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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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회사원 A씨는 사용하는 화장품 다수를 중저가 제품으로 바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 기간을 거치며 화장 습관이 변한데다 생활물가 상승을 고려해 지출을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재택 기간 화장 단계를 줄였고, 물가가 오르면서 가격에 민감해졌다. 화장품 앱(애플리케이션)에서 성분을 비교하거나 온라인쇼핑몰 리뷰를 보고 구입하다보니 최애템(가장 좋아하는 제품)이나 선물용 빼고는 화장품도 저렴한 상품을 고르게 됐다"고 말했다.

중저가 화장품 수요가 늘어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불황으로 과시형 소비가 아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지는 실속형 소비 트렌드가 화장품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온라인쇼핑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발달로 MZ(밀레니얼+Z)세대 화장품 소비가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도 일조했다는 평가다.

최근 이같은 흐름이 잘 드러난 곳은 균일가 생활용품점 다이소다. 다른 제품과 같이 화장품을 500~5000원 균일가로 판매하는 다이소는 SNS에서 가성비 아이템'이 입소문을 타면서 최근 화장품 매출이 급성장했다.
사진=다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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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다이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화장품 매출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약 70% 뛰었다. 상품군별로 수분크림과 로션 등 기초 화장품 매출이 90% 급증했고, 립글로스·마스카라 등 색조화장품 매출은 50%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다이소 입점 화장품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4월 네이처리퍼블릭이 '식물원'을 선보인 후, 올해 5월까지 총 14개의 브랜드 화장품이 다이소에 둥지를 틀었다. 2000년 '3300원짜리 화장품'을 내세워 원브랜드숍 유행을 부른 에이블씨엔씨 역시 '어퓨'를 입점시켰고, 애경산업(브랜드 포인트), 동국제약(마데카21), 이넬화장품(입큰) 등도 입점해 있다. 다이소 관계자는 "브랜드사와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강화했고, 대부분의 화장품은 품질이 검증된 한국콜마, 코스맥스, 코스메카코리아 등 제조업자개발생산(ODM)·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상품을 공급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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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가 돋보이는 화장품의 선전은 이뿐만이 아니다. K뷰티 대표 화장품 기업 아모레퍼시픽의 2분기 국내 실적에서도 이같은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고가의 럭셔리 브랜드와 프리미엄 브랜드 매출은 두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했으나 중저가 화장품과 모발 관리 브랜드가 포진한 데일리 뷰티 부문은 매출이 0.4% 감소하는데 그쳤고, 수익성도 개선돼 흑자 전환했다.

'인디브랜드'로 불리는 중소형 화장품기업의 성장 역시 이같은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업력이 대기업보다 짧지만 ODM 기업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트렌드를 따라잡은 인디브랜드는 가성비를 무기로 국내외에서 약진하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 상장에 성공한 마녀공장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2년 설립된 마녀공장은 클렌징오일과 에센스, 앰플 등이 히트를 치며 대표 제품 3개 매출로 지난해 전체 매출(1018억원)의 절반(56.1%)이 넘는 571억원을 벌어들였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계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계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가성비 화장품 브랜드의 선전은 해외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세계적인 소비 위축과 함께 화장품 시장에서 트레이딩 다운(하향구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중저가 화장품 '엘프뷰티'의 흥행도 이를 방증한다. 엘프뷰티는 이달 초 1분기 실적 발표 당시 2024회계연도(2023년 4월~2024년 3월) 실적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연매출은 직전 전망치보다 11.9% 상향 조정한 7억9200만달러에서 8억200만달러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순이익의 경우 직전 전망치보다 26.6% 끌어올린 1억2500만달러에서 1억2700만달러 수준으로 예상했다. 세계 1위 로레알그룹 역시 상반기 중저가 브랜드 매출이 지난해 상반기보다 13% 뛰어 럭셔리 브랜드(6%)의 두 배 수준 매출증가율을 기록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는 지난해 한국등 아시아 주요 화장품 시장의 트렌드를 분석한 결과, 가성비 제품과 '스몰 럭셔리' 제품으로 양분됐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박은경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전세계적으로 소비자의 주머니 사정은 악화하고 있으나 화장품 생필품화가 지속되며 저렴한 고기능성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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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의 이커머스 선호와 온라인 커뮤니티 및 SNS 중심 소비 성향 역시 이같은 움직임을 촉발했다는 진단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화장품 온라인 거래액은 11조976억원으로 2018년(9조8521억원)보다 12.7% 불어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 12조9406억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주춤하는 모양새를 나타냈지만 여전히 10조원을 웃도는 수치다.

김명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온라인을 통한 화장품 구매 증가는 더딘 경기 회복과 함께 소비자의 중저가 화장품 선호를 높이는 요인"이라며 "온라인을 통해 구매 시 제품 간 가격과 기능 비교가 쉽기 때문에 소비자의 합리적인 소비가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K뷰티 입장에서는 주력 해외시장으로 꼽히는 중국 시장 역시 경기 회복이 예상에 못 미치면서 자국산을 선호하는 ‘궈차오’(國潮·애국소비)와 별도로 중저가 화장품 시장 중심의 성장이 나타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일본과 동남아시아 등 비 중화권 시장의 중요도가 커지면서 해당 시장에서의 국내 화장품 호조도 이어지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화장품 수출액은 35억42만달러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3%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중화권의 수출은 부진했지만 동남아시아와 미국 지역의 약진이 돋보였다.

정지윤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홍콩 지역 수출액이 18% 감소했지만 태국(수출액 증가율 36%), 베트남(42%), 미국(26%) 등 비(非) 중국이 상쇄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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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