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밍 시대,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로 소유욕을 채우는 방법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휴가철이 지나고 도심 속 차량이 다시 늘어난 늦은 여름. 최근들어 도로에는 허-하-호 번호판이 부쩍 많아진 느낌이다. 한번은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굉음을 내며 바깥 차선으로 추월하는 하 번호판 차량을 본 택시 아저씨는 난폭 운전을 지적하며 육두문자를 내뱉는다.

기사님은 도로에서 다양한 광경을 겪었을 테니,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운전하거나 도로에서 비슷한 광경을 가끔 본 적 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난 문득 생각이 든다. 어떤 소유물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여긴다면, 최소한 함부로 다루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공유경제가 대세지만, 인간의 소유욕은 여전하다. 차량, 숙박, 심지어는 김환기 선생님의 작품까지도 공동소유하는 시대가 되었다. 지분과 감가를 고려하여 과거에는 소유할 수 없었던 물건을 조각으로 나누어 소유하는 세상이다. 물론 미술 작품은 그 가치가 매우 높은 만큼, 이렇게라도 한 조각으로나마 소유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투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미술 작품 그 자체를 사랑한다면, 나만의 공간에 두고 언제든지 감상하고 싶을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스트리밍 시대에 음악을 소유하는 것은 이제는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과거에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 제목을 놓치면, 몇날 며칠간 음반가게를 뒤져가며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음치의 목소리로 흥얼거려도 인공지능이 알아들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어떤 면에서는 너무나도 풍요롭고 다양성이 강조된 세상이 되었다. 유행에 뒤쳐지지 않으려고 탑100위 인기차트에 목을 매던 일은 이제 그만해도 된다.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장르의 영역을 넓혀나갔다면, 이제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알아서 큐레이팅 해주는 추천 음악 리스트를 통해 새로운 음악을 발견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면서, 마음에 드는 곡을 골라 듣는 것이 너무나 쉬워졌다. 곡 도입부 몇 초만 듣고 ‘좋아요’ 버튼을 누르다 보니, '좋아요 표시한 노래' 플레이리스트에는 어느새 수백 곡으로 가득하다. 분명히 좋아서 저장한 노래들인데, 다시 들어보면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은 사라지고 없다. 앨범의 트랙은 기승전결의 순서가 고려되어 배치되었지만, 스트리밍 플랫폼의 반자동 플레이리스트는 딱히 순서를 고려하지 않는다.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들으며 여운에 젖어 있는데, 갑자기 다음 곡으로 'Super Shy'가 나오면 순간 정신이 혼미해진다.

음악이 풍요롭지만 혼란스러운 요즘, 진정 음악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답은 간단하다. 스트리밍 시대에 음악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음악을 탐험하고, 슬기롭게 골라 담고, 되찾는 복습을 하는 것이다.
스트리밍 시대,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로 소유욕을 채우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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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다양한 음악을 탐험하는 습관을 기르자. 출근길에 음악을 탐험하려면, 영상을 자제하는 습관을 가져보자. 가뜩이나 업무시간 내내 컴퓨터 화면을 볼텐데, 굳이 이동중에 화면을 보는 것은 마치 뛰면서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는것과 같다. 끊임없이 초점을 놓치는 스마트폰 카메라처럼, 당신을 스스로의 눈을 혹사시키고 있는 것이다.

음원 플랫폼에서 기존에 좋아요를 누른 곡들이 있다면, 비슷한 장르의 음악을 추천받을 것이다. 하지만 탐험가의 마음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찾아보자. 당신의 음악적 세계는 인공지능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포용적일 수도 있다.

The Weeknd의 인기곡 Out of Time (위)가 샘플링한 일본 시티팝 Tomoko Aran의 Midnight Pretenders (아래)를 비교하며 들어보자.
이러한 노력을 다양한 음악 플랫폼을 이용해 새로운 음악을 탐색하다 보면, 때로는 유재하와 뉴진스처럼 전혀 다른 장르의 음악이 연이어 추천되기도 한다. 플랫폼마다 서로 음악을 추천해주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인데, 가끔은 특정 곡이 영감을 받은 비트와 보컬 스타일, 샘플링 등 재미있는 패턴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슈퍼 사이(Super Shy)의 비트는 2000년 초반에 발매된 가브리엘-선사인(Gabrielle - Sunshine (Wookie Main Mix))와 유사하고, 몇 년전 에리카 드 카시에르-리틀 비트(Erika de Casier - Little Bit) 혹은 핑크 팬서리스-페인(Pink Pantheress - Pain)의 보컬 스타일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위켄드(The Weeknd)의 인기곡 아웃 오브 타임(Out of Time)이 사실은 일본 시티팝의 대표곡 토모코 아란(Tomoko Aran)의 미드나이트 프리텐더스(Midnight Pretenders)를 샘플링한 것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다.

