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주식 버려야 삽니다"…'백기사' 회사 주주들 '분통' [김익환의 컴퍼니워치]
"삼성물산 주식을 버려야 삽니다."

범(凡)현대가인 KCC는 '재계 백기사'로 통한다. 한 때 삼성·현대 오너일가의 우호 주주로 명성을 얻었다. 2015년에 경영권 위협을 받던 삼성물산의 지분을 사들여 '삼성 백기사'로 힘을 보탰다.

하지만 조(兆)단위 '뭉칫돈'이 삼성물산 주식에 묶이자 KCC 주주들 불만도 커졌다. 전략적 가치가 없는 삼성물산 주식을 팔고 기업가치를 키울 곳에 투자해야 한다는 요구도 거세졌다. 삼성물산 주가를 밀어올릴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지지부진한 것 등이 이 같은 요구의 배경이다.

지난 9일 유가증권시장에서 KCC 주가는 전날보다 2.56%(5500원) 빠진 20만9500원에 마감했다. 2021년 9월 17일 장중 47만7000원까지 치솟은 이 회사 주가는 연일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 9일 KCC 시가총액은 1조8617억원이다. 이 회사 시가총액은 보유한 주식 가치에도 못 미친다. KCC가 보유한 전날 종가(10만4000원)를 반영한 삼성물산 지분가치는 1조7690억원이다. 보유한 HD한국조선해양(지분 3.91%)은 3380억원에 이른다. 보유한 미국 실리콘 자회사 모멘티브 퍼포먼스 지분가치는 1조원을 넘어선다. 모멘티브 퍼포먼스는 미국 상장을 추진 중이다.

이 회사의 주력인 페인트 사업이 부진해지면서 주가를 짓눌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물산 등 비주력 자산을 유동화해서 기업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KCC는 2012년 1월에 비상장이던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 지분 17.00%(42만5000주)를 사들인 데 이어 2015년 삼성물산의 지분 6743억원어치를 매입했다. 2015년 매입의 경우 미국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공격을 받은 삼성물산의 경영권 방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당시에도 "KCC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백기사 역할에 나섰다"는 평가가 많았다.

KCC가 보유한 삼성물산의 가치는 전날 종가 기준으로 1조7690억원으로 매입가격(1조811억원)에 비해 63.6% 높다. 하지만 11년째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의 전략·수익적 가치가 높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물산 주가는 전날 0.29%(300원) 오른 10만4000원에 마감했다. 2021년 1월15일 장중 16만원을 찍은 뒤 내림세다. 삼성물산 주가를 밀어 올릴 재료는 지배구조 개편 이슈다. 하지만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속도를 내지 못할 전망이다. 이재용 회장이 ‘계열사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로 재판을 받는 등의 사정 때문이다.

삼성의 지배구조는 ‘이재용 회장 등 오너 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져 있다. IB업계에서는 삼성물산 등이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삼성그룹 지주사로 변신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장→삼성물산 지주사→삼성전자'로 개편이 점쳐진다.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 주가가 오를 수 있지만, 그 시기가 빨리 오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물산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는 KCC 주주들이 늘어난 배경이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