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한국, 중국에서 미국으로 방향 틀었다"…불붙는 테크 냉전
미국과 중국의 '테크 냉전기'(Tech cold war)를 맞아 한국이 중국에서 떨어져 나와 미국으로 경제의 축을 옮기고 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한국은 그동안 이미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많이 줄여왔으나 여전히 중국은 없어선 안 될 무역 파트너다.

하지만 미중 간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하면서 한국 기업들은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조심스럽게 방향타를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 FT의 분석이다.

신문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올해 초 광저우의 LG디스플레이 공장을 찾은 장면에 주목했다.

FT "한국, 중국에서 미국으로 방향 틀었다"…불붙는 테크 냉전
외면적으로 중국은 외국 투자를 환영한다는 것이었지만,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는 한국에 대한 무언의 압박이었다고 FT는 해석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은 미국 정부로부터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보조금을 받는다.

물론 이는 공짜가 아니다.

미국 정부는 한국의 기술력을 원하고 있고, 자국 공급망에서 중국의 역할을 줄이고 싶어 한다.

한국 기업들은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미국의 수많은 제한 조치에 응해야 하지만, 그러다간 중국의 보복을 받게 될 수 있다.

FT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도발적인 발언을 소개했다.

그는 지난 6월 '중국의 패배에 배팅하는 이는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가 한국의 큰 반발을 샀다.

하지만 이미 한국 기업들은 중국 경제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고 FT는 전했다.

한국은행이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국은 2004년 이후 처음으로 중국보다 미국에 더 많이 수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정책 입안자들의 고민은 자국의 대표 기업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지정학적 환경에서 잘 적응해 미국으로부터 최대한 이익을 뽑아내면서 중국으로부턴 역풍을 최소화할 수 있느냐라고 FT는 평가했다.

한국은 소련 붕괴 이후인 1992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경제 협력을 본격화했고, 이후 두 나라의 무역 규모는 60억달러에서 작년 3천억달러까지 늘어났다.

한국은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은 안보 파트너로, 중국은 경제 파트너로 구분해 대해왔고, 이와 같은 접근법은 나름 통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FT는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국 기업들은 미국으로부턴 기술력을 흡수하면서 중국으로부턴 제조 파워를 이용하면서 두 시장을 십분 이용해 왔다는 것이 FT의 평가다.

하지만 2016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논란과 함께 중국이 한국에 비공식적인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양국 관계가 크게 어긋났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위원으로 활동 중인 여한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냉전 이후 우리는 경제와 안보 이슈를 분리할 수 있다고 봤고 한동안은 가능했다"라며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FT "한국, 중국에서 미국으로 방향 틀었다"…불붙는 테크 냉전
2000년대 후반부터 한국 기업들은 중국에서 떠나기 시작했는데, 늘어나는 현지의 생산 비용이 한몫했다.

중국의 정책도 탈중국행에 영향을 미쳤다.

2016년 중국의 자국 배터리 업계에 대한 보조금 정책으로 한국 기업들은 현지 전기차 시장에서 발을 빼야 했다.

중국 기업들의 기술력 자체도 많이 향상돼 한국 제품에 대한 수요가 줄고 있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워싱턴지부장은 미국은 이미 2011년 한국의 투자처로 중국을 따돌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스마트폰 생산자이지만 중국 시장 점유율은 1%밖에 되지 않는다.

삼성은 2008년 스마트폰 공장을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옮겼고, 2019년에는 중국 내 마지막 스마트폰 공장을 닫았다.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를 제외하더라도 한국 기업이 중국 내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2016년부터 작년까지 37.3% 줄었다.

물론 미국의 보호주의적 산업 정책도 한국의 반도체, 자동차 기업들에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고 FT는 짚었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반도체지원법 등을 도입하면서 한국의 자동차,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 내 활동 등으로 인해 혜택에서 제외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을 넘어 유럽, 인도, 중동, 남미, 동남아 등 신규 시장 개척에도 주력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부터 한류까지 다양한 영역의 한국 기업들이 신시장을 찾아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 지부장은 "한국은 강대국 사이에 끼인 작은 나라"라며 "그 사실은 한국인에게 영구적인 위기감을 주고 있지만 그것이야말로 한국이 성공하도록 만들어준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