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출신 극작가 세르히오 블랑코…"한국과 연극으로 교감"
독특한 소재와 형식…"자서전의 요소와 소설의 요소가 합쳐진 극"
연극 '테베랜드' 작가 "작품이 어렵다는 말은 저에겐 칭찬이죠"
"'테베랜드'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은 제게 칭찬처럼 들려요.

관객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연극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
자신이 쓴 연극 '테베랜드'를 본 후기를 전해 들은 우루과이 출신의 작가 세르히오 블랑코(52)에게서는 놀라는 기색을 찾을 수 없었다.

2일 공연장인 서울 충무아트센터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공연이 관객에게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준다고 믿는다"며 "관객이 단순히 티켓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을 보며 생각에 빠지기를 바랐다"고 밝혔다.

세르히오 블랑코는 남미와 유럽 무대에서 주목받는 극작가다.

'테베랜드'는 2013년 우루과이에서 초연한 뒤 영국, 미국 등 전 세계 16개국에서 공연됐고 영국 오프 웨스트엔드 어워즈에서 작품상을 수상하며 호평받았다.

연극 '테베랜드' 작가 "작품이 어렵다는 말은 저에겐 칭찬이죠"
연극 '테베랜드'는 독특한 소재와 형식을 활용한다.

주인공 S가 아버지를 살해한 소년 마르틴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연극을 만드는 이야기를 그린다.

S는 관객에게 말을 건네며 현실과 연극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한다.

주인공 S가 블랑코 작가와 닮아있다는 것도 연극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요인이다.

S라는 이름은 작가의 이름인 세르히오(Sergio)의 첫 글자와 같고, 직업 역시 극작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작가는 '테베랜드'의 형식을 자서전의 요소와 소설의 요소가 합쳐진 '오토픽션'(auto-fiction)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그는 "저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고 새로 만들어낸 이야기도 있다"며 "S의 아버지가 농구선수라는 설정과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살고 있다는 설정은 실제 내 이야기다.

그러나 마르틴이라는 캐릭터는 완전한 창작"이라고 이야기했다.

블랑코 작가는 작품의 구조를 어렵게 설계한 것은 자신의 의도였다고 했다.

현실과 연극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면 관객들이 작품에 더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는 "산에 안개가 낀 풍경이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을 보면 경계가 희미하기 때문에 더 신비롭게 보인다"며 "현실과 연극의 경계가 모호할 때 더 매력적이고 신비롭게 다가온다.

관객에게 수수께끼를 푸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극 '테베랜드' 작가 "작품이 어렵다는 말은 저에겐 칭찬이죠"
그는 한국 관객들이 자신에게 질문이 담긴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작품의 핵심을 꿰뚫는 질문을 받을 때면 놀라움을 느낀다는 그는 우루과이와 지구 정반대에 위치한 한국의 관객과 연극으로 소통하는 경험이 특별했다고 말했다.

"글을 쓰는 작업은 홀로 하지만 결국 사람을 만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은 우루과이와 문화가 다르고, 언어도 다르지만, 연극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의미로 다가왔죠."
블랑코 작가는 한국 공연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좋은 번역으로 의미가 잘 전달됐고, 신유청의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가 섬세하게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무대가 영리하면서도 감정적으로 풍부하고 섬세했다"며 "신 연출이 지성과 감성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조화롭게 연출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배우들은 정확하면서도 아름다운 표현을 보여줬다.

작품을 쓴 것은 나지만 마치 배우들이 쓴 것처럼 느껴졌다"고 평했다.

블랑코 작가는 파리로 돌아가 2주 뒤부터 새로운 작품 연출에 돌입한다.

제목은 땅을 의미하는 단어인 '티에라'(Tierra)이며, 11월 우루과이에서 초연한다.

그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받았던 경험과 인상을 바탕으로 한국에 대한 글도 쓸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에 머물며 지리적으로 거리가 멀더라도 결국 사람 사이의 간극은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좋았어요.

한국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고 새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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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테베랜드' 작가 "작품이 어렵다는 말은 저에겐 칭찬이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