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이우 비르투오지. 평창대관령음악제 제공
키이우 비르투오지. 평창대관령음악제 제공
“모든 공연을 인생의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하고 오르고 있어요. 지금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유일한 소원은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고 일상을 되찾는 것입니다.”

전쟁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앗아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피폐해진 땅에서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도, 학생들의 시끌벅적한 대화 소리도 쉬이 찾을 수 없다. 오로지 시끄러운 총소리와 폭발음, 뿌연 연기만이 삭막한 공간을 채울 뿐이다. 우크라이나 국민 중에는 러시아의 공격에 맞서고자 직접 총과 칼을 들고 전장으로 뛰쳐나가는 이들도 있지만, 더욱 적극적으로 세계무대에서의 연주 기회를 넓히면서 자국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촉구하는 예술가들도 있다.

2016년 창설된 이후 세계 명문 클래식 음반사인 낙소스와 일곱 차례 연이어 앨범을 발표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끈 우크라이나 악단 ‘키이우 비르투오지’도 그중 하나다. ‘키이우 비르투오지’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이달 26일부터 8월 5일까지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 등 강원 일대에서 열리는 국내 대표 클래식 음악 축제 ‘평창대관령음악제’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다.

공연을 앞두고 한국경제신문과 서면으로 만난 악단의 예술감독 드미트리 야블론스키는 “세계 곳곳을 돌면서 다양한 관객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우리의 심장을 강하게 뛰게 한다”며 “한국에서 우리만의 색채를 담은 연주를 선보일 수 있다는 것에 깊은 감사를 느낀다”고 했다. 이어 그는 “단원들이 내뿜는 감정적 에너지에 청중이 완전히 빠져들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완성도 높은 연주를 보여주겠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악단인 키이우 비르투오지가 지난 25일 강원 고성군 비무장지대(DMZ) 박물관에서 연주하고 있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제공
우크라이나 악단인 키이우 비르투오지가 지난 25일 강원 고성군 비무장지대(DMZ) 박물관에서 연주하고 있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제공
우크라이나인으로 구성된 악단이지만 예술감독인 야블론스키는 러시아 출신의 음악가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지만, 러시아를 떠나 음악 활동을 이어온 지 어언 50년이 됐다"며 "음악 안에서 국적은 어떠한 문제도 될 수 없다. 단원들이 우크라이나인이란 것과 지휘자가 러시아인이란 것은 우리가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가는 데 어떠한 걸림돌도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악단은 올해 공식적으로 네 차례 음악제 무대에 오른다. 비발디의 ‘사계’, 버르토크의 ‘디베르티멘토’ 등 비교적 친숙한 작품부터 아시아 초연곡인 벌리너의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야곱의 꿈''까지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그중에서도 알렉세이 쇼어의 ‘나의 책꽂이로부터(From My Bookshelf)’는 악단에게 더욱 각별한 작품이다.

야블론스키는 “악단이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았을 때, 알렉세이 쇼어가 이탈리아에서 체류하면서 연주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악단을 도와줬다”며 “그는 이미 1년 전부터 악단을 계속해서 지원해왔다. 우리에게 그의 곡을 연주하는 건 단순히 악보에 담긴 음표를 실현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그에게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느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불행하게도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비극이 존재한다. 지금 우리의 바람은 전쟁이 가능한 한 빨리 끝나는 것뿐”이라며 “음악에는 분명 국적, 인종, 종교 등을 모두 초월하는 거대한 힘이 있다.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세계 평화’를 노래할 것”이라고 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