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첫 장을 넘기자 밤새 고민했을 한 문장이 정성스럽게 적혀있다. 날짜와 받는 이의 이름까지 정성스럽게. 마음에 드는 문장에는 밑줄을 긋고 느낌까지 꼼꼼하게 적어 둔 메모. 다 읽지는 못했는지 책 중간쯤에 꽂혀 있는 빛 바랜 책갈피는 이 책의 주인이 어느 시절에 어느 서점에서 이 책을 샀는지 짐작케 한다. 내가 헌책과 헌책방을 좋아하는 이유들이다.

저마다의 책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에 세월의 이야기까지 보태진 헌 책을 만날 수 있는 헌책방. 올 여름 휴가지에서 숨겨진 보물 같은 헌책방을 찾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전국 방방곡곡의 '헌책방' 맛집을 소개합니다
속초 관광수산시장에 있는 ‘대경중고서점’은 한눈에도 그 오랜 세월을 짐작할 수 있는 정겨운 헌책방이다. 가수 윤종신의 뮤직비디오의 무대가 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규모는 작지만 오래된 책보다는 비교적 최근에 발간된 근간들이 많아서 책 상태가 아주 좋고, 최근에 출간되어 더 익숙하고 반가운 책들이 많다. 특히 속초 관광수산시장에 있어 부담없이 들르기에 좋다. 하지만 방문 전에 책방을 운영하는지 꼭 확인해보고 방문하자. (필자가 방문한 올해 초에는 주말에만 책방이 오픈했다.)

제주는 ‘책방올레’가 있을 정도로 개성 있는 컨셉의 독립서점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제주 한달살이. 일년살이 등 장기체류하는 여행객들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서점들도 많아진 것. 하지만 이런 개성 넘치는 독립서점만큼이나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헌책방도 있다. 제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책밭서점’은 제주도의 향토자료들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제주 역사와 문화, 자연을 공부하는 분들이 많이 찾는 책방으로도 유명하다. 제주 공항과 가깝고 책도 종류별로 분류가 잘 되어 있다. 제주 여행의 시작과 마무리에 방문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듯.
전국 방방곡곡의 '헌책방' 맛집을 소개합니다
제주 함덕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구들책방’은 사랑스러운 곳이다. 이름처럼 서점 한 켠에 구들방이 있어서, 책을 구입하거나 헌책을 가지고 가면 구들방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 헌책을 가지고 가면 커피와 교환도 가능하다. 책장 구석구석의 작은 의자들도 마련되어 있어 책을 둘러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인천으로의 여행을 계획 하고 있다면 한나절쯤 ‘배다리헌책방골목’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이곳에는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유명한 인천 한미서점을 비롯 집현전, 아델서점 등 헌책방이 많다. 최근에는 이 지역에 오랜 건물들을 리모델링한 예쁜 카페와 소품샵, 독립서점도 여러곳이 오픈했으니 여유있게 방문해보는 것이 좋겠다.
전국 방방곡곡의 '헌책방' 맛집을 소개합니다
‘모히토에서 몰디브 한잔’이라는 대사로 유명한 영화 ‘내부자들’에 소개된 단양의 ‘새한서점’은 찐헌책방이다. 12만권의 방대한 책이 미로 같은 촘촘하게 꽂혀있는 그야말로 책세상이다. 오랜 건물이고, 서점이 있을 것 같지 않은 한적한 산골에 있어 여느 도심의 서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 그 유명세만큼 자체 MD상품도 다양하다. ‘단양노트’라는 이름으로 책방지기 아드님이 브랜드화해 독특한 지역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다. 가는 길이 쉽지(?)는 않지만 오롯한 산골에서 오랜 책들의 향기를 느끼고 싶다면 꼭 방문해 보길 권한다.
전국 방방곡곡의 '헌책방' 맛집을 소개합니다
올 여름 도심에서의 휴식을 생각한다면 ‘서울책보고’를 추천한다. 교통과 주차가 편하고 드라마와 예능에도 심심치 않게 소개되면서 별스타그램의 인증샷 성지로도 유명하다. 오랜 세월과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있는 헌 책을 세련되고 트렌디 한 공간에서 만난다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서울책보고가 이처럼 사진 명소가 된 데에는 커다란 터널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서가 디자인도 한 몫 한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서현 교수가 디자인한 공간으로 책벌레가 책을 관통하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디자인했다고 한다.

잠실나루역에 위치한 서울책보고는 헌책은 물론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통해 책과 친해질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책을 읽고 싶은데 내게 어떤 책이 어울릴지, 또는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하고 싶은데 어떤 책이 좋을지 고민된다면 ‘북큐레이션’서비스를 통해 책을 추천 받아도 좋겠다.
전국 방방곡곡의 '헌책방' 맛집을 소개합니다
올 여름, 가성비 좋은 1000국에서 누군가의 행복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이 책을 먼저 만난 주인의 뜻밖의 이야기를 덤으로 들을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