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인맥’ 갖춘 구조조정 해결사…이젠 혁신기업 파수꾼으로
학·정계·행정부 골고루 경험한 ‘성과추구형 CEO’
취임 1년만에 대우조선, 쌍용차 매각…UAE 투자협력 성과
“스타트업 성장 지원”…작년
2238개사에 27조 자금 공급
대우경제연구소는 1984년 국내 첫 민간 경제연구소로 설립됐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여파에 따른 대우그룹 워크아웃으로 1999년 해체 수순을 밟기까지 경제·산업 연구, 정책 제안 등을 수행하며 국내 최대 민간 싱크탱크로 자리매김했다.

1987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청년 강석훈도 청운의 꿈을 안고 연구소에 입사했다. 당시 경남 거제 대우조선 옥포조선소 탐방은 그룹 신입사원 교육의 필수 코스였다. 육상 도크에서 건조 중인 거대한 선박의 위용은 새내기 사원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에 충분했다. 벅찬 가슴으로 돌아온 그는 얼마 후 해외 유학길에 올랐고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해 1992년 금융팀장(연구위원)으로 복귀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2022년 9월 산업은행 회장 직함을 단 그는 한화그룹의 실질적 리더인 김동관 부회장과 마주앉았다. 두 사람은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고 2조원의 신규 투자금을 투입하는 방안에 최종 합의했다. 산은이 2000년 대우조선 대출금을 주식으로 전환해 최대주주에 오른 지 22년만이었다. 역대 어느 회장도 이뤄내지 못했던 대우조선해양 민영화는 30년 전 옥포조선소에서 꿈을 키운 한 청년의 손끝에서 마무리됐다.

22년 만에 매각된 대우조선

강석훈 산은 회장은 1964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때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이사했다. 뼈대 있는 유교 집안(진주 강씨)에서 태어난 그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큰아버지로부터 천자문을 배웠다. 지금도 산간 오지에 속하는 봉화는 당시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아 초롱불을 켜고 지냈다. 서울 청량리역에 첫발을 내딛은 ‘촌놈’은 번쩍거리며 돌아가는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1987년 해외 유학을 떠날 때 생애 첫 비행기를 탔다. 박사과정 1학년을 마친 이듬해 여름방학, 아내와 함께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하기 위해 미국 중서부 지역을 자동차로 내달렸다. 이 때 태양이 산이 아닌 광활한 들판 너머 지평선에서 뜨고 지는 걸 처음 봤다. 이런 경험은 그가 편협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넓고, 깊게 사유하는 습관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을 줬다.
1996년 연구소 생활을 접고 대학(성신여대 경제학과)에서 교편을 잡았지만 현실 참여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박근혜 캠프에 합류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서울 서초을 지역구에 출마해 금배지를 달았고 그해 바로 치러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승리하면서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정기획조정분과 위원으로 참여했다. 초대 내각을 설계하고 국정과제를 구체화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상아탑에서 국회로, 청와대로…

박근혜 정부가 공식 출범한 뒤 국회로 돌아온 그는 대선 공약을 입법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당시 핵심 공약 중 하나가 대기업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였다. 이 공약은 보수·진보 양쪽 모두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다. 보수 진영에서는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이라고 반대했고 진보 진영은 기존 순환출자 해소가 포함되지 않았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럼에도 진통 끝에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와 본회의를 통과했고 공약은 현실이 됐다. 기대 효과는 수년에 걸쳐 서서히 나타났다. 일부 대기업집단을 제외하고 기존 순환출자까지 대부분 해소되면서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이 한층 높아졌다.
박근혜 대통령(왼쪽)이 2016년 강석훈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한경DB
박근혜 대통령(왼쪽)이 2016년 강석훈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한경DB
그는 초선 의원임에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당간사를 맡아 청와대와 정부, 새누리당의 정책을 조율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아픔도 있었다. 기재위 조세소위원장으로 재직하던 2015년, 기존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꾼 세제개편안이 시행되면서 ‘중산층 증세’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정권을 위협할 만큼 여론이 악화되자 정부·여당은 부랴부랴 소급 입법을 추진했다. 결국 소득 하위 70% 이하에 대해선 세제개편안 전후로 세 부담 증가가 없도록 하는 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소득세를 단 한푼도 내지 않는 계층이 거의 50%에 육박하게 됐다. 그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경제학자로서 매우 괴로운 시간이었다”면서 “다시는 나와 같은 불행한 조세소위 위원장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2013년엔 정책금융기관 재편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한국산업은행법 전부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 법안은 당시 한국정책금융공사와 산업은행으로 분리돼 있던 양 기관을 재통합하는 게 주된 내용이었는데, 통합법인의 대표자를 과거처럼 ‘총재’로 할 것인가, 아니면 ‘회장’으로 둘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됐다. 법안을 대표 발의했던 그는 호칭을 최종적으로 회장으로 정리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자신이 그 회장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또 한 번 ‘킹메이커’가 되다

