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정책 포기·정권 교체 달성 어렵고 불만만 커져"
공개 비판해도 소득 없어…일부 사업가, 영국·EU 상대 소송
서방, 러 억만장자 제재 실패했나…대다수 여전히 푸틴 지지
작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서방이 100여명의 러시아 억만장자를 상대로 제재를 가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거나 자산을 매각한 억만장자도 거의 없고, 몇몇은 오히려 법의 잣대를 무기로 반격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6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제재는 전면적 군사 개입 없이 낮은 비용으로 막대한 고통을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방의 불량 국가 압박에 최적화된 도구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단순 제재만으로는 주요 외교 정책 포기나 정권 교체를 달성하기 어렵고, 되려 사업가들의 불만을 야기해 푸틴 대통령의 세력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미국 자금세탁방지전문가협회(ACAMS) 소속의 제재 전문가 조지 볼로신은 올리가르히(oligarch·러시아 신흥재벌)의 상당수가 푸틴 대통령의 '이너 서클'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볼로신은 "그들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에게 있어 제재는 고통스럽겠지만 정책적 관점에서는 사실 효과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억만장자들이 푸틴 정권이나 전쟁에 대한 공개적 비판을 통해 자산을 되찾은 경우도 거의 없다고 WSJ은 짚었다.

러시아 에너지 재벌 올레그 데리파스카는 러시아의 침공 직후 전쟁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지만 여전히 미국과 영국, 유럽의 제재 대상이다.

작년 12월에는 러시아 법원이 그가 소유한 소치 지역 고급 호텔 단지에 대해 압류 명령을 내리는 수모도 겪었다.

서방, 러 억만장자 제재 실패했나…대다수 여전히 푸틴 지지
일부 억만장자들은 영국과 유럽을 상대로 긴 법정 다툼에 돌입하는 등 반격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 올리가르히로 꼽히는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이달 룩셈부르크 법정에 그의 러시아 고객사들에 대한 유럽연합(EU)의 제재와 관련해 이의를 제기했다.

단지 러시아 국적의 사업가라는 이유만으로 불공정하게 제재받고 있고, 푸틴 대통령과의 관계 또한 과장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아브라모비치의 측근인 석유 재벌 유진 슈비들러도 영국의 제재가 가족에게 심각한 어려움을 야기했으며 균형을 잃은 처사라며 영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러시아 여권을 소지한 적조차 없고 2007년 이후로는 푸틴 대통령과 대면한 적이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WSJ은 푸틴 대통령이 이러한 상황을 틈타 억만장자들이 조국의 품으로 돌아올 것을 종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월 국정연설에서 "모자를 손에 들고(공손하게) 뛰어다니며 당신의 돈을 구걸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조금이라도 되찾아보겠다고 법원에 기대거나 과거에 매달리지 말라"고 말했다.

서방 정부는 억만장자 제재는 그 영향을 떠나 러시아 경제를 마비시키기 위한 광범위한 압박 수단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러시아의 지원으로 부를 축적한 이들이 평범한 삶을 유지하는 것을 그대로 둘 수 없다고도 주장한다.

전직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 국장 존 스미스는 "(푸틴에 대한) 지지를 벗겨내는 게 목적"이라며 "아직 티핑 포인트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앞으로도 그러지 못할 것이란 뜻은 아니다"라고 관측했다.

WSJ은 실제 변화의 신호도 감지되고 있다며 러시아 디지털 은행 틴코프 창업자인 올레그 틴코프가 최근 영국의 제재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전했다.

틴코프는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 시민권을 포기하고 푸틴 대통령을 상대로 여러 차례 비판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