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곳곳서 물텀벙이·꽃게거리 등 수십년 명맥 단절 위기
[현장] 해물탕 거리 점령한 마라탕집…퇴색하는 음식특화거리
'○○양꼬치', '○○마라탕'
지난 24일 오전 찾은 인천시 부평구 '부평 해물탕 거리'에는 왕복 2차선 도로 양쪽으로 중국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한자가 적힌 간판들도 곳곳에서 눈에 들어왔다.

얼핏 보면 서울 대림동 거리와도 비슷한 풍경의 이곳은 40여년간 인천 시민의 사랑을 받아온 해물탕 특화거리다.

하지만 거리 이름이 무색하게 600여m의 길가에는 현재 해물탕집이 3곳만 남은 상태다.

이들 업소는 20∼30년을 영업한 비교적 큰 규모의 가게들이지만, 점심시간인데도 손님이 뜸해 몹시 한산한 모습이었다.

한 업소는 넓은 홀에 손님이 앉은 테이블이 1개만 있는 곳도 보였다.

반면 이 거리에 마라탕과 양꼬치 등 중국음식을 파는 점포는 16곳에 달했다.

최근 문을 연 듯한 업소 앞에는 화환이 놓여있고 음식 배달 기사가 쉴새없이 드나들며 활기찬 분위기를 연출했다.

[현장] 해물탕 거리 점령한 마라탕집…퇴색하는 음식특화거리
주민과 업소 관계자들에 따르면 부평 해물탕 거리가 '마라탕 거리'처럼 변한 것은 약 5년 전부터다.

1980년대부터 명성을 얻기 시작한 이곳은 한 때 인천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찾아올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1999년에는 지방자치단체가 특색 있는 음식점 밀집거리를 육성하는 '음식특화거리'로 지정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15개 안팎의 해물탕집이 성업하며 전성기를 누린 해물탕 거리는 주말이면 업소마다 손님이 몰려 대기 번호표를 뽑아야 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외식 트렌드 변화와 열악한 주차환경 등으로 인해 손님이 점점 줄어들었고 이 시기 인근 빌라촌 일대로 이주하는 중국 교포들이 늘어났다.

이 때문에 문을 닫는 해물탕집 자리에는 중국 교포들이 선호하는 마라탕이나 양꼬치집 등 중국 음식점들이 하나둘씩 들어섰다.

국내에서 마라탕이 전국적인 인기를 끌게 된 것도 해물탕 거리의 변화에 한몫을 했다.

해물탕집 5곳이 명맥을 유지하던 해물탕 거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2021년 해물탕집이 3곳으로 줄었고 결국 그 해 음식특화거리 지정도 해제됐다.

[현장] 해물탕 거리 점령한 마라탕집…퇴색하는 음식특화거리
20년 넘게 해물탕집을 운영해온 한 업주는 "우리라도 명맥을 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장사를 하고 있는데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하면 손님이 반토막 나 매우 힘든 상황"이라고 한숨을 지었다.

인천 시내 다른 음식특화거리들도 비슷한 변화를 겪고 있다.

10여년 전 7곳 정도가 성업했던 미추홀구 용현동 '물텀벙이(뱃사람들이 아귀를 부르던 옛말) 거리'의 아귀요리 전문점도 이제 3곳만 남았다.

같은 날 방문한 물텀벙이 거리에서도 아귀요리 전문점이 있던 자리가 배달 전문 음식점이나 카페 등으로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부 업소는 점포 내·외부를 리모델링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지만, 전반적인 고객 감소는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때 전문점이 20곳에 달했던 연수구 송도 꽃게 거리 역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수의 업소들만 남아 겨우 체면치레하고 있다.

인천에는 현재 섬들로 이뤄진 옹진군을 제외한 9개 군·구 26곳에 음식특화거리가 지정돼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특화거리가 사라지는 것은 안타깝지만, 민간의 업종 전환이나 폐업을 지자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해마다 중점 추진 음식특화거리를 선정해 홍보와 환경 개선을 지원하는 등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