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투쟁' YS 23일, DJ 13일간 단식…이후 정책 요구·정치적 선명성 수단으로 사용
이정현은 초유의 집권당 대표 단식…이재명, 2016년 성남시장 때 이어 두 번째 단식
마지막 정치적 승부수 '단식'…역대 정치인 사례 살펴보니
"23일간 단식해봤지만, 굶으면 죽습니다.

"
2003년 12월 제1야당인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 비리 특검(특별검사)법 거부 철회를 촉구하며 단식하자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그에게 한 말이다.

이처럼 단식은 목숨을 걸고 하는 정치인의 최종 승부수라 할 수 있다.

권력 속성상 대체로 힘을 가진 집권 여당이 아닌 야당 대표들의 정치 행위였다.

YS의 조언은 스스로가 단식투쟁의 '원조'이기에 가능했다.

YS는 신민당 대표 시절이던 1983년, 전두환 정권의 독재에 항거해 곡기를 끊었다.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가택연금 중이던 YS는 학생·종교인·지식인의 석방과 복학·복직, 언론 통폐합 백지화 등을 요구했다.

YS는 "앉아서 죽기보다 서서 싸우다 죽기 위해 중단한다"며 23일간의 단식을 마쳤다.

마지막 정치적 승부수 '단식'…역대 정치인 사례 살펴보니
YS의 단식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와 YS의 상도동계가 뭉치는 계기가 됐다.

이들은 이듬해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결성하고 이를 토대로 신한민주당을 창당, 1985년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1990년에는 평민당 총재였던 DJ가 정치사찰 중단, 지방자치제 전면 시행 등을 요구하며 13일간 단식했다.

DJ의 요구는 1991년 지방의회 선거로 일부 실현됐고, 1995년에는 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돼 그 뜻을 이루게 됐다.

이 당시 단식이 민주화 투쟁의 한 방식이었다면, 이후에는 특정 정책에 대한 요구나 정치적 선명성 추구 등을 위한 수단으로 방향이 바뀐다.

마지막 정치적 승부수 '단식'…역대 정치인 사례 살펴보니
최병렬 전 대표의 단식이 그랬고,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반대해 민주노동당 문성현 전 대표가 26일간 했던 단식도 그랬다.

2018년 12월에는 당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여야 5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합의하자 9일 만에 단식을 풀었다.

이정미 대표는 지난 7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저지하고자 5년 만에 재차 단식에 돌입해 20일 만에 중단했다.

2019년 11월에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전 대표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 철회 등을 촉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다.

청와대 앞에서 8일간 농성하다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황 대표는 가족과 의사, 당의 만류로 단식을 마쳤다.

야당 대표는 아니었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던 2014년 8월, 광화문 광장에서 열흘간 단식했다.

당시 세월호 참사 유가족 '유민아빠' 김영오 씨가 세월호 특별법 처리를 촉구하며 단식하자 함께한 것이었다.

마지막 정치적 승부수 '단식'…역대 정치인 사례 살펴보니
단식이 야당 대표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2016년 9월 새누리당 이정현 전 대표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통과되자 7일간 단식했다.

집권여당 대표가 단식투쟁에 나선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다'며 31일부터 무기한 단식 투쟁에 들어간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경우 이번이 두 번째 단식이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이던 2016년 6월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 철회를 요구하며 열흘간 단식농성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