20대 총선에서 재차 출마했으나 낙선의 고배를 들었던 그는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2016년 청와대 경제수석에 발탁됐다. 인수위에서 박근혜 정부의 경제·복지 정책을 설계했던 그가 노동·공공·금융·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의 최종 드라이브를 걸고 경제활성화 정책의 고삐를 죄는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대우조선해양과 한진해운을 비롯한 조선업과 해운업 구조조정도 진두지휘하면서 쉴 틈 없는 시간을 보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대통령이 탄핵되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도 국가 경제정책을 조율하는 경제수석으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다.
강석훈 청와대 경제수석이 2016년 청와대에서 출입기자단을 대상으로 브리핑을 하고 있다. 한경DB
강석훈 청와대 경제수석이 2016년 청와대에서 출입기자단을 대상으로 브리핑을 하고 있다. 한경DB
이후 대학 강단으로 돌아왔지만 정치권에선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이번엔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에서 대선으로 직행한 윤석열 후보의 부름을 받았다. 캠프에서 정무실장과 정책특보로 활약한 그는 선거에서 승리한 뒤 윤석열 정부의 초대 산업은행 회장으로 임명됐다.
강 회장은 학계와 행정부, 정치권을 골고루 경험한데다 금융시장과 거시경제에 대한 경륜과 안목을 갖춰 산은을 이끌 적임자로 추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권위의식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온화하고 소탈한 성품의 소유자지만 업무에 있어서는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해 ‘성과추구형 CEO’라는 평가다. 예상치 못한 질문으로 은행 경력 20~30년의 베테랑 직원들조차 업무보고 때 진땀을 빼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정·관계, 언론, 재계, 시장전문가 등 외부 네트워크가 두터워 실무선에서 막힐 때마다 해결사 노릇도 톡톡히 한다. 최근 노조를 비롯한 젊은 직원들이 본점 부산 이전 방침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내부 소통이 원활하지 않지만 그를 직접 대면한 임직원들마다 “부산 이전 이슈만 없었다면 틀림없이 역대 최고의 CEO가 됐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소탈한 성품의 ‘성과추구형 CEO’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해 셰이크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대통령 겸 아부다비 통치자와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데 합의했다. 이 자리에서 UAE 국부펀드인 무바달라는 한국에 3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는 윤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였다. 무바달라의 막대한 투자금을 국내로 들여올 주무기관으로는 산은이 선정됐다. 갑작스럽게 중책을 떠맡은 산은 임직원들은 당혹스러웠다. 화기애애했던 정상 간 회동과 달리 파트너인 무바달라 측은 산은과 충분한 상호 신뢰 관계가 구축되기 전까지 쉽게 거래를 트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서울 삼성동 한국무역협회에서 열린 'UAE 투자유치 후속조치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이주완 메가존클라우드 대표, 도용환 스틱인베스트먼트 대표, 강민균 JKL파트너스 대표, 윤 대통령. 한경DB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서울 삼성동 한국무역협회에서 열린 'UAE 투자유치 후속조치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이주완 메가존클라우드 대표, 도용환 스틱인베스트먼트 대표, 강민균 JKL파트너스 대표, 윤 대통령. 한경DB
실무진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자 강 회장이 직접 나섰다. 무바달라 고위급과 통하는 국내외 인사들을 두루 접촉했다. 결국 두달 뒤인 3월께 UAE 현지에서 왈리드 알 모카랍 무하이리 무바달라 부총재와 만남이 성사됐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단시간 내 친분을 쌓은 강 회장은 방한 약속까지 얻어냈고 실제 지난 5월 무바달라 방한단이 서울을 찾아 산은이 주최한 ‘UAE-KOREA SIP 포럼’에 참석했다. 포럼에서는 에너지, 정보통신기술, 농업기술, 생명공학, 항공우주 등 우선 투자 협력 분야를 중심으로 국내 다양한 투자 기회가 소개돼 방한단의 호평을 얻었다.

서울대 82학번의 ‘파워 인맥’

강 회장의 네트워크는 주로 학맥으로 이어져 있다. 우선 서울대 경제학과 82학번 동기 동창으로 정찬우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 이승열 전 하나은행장, 구윤철 전 국무조정실장, 김철주 전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유광열 SGI서울보증 사장, 송인창 전 아시아개발은행 상임이사 등이 포진해 있다.
‘황금인맥’ 갖춘 구조조정 해결사…이젠 혁신기업 파수꾼으로
서울대 법대 82학번 중에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 나경원 전 의원 등과 친분이 깊다. 서울대 경영학과 82학번인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박정림 KB증권 사장, 김신 SK증권 사장, 황성엽 신영증권 사장 등과도 가깝다. 신성범 전 국민의힘 의원(인류학과),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사회학과), 김성주 민주당 의원(국사학과) 등도 친한 대학 동기들이다.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동문수학한 인사로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윤상직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윤호 전 지식경제부 장관 등이 손꼽힌다.

“생애 기회 균등 실현에 매진”

강 회장은 시장에 대한 정부의 인위적 개입을 배격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장려함으로써 자아 실현 및 사회 발전을 유도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물론 결과에 대한 책임도 기본적으로 개인이 부담하는 게 옳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원칙이 실현되려면 국가가 균등한 기회를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기회의 균등은 단 한번이 아닌 생애 전 주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제공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강 회장은 국회의원 시절인 2015년 이 같은 취지를 담은 ‘기회균등 보장 및 촉진에 관한 법률’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앞줄 오른쪽 두번째)이 지난 2월 2차전지 유망 중소기업인 신흥에스이씨 오산공장을 방문해 회사 관계자로부터 제품 설명을 듣고 있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앞줄 오른쪽 두번째)이 지난 2월 2차전지 유망 중소기업인 신흥에스이씨 오산공장을 방문해 회사 관계자로부터 제품 설명을 듣고 있다.
강 회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도 “국민에게 기회 사다리를 만들어주고 좋은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산은은 지난해 고금리 기조로 벤처투자 시장이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도 혁신성장 분야 2238개 기업을 대상으로 27조4000억원의 자금을 공급했으며 올해도 25조5000억원 이상을 지원할 계획이다. 1년이란 짧은 기간이지만 쌍용차와 대우조선해양, KDB생명 등 주요 기업 매각을 마무리짓고 UAE 투자협력 등 적잖은 성과를 일궈낸 강 회장의 마지막 바람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실현될 것인가.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