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인텔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AMD가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와의 관계를 더 강화할 뜻을 내비쳤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도 한층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존 테일러 AMD 최고마케팅책임자(CMO·사진)는 3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AMD는 삼성전자와 오랜 기간 파트너 관계를 이어왔다”며 “앞으로도 파트너십 관계를 더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본지는 최근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에게 ‘삼성전자에 파운드리 물량을 더 늘릴 것이냐’는 이메일을 보냈다. 이에 대해 홍보·마케팅 업무를 총괄하는 테일러 CMO가 대신 응답했다. AMD가 삼성전자 파운드리 관계를 질문한 것에 대해 긍정적 답변을 한 것은 국내외 언론을 통틀어 처음이다.AMD는 중앙처리장치(CPU)·그래픽처리장치(GPU)를 설계하는 업체다. CPU·GPU 설계만 하고 제품 생산은 대부분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에 맡기고 있다. AMD는 최근 파운드리를 다변화할 계획을 밝혔다. 리사 수 CEO는 지난 21일 일본 매체 닛케이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제품의 안정적 생산을 위해 TSMC 외에 다른 파운드리 업체 선정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TSMC에 이어 파운드리 2위인 삼성전자를 염두에 둔 발언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테일러 CMO의 발언은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은 것으로 볼 수 있다.삼성전자가 파운드리 고객사를 다변화하면서 TSMC를 추격하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최근 테슬라, 모빌아이 등의 반도체 물량을 수주했다.테일러 CMO는 또 “AMD에 한국은 매우 중요한 시장인 만큼 한국 언론과의 관계 역시 중요하다”고 말했다. AMD는 삼성전자와 파운드리, D램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얽혀 있다. AMD가 최근 공개한 GPU 신제품인 ‘MI300X’에 삼성전자 HBM3를 적용할 계획을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TSMC의 첨단 패키징 기술이 한국보다 10년 앞서있다."(최광성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실장. 지난 2월 초격차 반도체 포스트팹 발전전략 포럼)최근 반도체산업에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패키징' 경쟁력에 대한 국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패키징은 전(前)공정을 과정에서 생산된 칩을 기기에 장착할 수 있는 상태로 가공하는 것이다. 최근 전공정에서 '칩 미세화'의 어려움이 커지면서 반도체기업들은 후(後)공정에 속하는 패키징 기술을 통해 칩 성능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앞으로 TSMC, 삼성전자 등 파운드리 기업들의 승부처가 '2나노미터(nm) 공정에서 고객사 칩 양산'이 아니라 '첨단 패키징 적용을 통한 고객사 칩 성능 극대화'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D램, GPU, CPU '한 칩' 처럼 동작하게 묶는 '패키징'이 관건생성형 인공지능(AI)을 위한 서버용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패키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GPU, D램 등 서로 다른 반도체들을 하나로 결합하는 '이종(異種·heterogeneous) 패키징' 능력이 반도체기업 기술력을 가르는 척도로 꼽히고 있다.챗 GPT 같은 생성형 AI 기술 고도화를 위해선 대규모 데이터를 빠르게 학습하고 이를 활용해 서비스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게 반도체다. 대표적으로 대용량 데이터의 학습을 담당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데이터를 저장하고 GPU와 소통하는 D램의 수요가 커지고 있다. GPU 세계 1위 엔비디아와 고용량 D램을 만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AI 시대 수혜 주'로 부각된 이유다.