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관광특구,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미군 대신 내국인 발길 이어져
'커뮤니티센터·뮤직센터·푸드 스트리트' 등 문화기반 확충 중
인구감소 위기 직면한 동두천시, '생활인구 늘리기'로 활로 모색
[지방소멸에 맞서다]⑬ 미군 떠난 자리, '공연'과 '예술'로 메우다
[※ 편집자 주 = 2010년대 중반 지역소멸론이 제기된 당시 79개이던 '소멸 위험' 지역은 올해 118곳으로 늘었습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을 넘습니다.

이제 그 그림자는 대도시까지 드리우고 있습니다.

모두가 암울한 현실만을 얘기하는 이때 온 힘으로 저출산과 초고령화에 맞서는 지자체들이 있습니다.

지자체와 주민들이 힘을 모아 출산율을 끌어올리고 인구 유치에 발 벗고 나서는 그곳, '지방소멸에 맞서는' 그곳들이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그 현장을 생생하게 취재해 매주 월요일 1편씩 기획 기사를 송고합니다.

]

"무료 공연을 한다기에 서울에서 1시간 넘게 전철을 타고 왔는데 잘 온 것 같아요.

"
지난달 22일 주말을 맞아 경기 동두천시 '두드림 뮤직센터' 공연장을 처음 찾은 권서일(58) 씨 부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100석 규모의 작은 공연장인 두드림 뮤직센터에서는 이날 인디밴드 가수 2명이 초청돼 관객과 만났다.

한낮 폭염에다 저녁부터 많은 비까지 예보된 탓에 객석은 빈자리가 대부분이었으나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의 표정은 밝았다.

두드림 뮤직센터에서는 매월 2차례 토요일에 R&B 등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장르의 음악 공연이 무료로 진행된다.

[지방소멸에 맞서다]⑬ 미군 떠난 자리, '공연'과 '예술'로 메우다
뮤직센터 인근 보산동 관광특구 골목길에는 이색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추억 사진을 찍는 연인도 눈에 띄었다.

경원선 전철 보산역 뒤편 보산동 관광특구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역 주민조차 가기를 꺼리던 곳이었다.

미군을 상대로 영업하던 곳으로 한때 동두천 지역경제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번창했으나,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행인조차 거의 없어 적막감이 감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내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며 예전의 활기찬 모습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 미군만 찾던 곳, 내국인 발길 이어져
보산동 관광특구에서 2017년부터 공방과 카페를 운영하는 김종윤(48) 씨는 "7년 전 처음 카페를 열었을 때 손님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외국인과 내국인이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며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손님 중에는 '동두천에 살면서 처음 왔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며 "주말마다 공연 등이 열리면서 공방에 구경하러 들어오는 사람도 생겨났다"고 덧붙였다.

[지방소멸에 맞서다]⑬ 미군 떠난 자리, '공연'과 '예술'로 메우다
김씨와 비슷한 시기에 공방을 연 박은화 대표도 "처음 공방을 열었을 때는 수강생 외에 내국인을 볼 수가 없을 정도여서 혼자 공방에 있을 때는 무섭기까지 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평소에도 오가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나이가 40대인 박 대표는 고향이 동두천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7년 전 이곳에 공방을 열었다.

그는 "이전까지 보산동 관광특구는 주민들도 오기에 부담이 되는 장소였는데, 지금은 밤에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주민까지 있는 등 분위기가 정말 많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주말이면 이색적인 장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청년들도 가끔 눈에 띈다고 한다.

김종윤 사장은 "보산동 관광특구만의 묘한 분위기 때문인지 사진 마니아들이 종종 찾아와 건물이나 골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며 "웨딩 촬영을 하러 온 예비부부도 있었다"고 말했다.

◇ 보산동 관광특구 쇠락하자 동두천 경제도 '휘청'
동두천시 보산동 11만㎡가 특구로 지정된 것은 1997년 1월이다.

미군과 제3 외국인 이용이 활발한 지역으로, 동두천시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당시 문화체육부로부터 특구 지정을 받았다.

이곳은 동두천 주둔 미군기지들과 인접해 있어 1950년대 이후 주한 미군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상가 330여개가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됐다.

2004년 동두천에 주둔한 미군의 절반가량이 이라크 파병으로 빠져나가기 전까지는 지나가다 서로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활기가 넘치던 곳이다.

[지방소멸에 맞서다]⑬ 미군 떠난 자리, '공연'과 '예술'로 메우다
관광특구 내에서 40여년 간 옷 가게를 운영하는 허진(64) 씨는 "보산동 관광특구는 서울이나 부산 등 대도시의 경제 상황과는 무관하게 경제가 활발하게 돌아가던 곳"이라며 "당시만 해도 동두천 지역경제의 4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돈이 많이 돌아 '개도 1달러짜리는 안 물고 간다'는 말까지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이라크 파병에 이어 2016년 평택으로 미군기지가 이전하면서 동두천 주둔 미군이 감소하자 지역 상권이 크게 위축됐다.

20년 전 2만여명에 달하던 동두천 주둔 미군은 현재 4분의 1 수준인 4천∼5천명으로 줄었다.

