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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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고 있는 이 모든 논의가 법 개정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최근 열린 토큰증권(ST) 세미나에서 한 업계 관계자의 발언이다. 최근 조각투자 업체의 투자계약증권신고서 제출이 잇단 불발되면서 자산 가격의 산정 문제가 시장 내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하지만 2030년 367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조각투자 시장 개화에 있어 이보다 더 중요한 건 법이 개정되는지 여부다.

비정형증권(투자계약증권·비금전신탁수익증권)과 토큰증권의 발행 혹은 유통을 허용하는 내용의 전자증권법·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돼 있다. 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 모든 논의가 '말짱 도루묵'인 셈이다.

최근 등장한 비정형증권은 토큰증권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현행 전자증권법은 주식, 사채 등이 전자등록계좌부에 기재되는 중앙집중식 등록방식만을 인정하고 있고, 토큰증권의 핵심인 '분산원장' 기재 방식에 대한 내용은 없다. 즉, 지금의 법 테두리 안에선 토큰증권의 발행조차 불가하단 얘기다. 토큰증권의 실질인 비정형증권은 현행법상 발행은 가능하지만, 증권이 유통될 순 없다. 이는 자본시장법이 개정돼야 가능한 일이다.

개정안 통과 요원…"신사업 추진하라는 거냐" 볼멘소리

업계에선 법안 통과, 규제 완화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지만, 뚜렷한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당초 금융위원회는 올 상반기 중 전자증권법·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제출하겠다고 했지만, 개정안은 8월이 다 돼서야 발의됐다. 심지어 발의됐지만 여전히 심사를 받지 못해 계류 중이다. 법안이 언제 통과될지도 알 수 없다. 제21대 국회 기준 법안 반영률은 29.2%로 20대 국회 때(36.4%)보다 떨어졌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발의한 법안 수는 비슷하단 점에서 법안 통과가 이른 시일 내 이뤄지기 어려울 것으로 해석된다.
토큰증권 발행과 유통 구조./사진=키움증권
토큰증권 발행과 유통 구조./사진=키움증권
업계에선 규제에 막혀 신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추효현 서울거래 부대표는 지난 12일 열린 국회에서 열린 '핀테크 혁신 더하기 토큰증권 플러스' 세미나에서 "윤창현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현재 토큰증권 발행업을 준비하는 업계의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사업을 준비 중인 증권사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현재 전자증권을 발행할 때 증권사를 거치는 것처럼 향후 조각투자 시장에서도 증권사가 비슷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조각투자 업체가 '발행인 계좌관리기관' 자격을 갖추지 못한다면 증권사 등 금융기관을 통해 발행해야 해서다. 다만 발행인 계좌관리기관 자격에 대한 구체적인 요건이 아직 공개되지 않아 증권사들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현재로선 당국의 요건 마련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일단 법안이 통과되고, 구체적인 시행령이 마련돼야 한다"며 "구체적인 요건이 없기에 현재로선 어느 증권사도 조각투자를 다룰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개정안 통과 지연으로 장외 유통시장이 열리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조각투자 상품은 향후 한국거래소의 상장 시장(장내 시장)과 장외 시장에서 거래될 전망이다. 장내 시장의 경우 거래소가 금융위원회의 규제특례(샌드박스) 심사를 받아 이르면 올해 안으로 신규 개설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장외 유통시장이 개설되지 않으면 조각투자 시장이 활성화되는덴 한계가 있단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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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한도와 같은 세부시행령 논의도 늦어지면서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개인투자자의 투자 한도가 연간 최대 1000만원 수준으로 설정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한도가 낮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심수빈 키움증권 연구원은 "장외 유통플랫폼을 통해 투자계약증권이 거래된다면 현재 유통플랫폼을 운영하는 조각투자 상품보다 한도가 낮게 설정될 것"이라며 "투자 금액이 제한되면 관련 시장의 성장이 더뎌지고, 수익성에 대한 기대감이 약해질 수 있다"고 짚었다.

투자 한도에 대해 뮤직카우 관계자는 "음악 저작권의 장기적인 매력에 주목해 큰 규모로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있다"며 "투자 한도가 제한될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며 고객들의 문의가 지속해서 들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음악 자산은 장기 투자에 적합한 부분이 있는데, 시세 차익을 노리는 수단으로 변질될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만만찮은 반론…"투자자 보호 혁신 앞서야"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신규 투자 시장인 만큼 위험성을 고려해 투자 한도를 낮게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선미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핀테크블록체인 책임교수는 "토큰증권 투자엔 리스크가 있어 신중한 판단, 전문적인 조언이 필요하다"며 "특히 장외거래소에선 정보 불균형, 가격 급등락 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해외에선 일반 투자자의 조각투자를 제한하는 곳도 있다. 조각투자 선진국으로 꼽히는 미국과 싱가포르는 30만달러(약 4억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고액자산가 또는 전문투자자에 한해 조각투자를 허용하고 있다. 일본도 관련 협회 차원에서 투자 가능 대상을 전문투자자로 제한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조각투자 시장에서 어떤 자산이 거래될지 모르기 때문에 규제를 강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며 "시장이 열린 후 투자자 보호, 시장 안정성에 대한 금융당국의 확신이 생기면 한도가 차츰 상향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조각투자의 기초자산이 되는 상품의 적정 가치를 평가하기 어렵단 판단에 무게를 두고 한도에 제한을 뒀단 설명이다. 현지은 금융위 자본시장과 사무관은 "뮤직카우의 '저작권료 참여 청구권'의 경우 투자자들이 음원 수익 구조가 어떻게 되는지, 시간이 가면 어떻게 변하는지 등에 대한 이해가 없다"며 "일반 투자자에 토큰증권에 투자할 기회를 부여하되 투자 한도를 설정해 리스크 노출도를 낮추려 했다"고 설명했다.

또 투자자 보호가 전제돼야 혁신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현 사무관은 "당국 입장에서는 규제 완화 요구에 기반한 서비스가 등장하면, 어디까지가 서비스 혁신이고 어디까지가 규제 차익인지 판단하기 모호한 경우가 많다"며 "당국은 투자자 보호 원칙을 유지하면서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약간 제거하는 정도의 일을 한다"고 말했다.(끝)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