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사라져 가는 듯" 아쉬운 목소리…태풍, 큰비 때마다 상습 침수
열흘 지나 23일께나 제모습 드러낼 듯…내년 세계유산 등재신청서 제출
[태풍 카눈] '세계유산 도전' 국보 반구대 암각화, 13일 만에 또 침수
"가면 갈수록 침수가 심해지니까 (그림이) 자꾸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아쉽네요.

"
11일 오전 11시께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천 반구대 일원.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를 보기 위해 들어선 진입로 곳곳에는 전날 들이닥친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꺾이고 부러진 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반구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등장했지만, 정작 암각화는 물에 잠겨 상반부 절반 정도밖에 확인할 수 없었다.

물이 차지 않은 평소에는 높이 4m, 폭 8m짜리 암각화가 오롯이 드러나는데, 이날은 위쪽 반밖에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반구대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은 한 가족은 전망대에 설치된 디지털 망원경을 통해 한 명씩 암각화를 관찰했다.

이들은 서로 망원경 방향을 잡아주거나, 여기가 그림이 그려진 부분이라며 손가락으로 디지털 망원경의 화면을 짚어주기도 했다.

이날 한참 망원경을 들여다보던 강남억(59) 씨는 "비가 와서 어느 정도 잠겼을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생각보다 더 많이 잠겼다"며 "가면 갈수록 침수가 심해지니까 (그림이) 자꾸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강씨와 함께 방문한 김규환(81) 씨는 "옛날부터 여기 놀러도 많이 오고 얽힌 추억도 많다"며 "암각화 위로 물이 차오르고 잠기는 게 되풀이되고 있는데 시민 식수 문제와 얽혀서 문화재 훼손 문제가 해결이 안 돼 안타깝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태풍 카눈] '세계유산 도전' 국보 반구대 암각화, 13일 만에 또 침수
반구대 암각화가 침수되기 시작한 것은 제6호 태풍 카눈이 울산을 강타하며 많은 비가 내린 지난 10일 오전 11시 20분쯤부터다.

반구대 지점보다 하류에 있는 사연댐의 수위가 53m를 넘으면 암각화가 물에 잠기게 된다.

11일 오후 1시 10분 기준 사연댐 수위는 55.08m로, 반구대 암각화 절반이 넘는 하단부 2.08m가 물에 잠겨 있는 상태다.

수위가 내려가려면 유출량보다 유입량이 더 커야 하는데, 지금은 강수의 영향으로 주변 유역에서 물이 흘러들어오면서 유입량이 유출량보다 더 큰 상황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사연댐 수위를 낮추기 위해 인근 대암댐이 공급하는 용수량을 사연댐이 공급하도록 해 방출을 가속할 방침이다.

이렇게 하면 암각화는 23일께나 침수에서 벗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태풍 카눈] '세계유산 도전' 국보 반구대 암각화, 13일 만에 또 침수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는 바위 면에 고래, 호랑이 등 그림 약 300점이 새겨진 가로 8m, 세로 4m짜리 유적으로 신석기 시대 생활상을 잘 나타내는 유적으로 꼽힌다.

지난달 천전리각석과 함께 '반구천의 암각화'라는 이름으로 문화재청 세계유산 등재 신청 대상으로 선정돼, 세계유산센터에 등재 신청 절차만을 앞둔 상황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그간 큰비가 올 때마다 불어난 물에 잠기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지난달 18일에도 장맛비로 인해 물에 잠겼다가 29일에야 침수에서 완전히 벗어났는데, 불과 13일 만에 다시 물에 잠겨버린 것이다.

지난해 9월 태풍 '난마돌' 때도 20일이나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었다.

[태풍 카눈] '세계유산 도전' 국보 반구대 암각화, 13일 만에 또 침수
이에 울산시는 지난해 3월 사연댐에 수문을 3개 설치해 댐 수위를 53m 미만으로 유지함으로써 암각화 침수를 예방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 방안은 환경부의 '사연댐 안전성 강화사업'에 반영돼 진행 중으로, 기획재정부 재정사업평가위원회에서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 심의를 마무리한 상태다.

다만 문화재청과 울산시는 2025년에 세계유산 등재를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 등재 절차에 맞춰 수문 설치도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울산시민 식수를 공급하는 사연댐 수위를 낮추면 대체 수원을 확보해야 하는데, 2021년 의결된 낙동강 통합물관리 방안에는 경북 운문댐에서 울산시에 물을 공급하는 방안이 포함된 상태다.

그러나 이 또한 관련 지자체와의 협의가 요원해 울산시는 자체 상수원 확보를 위한 '맑은 물 확보 종합계획 수립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운문댐에서 식수를 공급하는 방안은 협의가 안 되는 상황"이라며 "수문 설치는 환경부에서 추진 중으로 시 차원에서는 암각화 침수 방지를 위한 뾰족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문화재청과 울산시는 세계유산센터에 등재신청서 초안을 내고, 내년 1월에 최종 신청서를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