미군 감소와 함께 보산동 관광특구도 위축돼 300개가 넘었던 점포가 지금은 200여개로 줄었다.

이는 동두천시 인구 감소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1991년 6만8천여명이던 동두천시 인구는 2004년 8만명, 2007년 9만명을 돌파한 데 이어 2016년 9만8천여명으로 인구 10만명을 목전에 뒀다.

그러나 미군 평택 이전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2017년부터 매년 1천∼2천명씩 줄어 지난달 말 8만9천여명으로 감소해 9만명 선까지 무너졌다.

[지방소멸에 맞서다]⑬ 미군 떠난 자리, '공연'과 '예술'로 메우다
◇ '도시 공동화 막아라'…문화예술공간으로 변신 중
동두천시가 지역경제의 핵심인 보산동 관광특구의 공동화를 막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2015년부터다.

시는 70억원의 예산을 들여 '두드림 디자인 아트빌리지 조성사업'을 추진했다.

이 사업은 관광특구 내 빈 점포를 활용해 공방을 유치하고 이들을 위한 커뮤니티센터를 지어 지원하는 것이다.

공방은 현재 도자기, 가죽, 목공, 금속 등 29곳이 운영 중이다.

또 2018년 6월 준공한 커뮤니티센터는 2층은 공예 공동작업실, 3층은 3D 프린터 등을 갖춘 체험교육실, 4층은 각종 회의 등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각 공방과 커뮤니티센터는 매월 2차례씩 일일 공방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인근에는 41억원을 들여 지상 3층 규모의 '두드림 뮤직센터'도 지었다.

뮤직센터는 100석 규모의 공연장과 전시홍보관, 녹음실 등을 갖추고, 월 2회 토요일에 무료로 상설 공연을 한다.

뮤직센터 상설공연 가입 회원은 500명이 넘는다.

공연장을 찾은 안상헌(41) 씨는 "공연장을 찾기 시작한 것은 1∼2년쯤 됐다"며 "시간이 날 때마다 공연을 보러 오고 있고, 인디밴드 공연이 많아 뭔가 신선한 느낌이 있어 좋다"라고 말했다.

뮤직센터의 초청을 받아 공연하러 온 가수 윈(WYNN) 씨는 "6년 전 동두천 미군부대에서 군 복무를 한 후 처음 왔는데, 거리 모습이 깔끔하게 변해 여행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수 입장에서 팬들을 편하게 만날 수 있고, 무료 공연이라 팬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며 "이런 무대가 좀 더 활성화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보산동 관광특구는 과거 미국 음악을 직·간접적으로 수입한 곳으로, 한국 최초의 록밴드인 신중현의 '애포드'를 중심으로 국내에 록 음악을 알린 지역이다.

조용필, 인순이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들이 활동하던 곳이기도 하다.

[지방소멸에 맞서다]⑬ 미군 떠난 자리, '공연'과 '예술'로 메우다
동두천시는 관광특구 내 한미 우호의 광장 야외무대를 중심으로 2017년부터 매년 10월 'DDC 핼러윈 축제'를 열어 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첫해 이틀간 1만1천명, 이듬해 1만3천명이 방문한 뒤 지난해 10월에는 하루에 1만4천명이 방문하는 등 축제가 알려지며 자리를 잡고 있다.

불행하게도 2019년에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으로, 2020∼2021년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열리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이태원 참사로 2일차 축제가 취소됐다.

관광특구 내에 각국의 먹거리를 맛볼 수 있는 '월드 푸드 스트리트'를 조성해 현재 9곳을 운영하고 있으며, 건물 20곳과 보산역 하부 교각 10곳에 그라피티 25개 작품을 그려 관광객에게 먹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생활인구 늘려라"…'핫플레이스' 꿈꾸는 동두천
동두천시가 보산동 관광특구를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시키려는 것은 생활인구를 늘려 인구감소에 대응하려는 측면도 있다.

생활인구는 정주인구뿐 아니라 지역을 방문하거나 체류하면서 지역의 활력을 높이는 사람까지 그 지역의 인구로 보는 개념이다.

동두천시는 시 전체면적이 95.66㎢에 불과한 작은 도시로, 한때 전체 면적의 42%에 해당하는 40.63㎢가 미군 공여지였다.

미군기지 평택 이전에 따라 23.21㎢가 반환됐으나, 대부분이 산지여서 개발이 거의 불가능하다.

[지방소멸에 맞서다]⑬ 미군 떠난 자리, '공연'과 '예술'로 메우다
산업기반이 부족한 동두천시는 보산동 관광특구를 활성화해 위축된 지역경제를 살리려 노력하고 있다.

보산동 관광특구 활성화 계획은 어느 정도 성과를 내는 듯했으나, 2020∼2022년 코로나19 확산 사태를 맞으며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동두천시는 올해부터 다시 고삐를 조이고 있다.

최지호 동두천시 관광휴양과 주무관은 "인구가 감소하는 동두천시 입장에서 생활인구를 늘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보산동 관광특구에 더 많은 내국인이 찾을 수 있도록 일종의 문화적 도시재생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보산동 관광특구는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 핫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며 "이제 막 변화의 시동을 걸고 있는 보산동 관광특구를 '핫플레이스'로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경제도 살리는 공간으로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