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베르디가 써낸 '죽음의 소리' [김수현의 마스터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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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 납량특집] 김수현의 마스터피스
베르디의 '레퀴엠'
'두 거장의 죽음' 계기로 작곡
초연 대성공…유럽 전역 '환호'
대표 악곡 '진노의 날'
거대한 음량·극적인 악상
극한의 압도감·공포심 유발
베르디의 '레퀴엠'
'두 거장의 죽음' 계기로 작곡
초연 대성공…유럽 전역 '환호'
대표 악곡 '진노의 날'
거대한 음량·극적인 악상
극한의 압도감·공포심 유발
예술과 죽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오래전부터 음악가들은 죽음에 대한 원초적 감정을 음표로 토해내며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켜왔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떠올리며 최후의 걸작 ‘레퀴엠’을 지었고,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는 인생에서 끝없이 마주한 죽음의 형상을 토대로 ‘마왕’,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 등을 남겼다.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가 작곡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교향곡 6번 '비창'도 죽음에 가까워진 그가 남긴 음악적 유서로 알려져 있다.
‘오페라의 거인’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1813~1901)도 죽음에 대한 영감으로 불멸의 대작을 써낸 인물 중 하나다. 그의 ‘레퀴엠’은 모차르트 작품과 함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퀴엠(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미사 음악)으로 꼽힌다. 특히 베르디 레퀴엠 중 ‘진노의 날(디에스 이레)’은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렬한 공포감을 선사하는 악곡으로 유명하다. 세상을 집어삼킬 듯 격렬하게 뻗어 나오는 오케스트라 음향이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면, 극한의 두려움에 처절하게 울부짖는 남녀의 목소리가 쏟아지며 청중을 압도한다. 마치 살아 있는 이들에게 ‘죽음 이후 심판의 날이 올 테니 어떠한 죄도 짓지 말라’고 경고하듯이.
베르디의 레퀴엠은 우여곡절 끝에 세상의 빛을 본 작품이다. 베르디가 처음 레퀴엠을 구상한 건 1868년 이탈리아 작곡가 조아키노 로시니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애초 계획은 베르디를 포함한 12명의 작곡가가 레퀴엠의 각 부분을 작곡해 로시니 서거 1주기에 작품을 초연하는 것이었다. 이에 베르디는 자신의 몫인 레퀴엠의 마지막 악곡 ‘리베라 메’를 작곡했는데, 추진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겹치면서 결국 프로젝트는 무산되고 만다. 공교롭게도 최후의 순간 등장할 악곡이 베르디 레퀴엠의 시작점이 된 셈이다. 베르디가 레퀴엠의 존재를 다시금 떠올린 건 그로부터 5년이 지난 때였다. 1873년 5월 22일 그가 가장 존경한 인물이자 이탈리아의 정신적 지주였던 대문호 알레산드로 만초니가 사망했다는 소식은 베르디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는 지독한 슬픔에 장례식도 가지 못하고 일주일 뒤에야 그의 묘소를 찾아 통탄했다. 당시 그의 비통한 심경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그대로 담겨있다. “이젠 모든 것이 끝나 버렸다.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성스럽고 고귀한 우리의 최고 영예가 사라졌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베르디는 만초니를 추모하기 위해 레퀴엠을 쓰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이듬해 4월 완성된 베르디의 레퀴엠은 만초니 서거 1주기에 맞춰 밀라노의 산 마르코 성당에서 초연됐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20여 명의 합창단과 110여 명의 관현악단, 당대 최고의 프리마돈나 테레사 스톨츠 등이 무대에 올라 선보이는 장대한 레퀴엠에 청중은 열광했다. 이후 베르디의 레퀴엠은 파리, 비엔나, 런던 등 유럽 전역에서 잇따라 공연되며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를 갖춘 명작으로 인정받게 된다. 종교음악에 이토록 많은 나라의 청중이 뜨거운 반응을 보인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물론 일각에선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독일의 지휘자 한스 폰 뷜로는 “베르디의 레퀴엠은 성직자 복장을 걸친 오페라”라고 혹평했다. 거대한 구성과 규모, 화려한 선율, 극적인 악상 표현 등 작품 특유의 음악적 요소가 베르디가 그간 써온 오페라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경건함을 중시하는 종교음악이라 규정하기엔 지나친 면이 있단 지적이었다. 그러나 브람스는 이에 대해 “뷜로는 스스로 바보가 되었다. 이것은 천재의 작품”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베르디 레퀴엠을 대표하는 악곡은 단연 ‘진노의 날’이다. 일찍이 아내와 두 자녀를 병으로 잃어야 했던 베르디의 어두운 내면세계가 표출된 것으로도 해석되는 이 악곡엔 인간이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인 죽음과 그에 대한 인간의 감정, 고찰, 경험 등이 음악적 언어로 표현돼 있다.
