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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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KB자산운용 사무실 전화에 불이 붙었다. 2차전지 종목들의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상장지수펀드(ETF)'를 준비하고 있단 소식이 알려진 날이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에 이 펀드를 기획한 이들은 서로 손을 잡고 "흔들리지 말자"며 마음을 다잡았단 후문이다.

이 운용사의 2차전지 인버스 ETF 소식을 두고 시장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개인 공매도 기회까지 생겨 사실상 공매도 세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란 우려가 투자자들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다만 일각에선 모두가 '롱'을 외치는 상황에서 돌발변수에 대응할 수 있는 상품이 나오는 것은 오히려 반길 일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변동성 강한 2차전지 섹터…인버스로 방어적 투자 가능"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KB자산운용은 다음 달 중순 2차전지 산업의 성장과 하락에 모두 투자하는 ETF를 출시한다. 정방향 상품인 'KBSTAR 2차전지TOP10 iSelect'과 역방향 상품인 'KBSTAR 2차전지TOP10인버스iSelect(합성)'다. 인버스 ETF란 기초지수 하락 시 일간 수익률의 -1배 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이다.

이들 ETF에는 시장 지배력이 있는 2차전지 상위 10개 종목이 담긴다. 종목당 '캡'(시총 비중 상한 제한) 비율은 15%다. 지수사의 예상 포트폴리오(9월 지수 변경 기준)에 따르면 에코프로(15%)와 POSCO홀딩스(15%), 삼성SDI(15%) 등 세 종목이 전체의 45% 비중을 차지한다. 이어서 LG에너지솔루션(13.93%), 에코프로비엠(13.06%), 포스코퓨처엠(10.7%), SK이노베이션(8.07%) 등 순으로 비중이 높다. 최초 상장 설정액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100억원 미만의 규모로 상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양방향 상품을 내놓는 것이지만 시장의 시선은 '하락 베팅'이란 콘셉트에 집중됐다. 시장 대표지수가 아닌 특정 섹터나 테마를 역방향으로 추종하는 상품은 이번이 처음이어서다. 게다가 그 첫 사례의 주인공이 최근 증시 최대 강성 테마인 2차전지다. "왜 굳이 성장산업의 시장을 왜곡하려고 하는 것이냐"는 투자자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운용사는 이례적으로 출시 전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했다. 상품의 성격과 취지를 보충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iSelect 2차전지 톱10지수, iSelect 2차전지 톱10 인버스지수 구성종목.
iSelect 2차전지 톱10지수, iSelect 2차전지 톱10 인버스지수 구성종목.
KB운용 측은 인버스 ETF의 출시가 2차전지 시장에 대한 자사 관점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자산 헤지나 단기 투자용으로 인버스를 필요로 할 이들이 많은 만큼, 선택지를 늘리는 차원이라는 이야기다.

육동휘 KB운용 ETF전략실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2차전지 시장은 중장기적으로 무조건 성장하는 산업이라 보고 있다"면서도 "ETF는 운용사 관점보다는 시장 수요를 고려해서 출시한다. 2차전지 종목들이 연초 이후 변동성 높은 움직임을 보인 만큼 개인마다 적정주가에 대한 판단이 다른 상황이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트레이딩 수요 대응 차원에서 양방향 투자수단을 제공하려는 취지"라며 "우리로서도 이번 상품 출시는 '도전'이었지만 결국 2차전지 인버스는 수요가 있을 상품이란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결국 공매도만 키울 것…왝더독 우려도"

하지만 반대 목소리도 꽤 크다. 특히 개인 투자자들의 반발이 컸다.

주가가 밀려야 수익을 보는 투자방식 '공매도'는 통상 주가 하락 요인으로 꼽힌다. 그간 기관만 가능했던 공매도의 권한을 개인에게도 쥐어주는 수단이 '인버스 ETF'다. 투자자들이 반발하는 이유도 이 점에 있다. 인버스 ETF가 2차전지 종목들이 공매도에 더 노출되게 할 것이란 걱정이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밈(meme)처럼 공유되는 에코프로 관련 이미지. 이미지=커뮤니티
투자자들 사이에서 밈(meme)처럼 공유되는 에코프로 관련 이미지. 이미지=커뮤니티
자산운용사 한 펀드매니저는 "그간 2차전지 업황에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는 개인들이 취할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 관련 주식을 안 사는 소극적 행동에서 그쳤던 것"이라며 "인버스 ETF로 숏 포지션을 잡을 기회가 생긴 만큼 ETF 규모가 커질 경우 개별 주식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다.

또 다른 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조선과 해운 등은 이미 성숙된 사이클 산업이기 때문에 빠지고 오를 구간을 비교적 예상하기 쉽다"며 "하지만 2차전지는 장기 성장산업이고 변동성이 높아 뇌동매매(남을 따라하는 매매) 가능성이 높은데, 첫 섹터 인버스 ETF 대상을 안정감 있는 사이클산업으로 택했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투자자 관점뿐 아니라 주식시장 관점에서도 경계의 시각이 나왔다. 당장은 기우일 수 있지만, 향후 인버스 ETF의 규모가 커지거나 비슷한 ETF들이 나올 경우 선물이 현물 시장을 뒤흔드는 '왝더독'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들 상품에 돈이 몰릴수록 선물이 저평가되고 현물이 고평가되는 '백워데이션'이 발생하는데, 이 경우 선물 거래에 매수가 집중돼서 현물 주식 거래가 힘을 잃을 수 있다. 즉 선물로 인해 현물 주식들의 주가가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한 헤지펀드 운용사 대표는 "현·선물의 가격 차이를 활용해 차익 거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백워데이션이 나타날 경우 투자자들은 현물을 파는 포지션을 취한다"며 "그간 개인과 공매도 세력과의 싸움이었다면 이런 상품들로 인해 사실상 개인과 개인간의 싸움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이 상품이 시장에 커다란 영향을 몰고 올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국내 첫 섹터 인버스 ETF가 시장에 미칠 영향이 클지 작을지는 다음 달 상장 이후에야 판가름날 전망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시중에 2차전지 정방향 펀드가 많은 가운데 수요가 정방향으로만 몰리는 것도 정답은 아닐 것이라고 본다"며 "2차전지 인버스 ETF는 악영향보다는 순기능을 제공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