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주한미군 예술가의 ‘미완성작’, 한남동서 재탄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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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데우스로팍 - 도널드 저드 개인전
캔버스 뚫고 3차원 오브제 만든 예술가
30여 년 전 구상했던 '한지 목판화' 공개
단순한 요소와 세련된 색감 인상적
밑층에선 '개념미술 작가' 요셉 보이스展
동물·인체 누드 등 드로잉 집중 조명
캔버스 뚫고 3차원 오브제 만든 예술가
30여 년 전 구상했던 '한지 목판화' 공개
단순한 요소와 세련된 색감 인상적
밑층에선 '개념미술 작가' 요셉 보이스展
동물·인체 누드 등 드로잉 집중 조명
1945년 한반도에 수많은 미국인들이 물밀듯 들어왔다. 광복 후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미군들이 태평양 건너 머나먼 한국 땅을 밟은 것.
'20세기 미니멀리즘의 대가' 도널드 저드(1928~1994)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1946년 6월부터 1947년 11월까지 주한미군으로 근무했다. 전쟁 속에서 고통받는 어린 아이들,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힘든 가난한 사람들이 마음에 걸렸던 저드는 1991년 40여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때 그를 사로잡은 건 '한지'였다. 그는 자신의 목판화 신작에 한지를 활용하기로 마음 먹고, 작품에 쓰일 색깔부터 목판 종류까지 모두 정했다. 하지만 1994년 돌연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한지 저드의 목판화는 미완성 작품이 돼버렸다. 저드가 미처 끝내지 못한 작품이 30년 만에 한국에서 공개됐다. 서울 한남동 타데우스로팍 2층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저드의 개인전 공간에 들어서면 각각 가로 80㎝, 세로 60㎝인 목판화 20점이 벽에 걸려있다. 그가 생전 구상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도널드 저드 재단이 2020년 제작한 작품이다.
한지 위에 그어진 반듯한 격자, 그 공간을 채우는 감각적인 색깔. 30년 전에 구상한 것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작품은 현대적이다. 단조로움 속에 세련됨이 돋보인다. 선, 면, 색깔 등 단순한 요소로 공간을 변주했던 그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 전시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드의 시그니처인 '3차원 오브제'뿐 아니라, 그에게선 보기 드문 회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저드는 '네모난 캔버스에 갇힌 회화는 완전한 사물의 모습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3차원 조각을 주로 만들었다.
이런 생각을 반영하듯, 전시장 안쪽에 있는 그의 초기작 '무제'(1950)은 회화지만 전혀 평면적이지 않다. 자유롭게 그어진 선은 네모난 캔버스를 벗어나려는 느낌을 주고, 물감을 여러 번 덧발라 구현한 입체성이 도드라진다. 그 밑 1층 전시장에선 한국과 인연을 맺었던 또 다른 예술가, 요셉 보이스의 전시가 열린다. '미디어아트 거장' 백남준과 예술동지였던 보이스는 퍼포먼스, 조각, 설치예술을 넘나든 독일의 개념미술가. 이 전시에선 그의 드로잉을 집중적으로 볼 수 있다.
연필로 그린 동물과 인체 누드, 납작하게 압축한 나뭇잎과 꽃잎 등을 통해 '드로잉은 습작이나 예비 자료가 아니라, 그 자체로 작품'이라는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저드 전시는 11월 4일까지, 보이스 전시는 내년 1월 20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20세기 미니멀리즘의 대가' 도널드 저드(1928~1994)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1946년 6월부터 1947년 11월까지 주한미군으로 근무했다. 전쟁 속에서 고통받는 어린 아이들,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힘든 가난한 사람들이 마음에 걸렸던 저드는 1991년 40여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때 그를 사로잡은 건 '한지'였다. 그는 자신의 목판화 신작에 한지를 활용하기로 마음 먹고, 작품에 쓰일 색깔부터 목판 종류까지 모두 정했다. 하지만 1994년 돌연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한지 저드의 목판화는 미완성 작품이 돼버렸다. 저드가 미처 끝내지 못한 작품이 30년 만에 한국에서 공개됐다. 서울 한남동 타데우스로팍 2층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저드의 개인전 공간에 들어서면 각각 가로 80㎝, 세로 60㎝인 목판화 20점이 벽에 걸려있다. 그가 생전 구상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도널드 저드 재단이 2020년 제작한 작품이다.
한지 위에 그어진 반듯한 격자, 그 공간을 채우는 감각적인 색깔. 30년 전에 구상한 것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작품은 현대적이다. 단조로움 속에 세련됨이 돋보인다. 선, 면, 색깔 등 단순한 요소로 공간을 변주했던 그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 전시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드의 시그니처인 '3차원 오브제'뿐 아니라, 그에게선 보기 드문 회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저드는 '네모난 캔버스에 갇힌 회화는 완전한 사물의 모습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3차원 조각을 주로 만들었다.
이런 생각을 반영하듯, 전시장 안쪽에 있는 그의 초기작 '무제'(1950)은 회화지만 전혀 평면적이지 않다. 자유롭게 그어진 선은 네모난 캔버스를 벗어나려는 느낌을 주고, 물감을 여러 번 덧발라 구현한 입체성이 도드라진다. 그 밑 1층 전시장에선 한국과 인연을 맺었던 또 다른 예술가, 요셉 보이스의 전시가 열린다. '미디어아트 거장' 백남준과 예술동지였던 보이스는 퍼포먼스, 조각, 설치예술을 넘나든 독일의 개념미술가. 이 전시에선 그의 드로잉을 집중적으로 볼 수 있다.
연필로 그린 동물과 인체 누드, 납작하게 압축한 나뭇잎과 꽃잎 등을 통해 '드로잉은 습작이나 예비 자료가 아니라, 그 자체로 작품'이라는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저드 전시는 11월 4일까지, 보이스 전시는 내년 1월 20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