최근 기술 트렌드는 GPU와 D램의 협업을 원활하게 하고, D램의 용량을 높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D램의 용량을 키우기 위해 D램을 수직으로 패키징한 제품(HBM)을 개발하고 △GPU와 HBM을 함께 패키징해 두 칩의 데이터의 원활한 소통을 돕는 것(첨단 패키징)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HBM과 관련해선 7월 22일 한경닷컴 기사 '이대로면 큰일' 삼성도 초긴장…SK하이닉스, 심상치 않네'를 통해 살펴봤다. 첨단 패키징 분야에선 국내 전문가들이 인정할 정도로 대만 TSMC가 앞서가고 있다. TSMC는 엔비디아의 주문을 받아 직접 생산한 GPU, SK하이닉스에서 받은 HBM D램을 패키징해 엔비디아에 최종 공급한다.반도체업계에서 GPU와 HBM을 같이 패키징하는 것을 '2.5D 패키징'이라고 부른다. D램을 수직으로 쌓은 HBM은 3차원이지만, HBM과 GPU를 수평으로 배치하는 건 2차원이기 때문에 둘을 합쳐 '2.5차원'인 것이다. TSMC는 자체적으로 'CoWoS'라고 부르는 2.5D 패키징에서 압도적인 기술력을 가진 것으로 분석된다. 첨단 패키징 앞서 나가는 TSMC, 삼성은 2021년에서야 공개현대차증권의 보고서 '반도체 후공정: AI 산업과 Advanced Packaging'을 보면 TSMC는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5세대에 걸쳐 2.5D 패키징을 발전시켰다. 이 10년 동안 인터포저(이종 칩 간 연결과 고속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부품)사이즈는 3배 이상, 트랜지스터 집적도 20배, 메모리용량은 8배 이상 증가했다.삼성전자는 2021년에서야 'I-Cube(아이큐브)'라고 이름 붙인 2.5D 패키징 기술을 공개했다. 기술을 개발했지만, 본격적인 양산 단계는 아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2.5D 패키징을 앞세워 엔비디아에 GPU를 공급하고 있는 TSMC와 삼성전자의 기술격차가 상당한 상황으로 분석된다.최근엔 TSMC의 2.5D 패키징 생산능력(캐파)이 부족해 엔비디아가 GPU를 고객사에 제때 공급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왔다. 앞서 설명한 대로 엔비디아는 TSMC에 GPU 생산을 맡기고, SK하이닉스에서 HBM을 사서, 이 칩들을 TSMC가 패키징해 최종 완성한다. 그런데 TSMC의 패키징 용량이 엔비디아 GPU 수요를 못 따라잡다 보니 '품귀' 현상까지 발생했다는 것이다.TSMC는 최근 열린 2분기 실적설명회에서 "AI 열풍으로 패키징 캐파가 부족해졌다"며 "첨단(2.5D) 패키징 용량을 내년까지 2배 늘릴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외신에 따르면 TSMC는 900억대만달러(약3조 7000억원)를 투자해 대만 북부에 첨단 패키징 시설을 설립할 계획이다. 현대차증권에 따르면 TSMC의 첨단 패키징 용량은 올해 웨이퍼(반도체 원판) 기준 12만장에서 내년 21만장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 엔비디아의 GPU 출하량도 올해 140만개에서 내년엔 260만개로 늘어나게 된다. 삼성도 'I-Cube' 등 첨단 패키징 육성에 팔 걷어삼성전자도 첨단 패키징 육성에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해 말 조직개편을 통해 반도체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직속 AVP(첨단패키징)팀을 신설했다. 내년 2분기부터는 4개의 HBM을 GPU 등과 함께 배치한 '아이큐브 4'를 양산하고 3분기엔 8개의 HBM을 배치한 아이큐브 8을 양산한다.12개, 16개의 HBM을 배치하는 제품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같은 고객사들이 대용량 데이터 처리를 위해 D램 용량을 늘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고, 이를 위해 D램을 수직으로 쌓은 HBM도 더 많이 패키징하려는 것이다.삼성전자는 첨단 패키징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최첨단 패키징 협의체인 ‘MDI연합’ 출범도 준비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기업, 후공정 전문업체(OSAT), 디자인하우스 등이 모여 패키징 기술 고도화를 모색하는 기구다. 2.5D, 3D 이종 집적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메모리, 파운드리, 패키징 원스톱 제공 '턴키 서비스' 시작메모리반도체 생산, 파운드리, 패키징 등의 사업을 모두 다 하는 '종합반도체기업'으로서의 장점을 발휘하는 데도 주력한다. 파운드리사업부 주도로 고객사에 '패키징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선언한 게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예컨대 고객사가 삼성전자에 GPU 위탁생산(파운드리), HBM D램 납품, GPU와 D램 패키징까지 '턴키'로 맡긴다면 각각을 다른 기업에 맡기는 것보다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제품 개발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도 원활해질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과 이번 달 각각 미국 실리콘밸리, 서울에서 개최한 '파운드리포럼'을 통해 이 같은 승부수를 공개했다. '2030년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를 위한 삼성전자의 전장(戰場)이 파운드리에서 패키징으로 확대되고 있다.