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에 마련된 공인회계사(CPA) 1차 시험장에서 수험생들이 발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줄서 있다. 사진=김범준 기자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에 마련된 공인회계사(CPA) 1차 시험장에서 수험생들이 발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줄서 있다. 사진=김범준 기자
절대평가인 국내 공인회계사(CPA) 시험을 사실상 상대평가처럼 운영하며 선발 인원을 인위적으로 조절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응시생 이의 제기를 막기 위해 합격선(60점) 바로 아래인 59점대 점수를 60점 혹은 58점으로 임의로 변경한 사실도 밝혀졌다. 공인회계사 시험은 금융위원회 위탁으로 금융감독원이 주관한다.

감사원은 30일 금융위원회 정기 감사 가운데, 공인회계사 선발제도 감사 결과를 공개하며 "금융위는 상대평가처럼 목표 인원을 미리 설정했고, 금감원은 금융위가 원하는 목표 선발인원 수준으로 합격자 수가 조절될 때까지 채점을 반복하고 점수도 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2007년부터 시행된 '공인회계사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회계사 시험은 5과목 모두 6할 이상(100점 만점일 경우 60점 이상)을 받으면 합격하는 절대평가로 진행된다.

다만 합격자가 회계사 수급상 필요하다고 인정된 '최소선발 예정인원'에 미달한 경우, 미달 인원만큼만 상대평가(총점 고득점순)로 선발한다.

금융당국은 미리 설정한 '최소선발 예정인원'에 전체 합격자 수를 맞추기 위해 채점 기준과 점수를 임의로 변경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위는 '최소선발 예정인원'을 시장 수요보다 축소 산정한 다음, 이 인원을 사실상 선발 목표인원처럼 관리했다. 감사원은 "금융위는 공인회계사 수요가 증가하고 중소·중견 회계법인과 비회계법인이 채용난을 겪는 상황을 알면서도, '최소선발 예정인원'을 4대 대형 회계법인 채용계획 수준인 1100명 수준으로 동결했다"고 지적했다.

합격자가 4대 회계법인 외 법인에서 실무수습을 하면 회계사 역량 약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등의 사유가 작용했다는 게 감사원 설명이다.

시험관리 기관인 금감원이 법규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검토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금융위는 당초 계획했던 '적정 합격자 수'를 고수했다.

감사원은 그 결과 지난해만 해도 4대 회계법인을 제외한 중소·중견 회계법인(36개)은 목표 인원(247명)의 10%밖에 채용하지 못했고, 일반기업과 금융회사 등은 회계사 채용난을 겪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시험 관리기관인 금감원은 채점 위원들에게 응시생 20%를 가채점한 다음, '예상 합격자 수'가 금융위 목표에 근접할 때까지, 채점 기준을 2∼3차례 변경하거나 재채점할 것을 채점위원에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출제, 가채점, 본채점의 채점 기준(부분 점수 등)이 계속 임의로 변경됐다. 감사원은 "세법의 가채점 평균이 60점을 크게 상회하면 부분점수 불인정 등으로 평균 점수를 낮추고, 원가 회계의 가채점 평균이 60점보다 높으면 당초 채점 기준을 완화해 가채점 평균 점수를 올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감원은 채점을 완료한 뒤 응시생 이의 제기 방지 및 합격자 수 관리 등을 위해 합격 기준(60점)에 근접한 59점대 답안지를 모두 골라냈다"며 "59점대 점수를 60점대로 올려 합격시키거나 아니면 58점으로 낮출 것을 채점 위원에게 요구했고 이에 따라 점수가 상·하향 조정됐다"고 덧붙였다.

감사원은 감사 결과를 토대로 금융위와 금감원에 법령 취지에 맞게 시험을 운영하라고 통보하는 한편, 2차 시험 부분합격 유예기간에 대해서도 개선을 검토하라고 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