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편성 담당자들은 가을을 별로 안좋아합니다. 연초부터 미뤄놨던 '숙제'를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풀어야 하거든요."

얼마전 만난 극장체인 관계자 A씨는 생각지도 못한 스크린쿼터 얘기를 꺼냈다. 스크린쿼터 때문에 4분기 편성이 엉망이 된다는 하소연이었다. 그 말에 머릿속은 이런 생각들로 가득 찼다.
'아니, 그 옛날 스크린쿼터가 아직도 살아 있다고? K콘텐츠를 전세계에 팔아치우는 대한민국이 정작 남의 나라 콘텐츠는 막는다고?'

매년 73일은 한국영화 걸어야

이게 다가 아니었다. "정부가 스크린쿼터를 영화관이 아닌 각각의 스크린마다 걸어놓은 탓에 그 귀한 아이맥스(IMAX)관도 1년의 5분의1(73일)은 무조건 한국영화를 걸고 있다"는 대목에선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10여년 전 노부부의 사랑을 잔잔하게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아이맥스관에 걸렸던 비밀이 그제야 풀렸기 때문이다.

영화팬들에게 아이맥스는 '힙 플레이스'다. 일반 스크린보다 몇 배 클 뿐 아니라 '숨어있는 영상'도 볼 수 있어서다. 그중 으뜸은 '용아맥'(CGV 용산 아이맥스)이다. '미션임파서블7' 같은 블록버스터가 나오면 좌석은 순식간에 동나고 '당근'에선 2~3배 웃돈이 붙는다. 티켓값이 두배 가까이 비싼데도 그렇다.

용아맥에 지금 걸린 '영화'는 아이유 콘서트다. 1년전에 찍은 콘서트 영상을 일주일째 틀고 있는데도, 용아맥은 올해 숙제를 33일치 밖에 못했다. 연말까지 남은 100여일중 40일을 한국영화로 채워야 한다. 용아맥의 맞수인 '코돌비'(메가박스 코엑스 돌비시네마관)와 '월수플'(롯데월드타워 수퍼플렉스관)도 똑같은 처지다.

이러니 편성 담당자들의 머리가 복잡할 수 밖에. 자칫 스크린쿼터에 몰려 아이맥스 수요가 넘쳤던 '듄'을 내리고, ‘연애 빠진 로맨스’를 올려야 했던 2년전 상황이 재연될 수 있어서다. 12월에 나오는 '아바타2'를 아이맥스에 태우기 위해 ‘뜨거운 피’와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로 미리 스크린쿼터를 채운 작년 전략을 또 쓸 지도 지금 따져봐야 한다.

멀티플렉스별 쿼터 생각해볼만

'스크린별 쿼터 적용' 규제 탓에 최근 5년간 45편의 '한국산 비(非) 아이맥스 작품'이 아이맥스관에서 상영됐다. 황당한 건 규제의 피해자는 많은데, 득 본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국산 로맨스 영화를 굳이 아이맥스에서 볼 사람이 많지 않으니, 영화관이나 제작사들은 아이맥스를 그리 반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국산 독립영화를 아이맥스관에 넣을 리 만무하니, 영세 영화인들의 살림이 나아질 것도 없다. 물론, 최대 피해자는 선택권을 빼앗긴 소비자들이다. 그러다보니 "누구에게도 별 도움이 안되는 이런 규제가 살아있는 건, 문체부 공무원이 아이맥스가 뭔지 모르기 때문 아니냐"는 얘기마저 나온다.

이런 점에서 스크린쿼터를 영화관 지점별 적용하자는 극장들의 주장은 들어볼만 하다. CGV용산에 있는 20개 상영관을 하나로 묶어 1년에 1460일을 지키도록 규제하는 것이다. 이러면 아이맥스관은 그에 맞는 영화를 1년 내내 틀고, 일반 상영관에서한국영화를 더 상영하면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마이크를 잡을 때마다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겠다'고 하잖아요. 이 문제를 알았다면 진즉에 이렇게 바꾸지 않았을까요?" A씨의 표정은 간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