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부에게 올림

주경여

지난 밤 화촉동방에 붉은 등불 꺼지더니
이른 새벽 시부모께 인사하길 기다리네.
화장 끝나고 소리 낮춰 신랑에게 묻기를
눈썹 그린 것 어때요, 어울리나요?


閨意獻張水部

洞房昨夜停紅燈, 待曉堂前拜舅姑.
粧罷低聲問夫壻, 畵眉深淺入時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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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님, 눈썹 그린 것 어때요, 어울리나요?” [고두현의 아침 시편]
당나라 시인 주경여(朱慶餘)의 ‘규의헌장수부(閨意獻張水部)’라는 시입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 일명 ‘근시상장수부(近試上張水部)’라고도 불리지요.

제목에 나오는 장수부(張水部)는 당나라 시인 장적(張籍)을 가리킵니다. 얼핏 보면 신혼 다음 날 아침의 신부 이야기를 그린 듯하죠? 실은 과거를 앞둔 주경여가 장수부에게 자기 실력이 어떤지, 과거에 붙을 만한지를 은유적으로 물어본 시입니다.

신혼에 시부모께 인사하는 것과 과거의 시험관 앞에 나아가는 것을 비유한 대목은 물론이고 신부와 자신, 신랑과 장적을 비유한 솜씨가 압권이지요. 눈썹의 농도가 시류에 맞는가 하는 것은 자기 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관의 구미에 맞는지를 물어본 것입니다.

이 시에 대한 장적의 화답도 아주 걸작입니다.

아리따운 여인 화장하고 거울을 떠나면서
어여쁜 줄 알면서도 또다시 중얼댄다.
가지런한 비단옷이야 사람만큼 귀하지 않지만
한 곡조 노래는 족히 만금에 해당하네.

越女新妝出鏡心, 自知明豔更沉吟.
齊紈未足人間貴, 一曲菱歌敵萬金.

과거시험을 앞두고 마음 졸이는 친구에게 ‘그 정도 솜씨면 충분히 합격하고도 남을 것’이라며 이를 ‘만금에 해당한다’고 표현했군요. 주경여의 시가 여성을 화자로 내세운 만큼 화답시도 여성 화자로 응대했습니다. 상황과 수사(修辭)를 절묘하게 아우른 심리묘사도 일품이죠.

장적이야말로 빼어난 시인이어서 친구의 글솜씨를 금방 알아본 것입니다. 그의 화답시 덕분에 주경여의 이름값도 높아졌지요. 이 이야기는 <당시기사(唐詩紀事)>에 전합니다.

장적은 그때 수부원외랑이라는 낮은 관직에 있었지만 시를 잘 써서 한유, 백거이, 원진, 이신 등과 같은 문인이나 조정 대신들과 친분이 두터웠지요. 그는 주경여의 과거 응시용 글을 조정 관원들에게 널리 소개했는데 모두가 좋아했답니다. 친구의 속 깊은 배려 덕분에 주경여의 과거 급제는 ‘떼어 놓은 당상’이었죠.

승진이나 큰 시험을 앞둔 친구가 있다면 이 일화를 들려주며 힘을 불어넣고 의욕을 북돋아 주면 어떨까요?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유심작품상, 김만중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