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과 소리의 반복이 이렇게 강렬한 것인가… 연극 '혁명의 춤'
줄거리도, 제대로된 대사도 없는 연극이 있다. 연극 '혁명의 춤'은 정체 모를 불빛과 소리의 조각이 반복되는 게 전부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다.

얼마 전 서울 한남동 더줌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이 연극은 미국 실험극의 대가 마이클 커비의 희곡으로, 그의 뉴욕대 제자인 김우옥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장(89)이 번역과 연출을 맡았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연극과 달리 이야기나 서사가 없다. 서로 내용이 이어지지 않는 독립된 8개의 짧은 장면들로 구성돼 있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모호한 블랙박스 형태의 소극장에 관객이 양 옆으로 앉는 구조다. 공연이 시작하면 암전으로 칠흙같은 어둠이 펼쳐진다. 배우들이 손전등 불빛을 간헐적으로 비추며 가운데 무대에 등장한다.

공연 내내 알 수 없는 노래와 총소리와 비슷한 정체모를 소리가 짧게 들렸다가 사라진다. 깃발을 흔들거나, 비밀스러운 곳에 잠입하는 듯한 모습 등 혁명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이 제시된다. 대사도 거의 없다. '그들꺼야' '들려' '기다려' 등 단어 몇개 정도의 대사가 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들은 무의미해보이는 반복 사이에서 일정한 패턴과 연관성을 찾아낼 수 있다.
불빛과 소리의 반복이 이렇게 강렬한 것인가… 연극 '혁명의 춤'
무대의 모든 요소가 존재감이 뚜렷하다.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한 배우 13명은 표정과 몸짓만으로 뚜렷한 인상을 남긴다. 전화기, 사진기, 우산, 채찍, 깃발, 총 등 다양한 오브제(상징적 소품)도 활용된다. 관객들이 무대를 가운데 두고 마주보고 앉는 구조로 공연 중간중간 빛이 비출 때마다 다른 관객의 표정과 반응을 관찰할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김 전 원장은 1970~1980년대 미국의 실험극을 국내에 거의 처음 들여왔다. 이 작품도 앞서 1981년에 공연한 적이 있다. 당시 낯선 형식에 당혹해하는 관객이 많았다고 한다. 이번 개막일 공연장 로비에서 만난 김 전 원장은 "과거에는 낯설어하는 관객들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실험극을 공연 자체로 즐기고 재밌어하는 관객이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 연극은 연극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일종의 문학처럼 어떤 줄거리나 메시지를 찾지 않아도 된다. 종합적인 공연 예술로서의 연극, 독특하고 새로움을 경험하고 싶은 관객에게 추천한다.

공연은 오는 8월 27일까지.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