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고, 사회 참여하려고"…일하는 발달장애인 6만3천여명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처럼 주변 이해와 도움 필요"

[※ 편집자 주 = 발달장애인을 둘러싸고 다양한 사회 문제가 대두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자리 확보는 교육권 보장과 함께 이들의 자립을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이에 연합뉴스는 발달장애인과 가족 등을 만나 '일'을 둘러싼 다양한 모습을 조명하기로 했습니다.

아울러 구직 과정에서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듣고, 기업체에서 채용을 꺼리는 이유를 비롯해 발달장애인이 사회구성원으로 자리잡기 위한 방안 등을 3차례에 걸쳐 송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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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처음에 온 손님들은 반신반의하면서 주문해요.

제가 발달장애인이라 제대로 할 줄 모를 거라 그리 생각한 거겠죠. 그러다 제가 제조한 커피를 마시면 이렇게 물어봐요.

'맛있다.

정말 사장님이 만든 거 맞아요?'"
지난 4일 오후 경기도 부천의 지적장애인 교육·재활 기관인 '부천혜림직업재활시설'에 있는 카페에서 만난 오정은(36) 씨의 말이다.

오 씨는 이곳에서 바리스타로 16년째 일하고 있다.

일주일에 사흘간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까지 근무한다.

점심시간 정도를 제외하면 앉아 쉴 시간도 별로 없지만 오씨는 힘들게 느껴진 적이 없다고 했다.

일하기 전만 하더라도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지만, 이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음료를 만드는 일도, 돈을 벌어 저축하는 것도 좋지만 가장 일하기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따로 있다.

바로 타인으로부터 관심을 받을 때다.

[발달장애인의 출근길] ①"'넌 못할거야'라는 편견…제가 만든 커피에 바뀌어요"
오씨는 "여기에 오면 날 찾는 손님도 많고, 대화할 수 있는 복지사도 많다"며 "사람을 만나고 관심을 받는 게 이렇게 좋은 일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커피 내릴줄 알아요?"라고 반문하던 고객에게 이제는 당당히 '내가 만든 게 맞다.

잘 만든다'고 얘기한다"며 "바리스타 자격증도 취득한 엄연한 전문가"라고 웃었다.

◇ 일하는 발달장애인 6만2천여명…10중 3명만 근무
오씨와 같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발달장애인은 꾸준히 늘면서, 이들의 자립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 확보와 사회에 안착하기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노동인구에 해당하는 만 15세 이상 발달장애인은 21만4천여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취업을 해서 일하고 있는 장애인은 29.5%(6만3천여명)에 불과하다.

발달장애인 취업자가 일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가 34.1%로 가장 많았다.

이어 '당당히 사회에 참여하려고'(30.7%), '자립을 준비하기 위해'(18.2%) 등의 순이었다.

사업체 유형으로는 '장애인 직업재활시설'(25.0%)과 '장애인 표준사업장'(11.9%), 공공근로와 같은 '정부재정지원 일자리'(10.8%) 등이 장애인을 위해 마련된 시설이나 공공 일자리가 대부분을 자치했다.

'일반 민간사업체(민간회사 또는 개인사업체)'는 36.5%였다.

[발달장애인의 출근길] ①"'넌 못할거야'라는 편견…제가 만든 커피에 바뀌어요"
부천혜림직업재활시설에서 운영하는 제빵소에서 일하고 있는 윤중서(38) 씨와 이승엽(30) 씨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발달장애인 동료 10여명과 제빵사 2명, 근로 지원 요원 3명 등과 함께 토스트와 소보로빵, 단팥빵, 크림빵 등 20여 종류의 빵을 빚는다.

이들이 하루에 만드는 빵만 최소 300개가 넘는다고 한다.

15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윤씨는 "소보로빵을 제일 잘 만든다"며 "빵이 갓 구워져서 나왔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씨도 "빵 만드는 일이 재미있다"며 "오래 일하고 싶다"고 웃었다.

2018년부터 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빵을 만드는 제빵사 이희수(51) 씨는 "비장애인보다 부족한 부분은 있지만 어디서든 제 몫은 해낼 아이들"이라고 강조했다.

비장애인과 비교하면 업무를 습득하는 속도가 느리고, 집중력이 부족한 건 맞지만 이들만의 강점도 있다는 얘기다.

이씨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성실하고, 맡은 일에 누구보다 최선을 다한다"며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 빵집을 포함한 여러 기업에서 발달장애인 고용을 꺼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일단 단 한 번만이라도 일할 기회라도 줬으면 좋겠다.

편견을 걷어내고 봐달라"고 당부했다.

◇ 발달장애인 2명 중 1명은 임시직…직업 선택 폭 넓히고, 비장애인 이해 필요
이처럼 발달장애인의 취업을 돕는 관계자들은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기회라도 달라"고 호소한다.

임지호 부천혜림직업재활시설 대표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고, 큰 문제 없이 손님을 응대할 수 있을 정도로 소통 능력을 갖춘 발달장애인이 일반 카페에 취업했다고 하더라도 정작 담당하는 일은 청소나 뒷정리 등이 전부"라고 지적했다.

임 대표는 "게다가 대부분 계약직으로 취업해 하루 4시간 정도 일하면서 근무 기간도 길어야 1년 정도"라며 "취업했다고 기뻐하다 냉혹한 사회에 상처받고 돌아오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

실제로 발달장애인 취업자의 현재 직장 근속기간은 '1년 미만'이 31.1%, '1∼3년'이 22.0%로 절반 이상이 3년 이상 일하지 못했다.

반면 10년 이상 근무한 경우는 18.6%에 그쳤다.

근로 계약 상태로는 '임시직(1개월 이상 1년 미만)'이 52.9%로 절반이 넘었다.

[발달장애인의 출근길] ①"'넌 못할거야'라는 편견…제가 만든 커피에 바뀌어요"
이우혁 씨의 어머니인 김정옥(56) 씨도 "아들이 부천혜림직업재활시설에서 일하기 전에 유명 뷔페에 취업 실습을 나간 적이 있었다"며 "일은 힘들지만, 정복을 입고 여러 사람을 만나서 정말 좋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혼잣말을 하는 아들을 손님이 무서워하고, 소통이 힘들다는 점 등을 이유로 채용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이후 몇 달 내내 침울해하는 아들이 못내 안쓰러웠다"며 "고용주가 발달장애인 특성을 이해하고, 고객에게도 이를 당부하는 정도의 배려만 있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전문가들은 발달장애인이 근로자로서 자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른 구성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나운환 대구대 직업재활학과 교수는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발달장애인도 각자의 특성이 있고 장단점을 갖고 있다"며 "이런 특성을 무시한 채 단순히 이들을 모자란 존재로 여겨 기존 시스템에 이들을 꿰맞추거나, 아예 외면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사회 곳곳에서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모습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먼저 비장애인이 가진 특성에 대한 이해가 필수라고 강했다.

나 교수는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특성을 발휘할 수 있다면 기업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라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도 주변의 조력자를 통해 성장했고, 이것이 결국 조직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냐"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