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전주박물관, 채용신의 '평생도' 등 83점 소개하는 특별전 진행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순간…조선시대 그림에 남은 만남과 추억
살면서 잊지 못할 순간 10가지를 꼽으라면 무엇일까.

화가는 담담히 그의 삶을 그려냈다.

부친으로부터 학문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 시절,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과거에 급제한 순간 등이 비단에 담겼다.

그러나 그중 제일은 그가 50세가 되던 해의 일이다.

"어명을 받들어 흥덕전에서 삼가 태조 고황제의 어용(御容·임금의 초상화인 어진과 같은 의미)을 그렸다.

…공이 귀신같이 붓을 휘두르니 만조백관들이 모두 크게 놀랐다.

"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순간…조선시대 그림에 남은 만남과 추억
화가 채용신(1850∼1941)이 '평생도'(平生圖)에 남긴 찬란한 순간이다.

국립전주박물관이 이달 공개한 특별전 '아주 특별한 순간 - 그림으로 남기다'는 제목 그대로 조선시대 그림 속에 담긴 만남과 추억에 주목한 전시다.

특별한 만남, 자연, 행사를 주제로 다룬 작품 31건 83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전시는 조선 선비들의 자유롭고 사적인 모임을 다룬 그림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붓, 책 등 평소 애호했던 물건을 빗대어 벗으로 칭하고 그들과 만나는 상상의 순간을 그린 이인문(1745∼1821)의 '십우도'(十友圖)에는 절친한 벗과 함께하는 기쁨이 묻어난다.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순간…조선시대 그림에 남은 만남과 추억
취미를 공유하거나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모임인 '아집', '아회'를 소재로 한 작품도 여럿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유족이 기증한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는 중국 송나라 당시 내로라하는 문인 16명의 모임을 그린 작품으로, 조선에서도 이와 같은 그림을 즐겨 그렸다고 한다.

지금처럼 카메라가 없던 시절 인상적인 풍경을 그림으로 남긴 경우도 많다.

높은 식견과 안목을 갖춘 사대부 화가로 이름 날렸던 강세황(1713∼1791)이 아들을 따라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피금정을 본 뒤 남긴 그림은 특히 관람객의 시선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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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문인 화가 이인상(1710∼1760)의 '구룡연도'(九龍淵圖)는 절벽과 폭포의 뼈대만 그렸지만, 15년 전 지인과 함께 구경했던 금강산 구룡폭포를 추억하는 그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시에서는 국가적 경사나 집안의 중요한 기념일을 기록한 그림도 두루 소개한다.

많은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평안감사 부임을 축하하며 대동강에서 베푼 잔치 모습을 담은 '평안감사향연도'(平安監司饗宴圖)는 등장인물만 2천500명이 넘어 시끌벅적한 광경이 펼쳐지는 듯하다.

1743년 영조(재위 1724∼1776)와 신하들의 활쏘기 행사를 기록한 '대사례도'(大射禮圖)의 경우, 왕과 신하가 각각 활을 쏘는 순간과 상벌을 내리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순간…조선시대 그림에 남은 만남과 추억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문관(文官) 초상' 등 근대기 초상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박물관 관계자는 "특별한 순간에 붓을 들었던 화가들의 손길을 따라 시간여행을 하면서 지금, 여기, 오늘을 기록으로 남기려 한 사람들의 마음을 떠올려 달라"고 귀띔했다.

이번 전시는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개최를 기념하며 기획됐다.

10월 29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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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