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택 ‘겹회화 150-22’
장승택 ‘겹회화 150-22’
“나는 동양 사람이요, 한국 사람이다. 내 그림도 동양 사람의 그림이요, 철두철미 한국 사람의 그림일 수밖에 없다. 세계적이려면 가장 한국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김환기는 이렇게 썼다. 그 말처럼 세계에서 인정받는 한국 예술은 장르를 불문하고 예외 없이 한국성(性)을 품고 있다. 고려청자부터 김환기의 그림,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와 방탄소년단(BTS)의 노래에 담긴 메시지까지 모두 그렇다.

한국 미술시장의 생태계를 책임지는 ‘국가대표 아트페어’ 한국국제아트페어(KIAF)는 그래서 대체 불가능한 행사다. 22년간 한국 작가를 발굴해 키우고, 이들의 매력을 널리 알리며, 한국 관람객과 컬렉터를 먼저 챙기는 일을 해온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화랑들이 저마다 뽑은 ‘한국 미술의 오늘’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올해 KIAF를 반드시 가봐야 하는 세 가지 이유와 함께 주요 부스 및 출품작을 정리했다.

우고 론디노네·박서보…1타 강사 총출동

우고 론디노네‘east siberian sea’
우고 론디노네‘east siberian sea’
작년보다 한층 강력해진 작가 라인업이 눈에 띈다. 한국 미술의 ‘대표 브랜드’인 단색화가 가장 먼저 포문을 연다. 박여숙화랑은 박서보, 갤러리BHAK는 윤형근의 작품을 가져왔다. 학고재가 출품한 ‘단색화 2세대’ 장승택의 겹 회화 시리즈도 주목할 만하다.

이 밖에 다양한 사조의 대가들 작품이 종류별로 나와 있다. 리안갤러리는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인 이건용을, 선화랑은 한국 채색화의 대표 주자인 이숙자를 전면에 세웠다. 이우환의 작품은 여러 갤러리에 걸린다.
샤갈 ‘결혼’
샤갈 ‘결혼’
가나아트가 소개하는 박석원의 조각과 심문섭의 회화, 조현화랑이 소개하는 ‘설악의 화가’ 김종학과 최근 미국 뉴욕 전시로 이목을 끈 ‘숯의 작가’ 이배도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표갤러리는 백남준의 작품과 함께 국내외 미술계의 주목을 받는 곽훈 작가의 ‘다완’ 시리즈, 2021년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 10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은 전광영 작가의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세계 미술을 이끌어가는 해외 작가 라인업도 탄탄하다. 국제갤러리는 세계적인 명성의 스위스 출신 작가 우고 론디노네의 작품을 대거 선보인다. 독일의 디갤러리는 추정가 43억원 이상의 샤갈 작품을 걸기로 했다. 올해 KIAF 전체를 통틀어 최고가 작품 중 하나다.
키스 해링 ‘Untitled’
키스 해링 ‘Untitled’
오페라갤러리에서는 조지 콘도와 키스 해링 작품이 관객들을 맞는다. 공근혜갤러리는 네덜란드 사진작가 어윈 올라프와 영국 대표 사진예술가 마이클 케나의 작품을 소개한다.

국내외 빛나는 신진 작가들 한자리

KIAF가 ‘공룡 아트페어’ 프리즈에 비해 절대적으로 앞서는 점이 있다. 역동성 넘치는 신진 작가의 작품이 많다는 것이다. 여섯 번에 걸친 엄격한 검증과 심사를 거쳐 합격한 갤러리들이 각자의 이름을 걸고 자신 있게 내세우는 따끈따끈한 신작들이다.

갤러리 구조는 캐스퍼 강의 한지 작품을, 갤러리스탠에서는 대담한 색감의 백향목 작가 작품을 선보인다. 일본의 비스킷갤러리는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등에 영향을 받은 야마노우치 요스케의 작품을 내놓는다. 미술 애호가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옵스큐라와 엘리제레 등의 부스도 주목할 만하다. 지갤러리에서는 허수연과 이현우가, 금산갤러리에서는 가수 겸 아티스트로 명성 높은 김창완의 회화 작품이 눈에 띈다. 해외 갤러리의 신진작가 라인업도 만만찮다. 화이트스톤갤러리가 영국의 세바스찬 쇼메톤을, 페레스프로젝트는 영국의 유망 작가 씨씨 필립스를 소개한다. 갤러리 이아는 독일 베이스의 신진작가 노아 엘 하켐을 선보인다.

한국 미술의 오늘과 내일이 펼쳐진다

'인생 그림' 기다려온 컬렉터들…긁지 않은 복권 찾는다면 '키아프'
KIAF가 단순한 장터 이상의 의미라는 사실은 갤러리신라 부스를 보면 알 수 있다. 적잖은 부스 비용을 내고 참가했지만, 작품 판매보다는 미술 담론을 형성하고 갤러리를 알리는 데 중점을 뒀다. 대표 전시작이 피에로 만조니의 대표작 ‘예술가의 똥’(1961)이다. 예술가, 평론가, 큐레이터, 딜러, 기자, 기획자 등의 분변을 소재로 한 9개의 캔이 함께 부스를 장식한다. 도통 팔릴 것 같지 않은, 익명의 아티스트들이 만든 작품이다. 갤러리 측은 “예술과 상술의 차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전시”라고 했다. 이 밖에 한국 미술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다양한 볼거리가 준비돼 있다. ‘KIAF 하이라이트’는 평론가와 기획자, 교수진 등 미술계 인사들이 가려 뽑은 20명의 작가를 소개하는 전시다. 뉴미디어아트 특별전과 한국 전통 채색화 특별전이 함께 열린다.

KIAF의 취지에 공감한 눈 밝은 기업들이 뜻을 모았다. 코엑스 동문에서 열리는 삼성카드 팝업 부스에서는 KIAF에서 찍은 사진을 인화할 수 있다. 메디힐은 윤필현 작가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예술을 후원하고 자사 제품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VIP라운지는 어퍼하우스가 조성했다. KIAF 행사장 내에선 폴바셋, 경복궁, 4B 등 F&B 브랜드도 만날 수 있다. 현대백화점과 일레븐건설 등이 자사 부스를 마련했고, KB금융그룹과 BMW는 행사를 후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