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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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기식으로라도 때려야 창업주에게 충성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인력파견업체 '더케이텍'의 한 임원은 창업주 이모 씨가 직원들에게 반복해 저지른 폭행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 이씨의 '갑질'을 일찍 제지하지 못한 후회도 담겨 있었다.

지난 10일 고용노동부는 “더케이텍 특별근로감독 결과 창업주가 다수 직원에 대한 폭행과 괴롭힘 등 총 17건의 노동관계법을 위반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 씨의 주된 갑질은 ‘본사 직원 1인 2자격증 취득 지시’ ‘체중감량 경고’ ‘사적 지시 불이행 시 급여 삭감’ 등.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한 직원 16명에겐 ‘엎드려뻗쳐’를 시켜 욕설과 함께 몽둥이로 엉덩이를 폭행했다.

이 씨는 자신의 직장 내 갑질 의혹 보도가 이뤄진지 하루도 채 안된 지난 5월 26일 더케이텍의 모든 직함을 내려놨다. 이 씨가 40여년간 일궈온 회사에서 단숨에 물러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임직원들은 이 씨가 마치 그가 더케이텍을 창업한 40여년 전에 멈춰있는 사람 같았다고 묘사했다. 이 씨는 임직원들에게 사내 예술제에 참여할 것과 이를 위한 연습을 강요했다. 예술제는 '야학(야간학교)'을 다니는 학생과 교사, 졸업생이 모여 연극, 글짓기, 장기자랑 등을 하는 행사다. 임원 A씨는 이씨가 강요해왔던 예술제가 젊은 시절 야학을 다녔던 이 씨의 경험에서 이어졌다고 증언했다. 이 자리에선 이 씨와 직원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읊는 등 행위가 이어졌다. A씨는 “술을 마시지 않았던 이 씨는 술자리 대신 직원들을 불러 예술제를 즐겼다”며 "직원들의 반발이 심했지만 이 씨는 사내 단합을 위한 자리라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예술제 준비를 위해 일부 임직원들은 약 한 달 전부터 퇴근 후 악기와 코러스 연습을 해야만 했다. 예술제가 시작되면 임직원들의 악기연주와 코러스에 맞춰 이 씨는 한 시간가량을 홀로 노래했다. 이 씨는 예술제에서 직원들에게 “내가 왕이다”라고 선언하는가 하면 “예술제가 싫으면 (회사를) 나가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예술제엔 늘 임직원들이 한명도 빠짐없이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행사 불참 시 이 씨의 눈 밖에 나 인사 등에 있어 불이익을 받아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임원 B씨에 따르면 인력파견업체인 더케이텍은 주요 경쟁업체들과 달리 유일하게 오너인 이 씨가 경영하지 않는 회사였다. B씨는 “회사가 커질수록 이 씨는 내부 단속에 더욱 열을 올렸다”며 "경영능력이 부족했던 이씨가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방법으로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폭언과 폭행 등이 폭력적 행위가 동반되기 시작했다. 이 씨는 직원들을 상대로 ‘보여주기식’ 폭행을 많이 했다.

폭행의 강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해졌다. 이 씨가 사내 직원들에게 1인당 2개의 자격증을 따라고 지시한 2020년부터 사내에선 ‘25 KP(2025 K-TEC Plan의 약자)’라는 프로그램이 신설됐다. 2025년까지 사내 직원들에게 자격증 2개를 따라고 권유한 게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일과 병행해 자격증을 준비해야 했던 대부분 직원들은 이를 취득하지 못했다. 이 씨가 요구한 자격증에는 노무사 자격증 등 단기간에 따기 어려운 자격증도 포함돼 있었다. 임원 C씨는 “1~2년 만에 회사생활과 병행해서 따기엔 무리가 있다”는 직원들의 성토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 씨는 직원들이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자 총 3회에 걸쳐 16명의 근로자에게 '엎드려뻗쳐'를 지시하고 "제 자식 하나 건사 못할 놈"이란 폭언(욕설)과 함께 몽둥이로 엉덩이를 폭행했다. 회사 내부에선 이 씨의 폭행이 통상적으로 있었던만큼 '별거 아니니 참아야 한다'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한다. C씨는 “가스라이팅을 당한 것처럼 이것만 버티면 창업주한테 잘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임직원들 사이에서 만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 씨의 가혹한 폭행을 버티진 못했다. 이 씨와 관련된 부서에선 직원들의 잇따른 퇴사가 이어졌다. 몽둥이로 엉덩이를 폭행당한 16명의 임직원 중 3명은 십수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났다. 임원 A씨는 “직원들에겐 회사를 다니는 게 점점 더 가혹해졌다"며 "결국엔 저 사람이 언젠간 죽어야 회사 내 갑질이 끝이 난다고까지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러한 행각들이 세상에 밝혀지자 곧바로 사내 등기이사직과 고문직을 내놨다. 임직원들은 이 씨가 단숨에 자리에서 물러난 이유를 두고 “창업주의 자존심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A씨는 “자기 말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했던 창업주가 끝까지 직원들에게 자존심 상하는 걸 원치 않아 물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더 일찍 이런 문제를 해결해 직원 유출을 막아야 했다는 후회도 직원들 사이에서 들린다.

창업주가 자진 사퇴한 후 더케이텍은 뒤늦게나마 새로운 사내 문화 조성에 나섰다. 이 씨가 물러난 다음 날인 지난 5월 27일. 회사는 대대적인 인테리어 공사에 나섰다. 이 씨가 사용하던 방을 가장 먼저 뜯어고쳤다. 이 씨의 권위 아래에 독단적으로 만들어졌던 회사를 탈바꿈하기 위함이었다. 한 사내 직원은 “창업주가 사라지고 나서 종합검진과 같은 복지도 회사에서 조금씩 생기고 있다”며 나아지는 회사 분위기를 기대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A씨는 “이 씨의 퇴출 이후 사내에선 잘라야 할 싹을 이번 기회에 잘랐다는 분위기가 돌고 있다”고 표현했다. 현재 더케이텍 임직원들은 이 씨와 모든 관계를 단절했다. 이 씨는 관련 보도가 나간 다음 날인 5월 26일 바로 등기이사직과 고문직에서 물러난 후 회사와 일절 접촉을 하지 않고 있다.

더케이텍은 창업주 이씨의 동일한 횡포가 반복되지 않도록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 A씨는 "이 씨의 경영 복귀가 불가능하도록 사내 제도적 장치 갖출 예정"이라며 "고용노동부에 개선 계획을 보내 향후 상황에 대해서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1986년 설립된 더케이텍은 2022년 말 기준 자산 1260억, 매출 3587억원, 영업이익 125억원 규모의 인력파견업계 1위 업체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