재즈에서는 같은 곡을 다른 스타일로 연주한 것을 비교해볼 수 있다. 명곡인 조니 미첼(Joni Mitchell)과 다이아나 크롤(Diana Krall)이 각자 부른 케이스 오브 유(A Case of You)는 같은 곡이지만, 슬픔의 감정을 절제되고 담백하게 표현한 Joni Mitchell에 비해 Diana Krall은 보다 서정적으로 표현한 스타일 차이를 비교해볼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발견은 평소 듣던 음악적 영역을 더 넓게 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미국의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 Joni Mitchell(위) 캐나다 재즈 가수인 Diana Krall(아래) 각자 부른 A Case of You를 비교하며 들어보자.
둘째, 내 음악적 취향에 어울리는 곡을 슬기롭게 골라 담자. 앞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으면서 나만의 음악적 영역을 넓혔다면, 이제 그 영역을 둘러싸는 울타리를 세우는 작업을 해보는 것이다. 일과 중에 가장 음악을 자주 듣는 시간대를 골라보자. 각자 선호하는 방식이 있겠지만 처음 시도해보는 것이라면 모닝콜-출근길-퇴근길-늦은 밤으로 총 네 가지 시간대별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모닝콜_플레이리스트 - 맨날 아침 심장 떨어지는 사과폰의 기본 알람소리 대신 원하는 음악으로 설정해볼 것을 추천한다. 이외로 하루의 완성은 아침을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달려있다. 어떤 음악으로 선정해야할지 고민된다면, ‘스누즈(Snooze)’를 하지 않아도 되는 곡을 선택해보길 추천한다. 혹시나 다시 잠들까 걱정된다면, 10-15분 이후 두 번째 알람을 원래 기본 알람으로 설정해두는 것도 방법이다. 패트릭 호우즈(Patrick Hawes)의 퀀타 퀄리아(Quanta Qualia), 맥 에이레즈(Mac Ayres)의 이지(Easy), 체 베이커(Chet Baker)의 댓 올드 필링(That Old Feeling) 등을 추천한다.

모닝콜은 영국 작곡가 Patrick Hawes의 Quanta Qualia로 하루를 맞이해보길 추천한다.

#출퇴근길_플레이리스트 - 고단한 출근길에는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음악이 필요하다.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 안이라면 잠시 눈을 감고 들을 수 있는 음악도 좋다 (푸른 제주 바다를 연상시키는 CHS의 투 머치 선사인 Too Much Sunshine를 강추한다). 퇴근길 음악은 그날의 감정선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혹시라도 한강을 건너는 지하철에서 창 밖 멀리지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다면 러빙(Loving)의 재뉴어리(January)를, 뭔가 도저히 풀리지 않는 심정으로 답답함을 씻어 내고자 한다면 비트 강한 디스클로저(Disclosure)의 문라이트(Moonlight)를 추천한다.

콩나물시루 같은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잠시 눈을 감고 들을 수 있는 CHS의 Too Much Sunshine

#늦은밤_센티한_플레이리스트 - 잠들기 전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을 수 있는 음악을 추가해보자.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의 블루 문(Blue Moon), 톰 로젠탈(Tom Rosenthal)의 투 유 어론(To You Alone), 코너 앨버트(Conor Albert)의 포겟(Forget), 호세 제임스(Jose James)의 텐더리(Tenderly), 샘 윌스(Sam Wills)의 턴 백(Turn Back), 크루앙빈(Khruangbin)의 프라이데이 모닝(Friday Morning) 등 몇 가지를 추천한다.>

이렇게 네 가지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것이 재미있었다면, 목적에 따라 본인만의 ‘드라이브’ 혹은 ‘로파이(Lo-Fi, Low fidelity의 약자로 마치 오래된 카세트로 듣는 느리고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장르로 불린다)’와 같은 ‘집중모드’ 플레이리스트를 추가로 만들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가끔 운이 좋으면 나랑 음악적 취향이 딱 맞아 떨어지는 다른 이용자가 올려둔 플레이리스트를 발견할 수도 있다.
가끔 운이 좋으면 나랑 음악적 취향이 딱 맞아 떨어지는 다른 이용자의 플레이리스트를 발견할 수도 있다.

마지막 세번째로는, 지금까지 만든 플레이리스트를 복습해보는 것이다. 처서가 지나니 아침과 밤 공기가 달라졌다. 어느덧 더위가 가시자, 지난 1년을 괜히 되돌아보고 싶은 감정이 생긴다. 계절과 시간이 바뀌듯 우리 또한 (스스로 모르는 사이에) 몸과 마음 모두 바뀌기 마련이다. 당신이 함께할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도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핵심은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플레이리스트 그대로 따라 듣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힌트를 얻어 결국 나만의 선곡 리스트를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플레이리스트를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꾸준히 되찾아 꺼내듣고 업데이트를 해야하는 것이다. 부단히 노력해 노래를 담은 플레이리스트 일지라도, 가끔은 더이상 마음에 들지 않는 곡은 과감히 삭제하는 습관도 응원한다. 아직 세상에는 들어야 할 곡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 키위꾸르의 플레이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