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올해 국내에서 판매하는 갤럭시 스마트폰 3대 중 1대는 폴더블폰일 겁니다.”노태문 삼성전자 MX(모바일경험)사업부장(사장·사진)은 28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런 목표를 밝혔다. 그는 “폴더블폰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개척한 선도자로서 앞으로도 혁신을 이끌어가며 시장 내 리더십을 확고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폴더블 대중화’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시장 파이를 키우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미다.“플립·폴드, 노트 판매량 넘어선다”삼성전자는 지난 26일 신제품 발표 행사인 ‘갤럭시 언팩’을 열고 다섯 번째 폴더블폰 갤럭시Z 플립5와 폴드5를 공개했다. 노 사장은 “지난해 갤럭시Z 플립4와 폴드4를 발표하며 1000만 대 판매를 목표로 잡았고, 이 목표에 거의 근접했다”며 “올해 신제품 출시로 세계 갤럭시 폴더블폰 판매 수량이 과거 갤럭시 노트 연간 판매량을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갤럭시 노트 시리즈는 매년 1000만 대 이상 팔려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노 사장은 올해가 폴더블폰 대중화의 ‘티핑 포인트’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2019년 처음으로 폴더블폰을 선보인 후 5년째인 올해는 세계 갤럭시 폴더블폰 누적 판매량이 3000만 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해외 시장 확장이 관건폴더블폰 시장 확대는 삼성전자가 당면한 최대 과제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성능이 최고 수준에 다다르며 신모델이 ‘더 놀라운’ 발전을 보여주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폴더블폰은 새로운 스마트폰 시장을 개척했다. 삼성전자는 최초로 폴더블폰 시장을 연 업계 리더지만 ‘텃밭’인 한국 시장 밖에서는 시장 확장 속도가 더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6일 “폴더블폰은 ‘핫’하지만 오직 한국에서만 그렇다”고 지적했다.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에 따르면 폴더블폰은 지난해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1%(출하량 기준)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노 사장은 후발주자들의 참전이 폴더블폰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했다. 현재 애플을 제외한 화웨이 샤오미 오포 비보 구글 등이 폴더블 제품을 내놓고 있다. 그는 “폴더블폰 시장이 어떤 특정 계층과 지역만의 ‘니치 마켓’이라면 이렇게 많은 회사가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후발주자 등장으로 삼성전자의 점유율이 낮아지는 점에 대해선 “시장 개척자는 처음에 압도적 점유율을 차지하다가 플레이어가 많아지며 점유율이 하락하는 게 정상”이라며 “핵심 기술로 리더의 위상을 지킬 것”이라고 했다.폴더블폰 ‘올드’ 이미지 탈피 핵심 무기삼성전자는 중국과 인도 시장을 집중 공략할 방침이다. 노 사장은 “삼성전자 내부에 중국 시장을 겨냥한 혁신팀을 만들며 점유율을 끌어올리고자 노력 중”이라며 “로컬 서비스와 콘텐츠가 강력한 중국 시장 특성을 고려하면 로컬 앱의 폴더블폰 최적화가 중요하다”고 했다. 또 “새로운 기술 수용도가 높은 인도는 가장 빠르게 폴더블폰 시장이 성장 중”이라며 “인도 시장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했다.폴더블폰은 갤럭시가 ‘올드하다’는 이미지를 벗기 위한 핵심 무기이기도 하다. 10대에서 아이폰 선호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지적에 노 사장은 “갤럭시는 전 세계 전 계층에서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는 게 목표”라며 “특정 세대에 편중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특히 플립5는 젊은 층이 더 좋아할 만한 제품”이라고 했다.업계는 폴더블폰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7년 세계 폴더블폰 출하량은 연간 1억 대를 돌파할 전망이다.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