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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에세이] 빚진 자의 입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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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봉 고려대 정부행정학부 교수
    [한경에세이] 빚진 자의 입장에서
    내년도 정부예산 시즌이다. 최근 정부는 ‘다이어트 예산’이라며 그동안의 씀씀이를 대폭 줄이거나 삭감하고 있다. 각 사업부서는 조금이라도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물밑에서 활발하게 로비를 전개하는 시기일 것이다.

    정부 예산은 국민의 세금이다. 정부는 기업처럼 스스로 영업 활동과 생산 활동을 통해 수입이나 재원을 창출하는 기관이 아니다. 정부 정책은 국민의 세금에 의해 설계되고 정책의 주요 고객은 그 재원을 제공하는 국민이다. 우리 사회는 저출산, 초고령화 사회와 함께 저성장시대에 접어들었다. 고도 경제성장기와 달리 세금을 창출하고 부담하는 요인들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반면 미래세대에의 재원 부담은 한층 증가하고 있다. 최근 들어 회자되는 ‘세수 감소 및 재정 적자’가 주요 요인이다.

    정부 재정사업의 평가, 예산 심의를 하기 위해 가끔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위원으로 참석하곤 한다. 그 경험을 통해 느낀 점은 도덕경 제79장 ‘시이성인집좌계(是以聖人執左契)’에 잘 담겨 있다. 과거 춘추전국시대에는 돈을 꿔주고 받을 때 그 거래 내용을 대나무 조각에 쓴 뒤 이를 두 쪽으로 갈라 채권자는 오른쪽을, 채무자는 왼쪽을 갖는 관습이 있었다. 이때 왼쪽계약서(左契)를 갖는다는 것은 ‘빚진 자의 입장에 선다’는 의미다.

    성인집좌계란 성인 즉,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스스로가 백성으로부터 일종의 빚을 진 사람으로 생각하고 ‘빚진 자’로서 처신해야 한다는 얘기다. 백성이 내는 세금을 당연히 받아야 할 것으로 여기는 채권자의 입장이 아닌, 백성들에게서 빚을 내는 심정으로 세금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백성으로부터 돈을 꾸는 일종의 계약 관계로 생각하고 계약 상대방인 백성을 어렵게 여겨야 한다. 국민을 당연히 거둬야 할 징세와 수탈의 대상이 아니라 언젠가 그들에게 빚을 갚아야 하는 채권자로 인식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 정책은 막대한 자원 소모성을 지닌다. 한번 재정을 투입하면 그 정책 사업이 사회간접자본(SOC) 같은 물리적 사업이든 복지나 교육정책 같은 소프트한 사업이든 오랜 기간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 이런 정부 정책에 대한 막대한 재원은 현세대,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미래세대의 세금에 의해 조달돼야 한다.

    이에 정책 현상에서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걷는 세금은 언젠가 국민에게 갚아야 할 빚이라는 사고와 관점을 갖는 것이 오늘날 저성장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국민에 대해 채무자 관점에서 세금을 징수하고, 그 재원으로 국민에게 정책을 통해 되돌려준다는 사고는 정부 관료나 정책 입안자에게 그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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