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세계 주요국 통화 중 원화가 미국 달러화 대비 가장 약세를 보인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 중국의 경기 둔화와 부동산 부실 등 대외 악재가 불거질 때마다 유독 원화 가치가 다른 통화보다 더 떨어진 결과로, 원화가 ‘동네북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한국경제신문이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지난 1일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한 이후 11일까지 미국 달러화 대비 주요국 통화 가치를 비교한 결과, 원화는 3.4% 하락(원·달러 환율 상승)했다. 유로화(-0.1%), 영국 파운드화(-1.3%), 일본 엔화(-1.7%) 등 주요국 통화는 하락폭이 0~1%대에 그쳤다. 신흥국인 베트남(-0.2%), 인도(-0.5%), 인도네시아(-0.7%) 등도 통화 가치 절하폭이 미미했다. 이 기간 한국보다 통화 가치가 더 하락한 나라는 3년 만에 기준금리를 내린 브라질(-3.5%) 정도다. 긴축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통화 가치가 급락한 주요국은 한국 외에 찾아보기 힘들다.

원화는 이전부터 약세 흐름을 보였다. 원·달러 환율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종료 기대에 지난달 18일 달러당 1260원40전으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이후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이달 11일에는 1324원90전으로 올랐다. 한 달도 안 돼 64원50전이나 급등(원화 가치는 5.1% 하락)한 것이다.

최근 원화 약세를 부추긴 것은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과 중국의 경제 위기 가능성이다. 신용등급 하락은 미국에 악재지만 역설적으로 국제 금융시장에서 달러 수요 증가로 이어지며 원화 가치 하락 압박 요인이 되고 있다. 여기에 지난 주말부터 중국의 경기 부진과 대형 부동산 개발회사 비구이위안의 디폴트 가능성이 불거지면서 달러화 대비 위안화 가치가 하락했고 이 여파로 원화도 약세를 보였다.

이처럼 대외 악재가 터질 때마다 원화가 휘청이는 것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약해진 것도 한 요인이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1%대 초반에 그칠 가능성이 높은 데다 수출은 지난달까지 10개월 연속 감소세를 나타냈다. 한·미 금리차도 역대 최대인 2%포인트까지 벌어졌지만 경기 둔화 우려 때문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높이기 어려운 환경이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