작품은 네 차례 같은 음을 세게 내려치는 팀파니와 관현악기의 강렬한 도입부로 문을 연다. 플루트, 클라리넷, 오보에 등 목관이 아주 빠르게 16분음표를 쏟아내며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듯한 형상을 드리우면 테너·베이스 성악 성부가 등장해 아주 고통스럽게 "진노의 날"을 포효한다. 이내 소프라노·알토 성악 성부까지 포개지며 거대한 음량으로 심판에 대한 공포를 극적으로 토해내면, 현악이 아주 거친 터치로 빠르게 하행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이후 주요 악기와 성악 성부가 통상적 강박인 첫 음이 아닌 두 번째 음에 악센트(특정 음을 세게 연주)를 넣으면서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빠지지도 못한 채 심판대에 강하게 얽매인 인간의 고통과 절망감을 드러낸다. 저음의 육중한 음색과 고음의 애달픈 음색이 하나의 두꺼운 선율을 이루며 숨이 막힐 정도의 압도감을 선사한다.
이내 성악 성부가 소리와 속도를 줄이며 불안감을 낮추려 할 때, 외려 고음역의 관현악 선율이 더 가파르게 솟구치면서 극한의 감정을 토해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악 성부가 목소리를 낮춘 채 “심판관이 오시는 날, 크나큰 공포가 오는 날. 모든 것을 엄히 다스리도다”라고 속삭인다. 점차 모든 악기의 색채, 울림도 옅어지면서 악곡은 끝을 맺는다. 마치 마지막 숨이 빠져나가고 온전한 죽음이 드리우듯이.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오페라의 거인’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1813~1901)도 죽음에 대한 영감으로 불멸의 대작을 써낸 인물 중 하나다. 그의 ‘레퀴엠’은 모차르트 작품과 함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퀴엠(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미사 음악)으로 꼽힌다. 특히 베르디 레퀴엠 중 ‘진노의 날(디에스 이레)’은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렬한 공포감을 선사하는 악곡으로 유명하다. 세상을 집어삼킬 듯 격렬하게 뻗어 나오는 오케스트라 음향이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면, 극한의 두려움에 처절하게 울부짖는 남녀의 목소리가 쏟아지며 청중을 압도한다. 마치 살아 있는 이들에게 ‘죽음 이후 심판의 날이 올 테니 어떠한 죄도 짓지 말라’고 경고하듯이.
