해석상 허용되지 않는 비동의 추행죄와의 구별을 모호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반면 민유숙·김선수·오경미 대법관은 "다수의견은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의 의미를 명확하게 다시 정의함으로써 사실상 변화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현재의 재판 현실과 종래의 판례 법리 사이의 불일치를 해소하려는 것"이라며 "처벌범위를 부당하게 넓히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최근 재판 실무에서 강제추행죄를 인정할 때 일반적인 폭행·협박에 준하는 수준이라면 사실상 '항거 곤란'에 이르렀다고 보는 경향이 있어 이를 대법원 판례로 명확히 정리하는 것이라는 취지다.
노정희 대법관도 "세계 주요 국가의 법률이나 판례법은 피해자의 '저항'을 요구하던 데에서 피해자의 '동의 부재'를 그 본질적 기준으로 파악하는 것으로 전환하고 있다"며 "현행법상 범죄구성요건인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를 해석함에 있어서도 헤아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도 "(다수의견은)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을 법 문언 그대로 해석하자는 취지이지 법 해석만으로 비동의 추행죄를 인정하자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날 대법원판결을 시작으로 강간 등 성폭행 범죄에서도 요구되는 폭행·협박의 수준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강제추행죄는 A씨 사건과 같이 폭행이나 협박을 수단으로 추행하는 '폭행·협박 선행형'과 폭행 자체가 곧바로 추행에 해당하는 '기습추행형'으로 나뉜다.
이번 판결은 폭행·협박 선행형에 관한 법리에 한정한 것이라고 대법원은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