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차량 시동을 걸거나 에어컨을 미리 켜는 것을 넘어 도난 차량을 원격으로 멈춰 세울 수 있다면 어떨까요?마치 영화에 등장하는 이야기 같지만 제너럴모터스(GM)의 자동차 커넥티비티 서비스 '온스타'에 탑재된 기능입니다. 위성을 통해 차량 위치를 추적해 원격으로 멈춰 세울 수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서비스로 온스타 공식 유튜브 채널에 이 같은 내용의 영상이 공개되자 많은 관심이 쏠렸습니다.다만 국내 GM 오너들에게는 스마트폰 원격제어조차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한국 시장에서 커넥티비티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관련 커뮤니티엔 "국내 시장은 버렸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마침내 지난달 8일 GM은 국내에서도 온스타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쉐보레 2025년형 트랙스 크로스오버를 시작으로 쉐보레, 캐딜락, GMC 등 국내 출시 되는 GM 신차에 단계적으로 제공하기로 했습니다.서비스가 늦어진 만큼 국내 소비자를 위한 기능을 우선 탑재해 아쉬움을 달랬는데요. 디지털 활성화(액티베이션) 기능을 글로벌 최초로 도입한 겁니다. 해외에선 상담원과 통화 연결을 통해 온스타 활성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국내에선 이런 번거로운 과정 없이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가입과 차량 연동을 바로 할 수 있게 했습니다. 먼저 차 안에서 스마트폰 블루투스 연결을 통해 활성화 과정을 진행했습니다. 정상 작동하는 데까지 1~2분가량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차량 밖으로 나가 문을 잠그고 스마트폰으로 시동을 걸자 시동이 걸렸습니다.국내에선 온스타 앱으로 엔진 및 변속기, 에어백, 온스타 서비스, 배출가스 시스템 등 차
※ 한국경제신문은 독자 여러분들의 노후 자산형성에 도움이 될 ‘연금 재테크’의 모든 것을 다루는 ‘디지털 온리’ 콘텐츠 [일확연금 노후부자] 시리즈를 매주 화·목요일에 연재합니다.지난해 금융권에서 가장 화제가 된 재테크 상품을 꼽으라면 청년도약계좌를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청년도약계좌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만큼 출시 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는데요. 높은 금리에 더해 다양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어 출시 첫달인 지난해 6월 70만명이 넘는 신청자가 몰리기도 했습니다.하지만 모든 정책금융상품이 그렇듯, 청년도약계좌 역시 출시 초반에만 주목받고 이후 관심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는데요. 청년도약계좌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만기(5년)가 너무 길고 △가입 조건이 까다로우며 △금리가 다른 상품보다 크게 매력적이지 않다는 이유에서였죠.정부도 이 같은 지적을 받아들여 그동안 많은 보완책을 내놨습니다. 만기 이전에 중도해지하더라도 상당한 혜택을 보장하고 가입 문턱을 크게 낮췄습니다. 또 은행 예적금 금리가 내려가면서 청년도약계좌의 메리트가 커지고 있는데요. 청년도약계좌는 3년간 최고 연 6% 고정금리를 적용받고, 추가로 정부 지원금과 비과세 혜택까지 노릴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청년도약계좌의 가입을 고려해볼 만한 시기라는 뜻입니다. 청년도약계좌란청년도약계좌는 청년들의 중장기적인 자산 형성을 지원하는 정책금융상품입니다. 상품명이 ‘계좌’여서 성격이 헷갈릴 수 있지만 일종의 적금 상품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매달 일정 금액을 5년간 납입하면 만기에 ‘본인 저축액+
1960년대 중국 정부는 '2차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대폭 수정하며 '대약진운동'의 상처를 극복해냈습니다. 1961년과 1962년, 산업 생산 가치가 두 배 증가하고 농업 생산은 35% 늘어났으며 철강 생산량도 껑충 뛰었습니다.다만 경제적 성과는 당시 공산당 지도층에게 우려를 가져다줬습니다.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며 이데올로기에 변화가 찾아온 것입니다. 문화대혁명의 배경은 여기에 있습니다. 중국 내 이데올로기 변화를 막기 위해 문화대혁명이 발생했습니다. 1966년 5월부터 1976년 12월까지 이어진 중화인민공화국의 문화대혁명은 '십년 동란'(十年動亂, 십년의 혼란)으로도 불립니다.문화대혁명은 공식적으로는 "전근대적 문화와 시장 정책을 비판하고 새로운 공산주의 문화를 창출하자"라는 목표를 내세웠습니다. 실제로는 마오쩌둥이 자신의 권력을 회복하고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대약진운동 실패 후 권력에서 밀려난 마오쩌둥은 프롤레타리아 민중과 학생들을 동원해 이른바 시장 회생파를 탄압하며 권력 투쟁을 펼쳤고, 이 과정에서 마오쩌둥파와 덩샤오핑파 사이의 갈등은 격화됐습니다.문화대혁명은 1966년 5월16일 시작됐습니다. 당시 마오쩌둥은 공산당과 중국 사회 내에 만연한 부르주아 자본주의, 봉건주의, 관료주의 요소들을 척결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사상적 정화 작업은 주로 학생과 홍위병의 활동을 통해 진행됐습니다. 마오쩌둥은 이 운동이 소련의 수정주의를 막고, 중국이 이상적인 공산국가로 전환하는 데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문화대혁명은 한 국가가 스스로 자국의 문화유산을 파괴한 사건입니다. 근대 이후 극히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