베르디의 레퀴엠은 우여곡절 끝에 세상의 빛을 본 작품이다. 베르디가 처음 레퀴엠을 구상한 건 1868년 이탈리아 작곡가 조아키노 로시니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애초 계획은 베르디를 포함한 12명의 작곡가가 레퀴엠의 각 부분을 작곡해 로시니 서거 1주기에 작품을 초연하는 것이었다. 이에 베르디는 자신의 몫인 레퀴엠의 마지막 악곡 ‘리베라 메’를 작곡했는데, 추진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겹치면서 결국 프로젝트는 무산되고 만다. 공교롭게도 최후의 순간 등장할 악곡이 베르디 레퀴엠의 시작점이 된 셈이다. 베르디가 레퀴엠의 존재를 다시금 떠올린 건 그로부터 5년이 지난 때였다. 1873년 5월 22일 그가 가장 존경한 인물이자 이탈리아의 정신적 지주였던 대문호 알레산드로 만초니가 사망했다는 소식은 베르디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는 지독한 슬픔에 장례식도 가지 못하고 일주일 뒤에야 그의 묘소를 찾아 통탄했다. 당시 그의 비통한 심경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그대로 담겨있다. “이젠 모든 것이 끝나 버렸다.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성스럽고 고귀한 우리의 최고 영예가 사라졌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베르디는 만초니를 추모하기 위해 레퀴엠을 쓰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이듬해 4월 완성된 베르디의 레퀴엠은 만초니 서거 1주기에 맞춰 밀라노의 산 마르코 성당에서 초연됐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20여 명의 합창단과 110여 명의 관현악단, 당대 최고의 프리마돈나 테레사 스톨츠 등이 무대에 올라 선보이는 장대한 레퀴엠에 청중은 열광했다. 이후 베르디의 레퀴엠은 파리, 비엔나, 런던 등 유럽 전역에서 잇따라 공연되며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를 갖춘 명작으로 인정받게 된다. 종교음악에 이토록 많은 나라의 청중이 뜨거운 반응을 보인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물론 일각에선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독일의 지휘자 한스 폰 뷜로는 “베르디의 레퀴엠은 성직자 복장을 걸친 오페라”라고 혹평했다. 거대한 구성과 규모, 화려한 선율, 극적인 악상 표현 등 작품 특유의 음악적 요소가 베르디가 그간 써온 오페라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경건함을 중시하는 종교음악이라 규정하기엔 지나친 면이 있단 지적이었다. 그러나 브람스는 이에 대해 “뷜로는 스스로 바보가 되었다. 이것은 천재의 작품”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베르디 레퀴엠을 대표하는 악곡은 단연 ‘진노의 날’이다. 일찍이 아내와 두 자녀를 병으로 잃어야 했던 베르디의 어두운 내면세계가 표출된 것으로도 해석되는 이 악곡엔 인간이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인 죽음과 그에 대한 인간의 감정, 고찰, 경험 등이 음악적 언어로 표현돼 있다.
작품은 네 차례 같은 음을 세게 내려치는 팀파니와 관현악기의 강렬한 도입부로 문을 연다. 플루트, 클라리넷, 오보에 등 목관이 아주 빠르게 16분음표를 쏟아내며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듯한 형상을 드리우면 테너·베이스 성악 성부가 등장해 아주 고통스럽게 "진노의 날"을 포효한다. 이내 소프라노·알토 성악 성부까지 포개지며 거대한 음량으로 심판에 대한 공포를 극적으로 토해내면, 현악이 아주 거친 터치로 빠르게 하행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이후 주요 악기와 성악 성부가 통상적 강박인 첫 음이 아닌 두 번째 음에 악센트(특정 음을 세게 연주)를 넣으면서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빠지지도 못한 채 심판대에 강하게 얽매인 인간의 고통과 절망감을 드러낸다. 저음의 육중한 음색과 고음의 애달픈 음색이 하나의 두꺼운 선율을 이루며 숨이 막힐 정도의 압도감을 선사한다.
이내 성악 성부가 소리와 속도를 줄이며 불안감을 낮추려 할 때, 외려 고음역의 관현악 선율이 더 가파르게 솟구치면서 극한의 감정을 토해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악 성부가 목소리를 낮춘 채 “심판관이 오시는 날, 크나큰 공포가 오는 날. 모든 것을 엄히 다스리도다”라고 속삭인다. 점차 모든 악기의 색채, 울림도 옅어지면서 악곡은 끝을 맺는다. 마치 마지막 숨이 빠져나가고 온전한 죽음이 드리우듯이.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