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방관 정치인들 비겁…진정한 반성ㆍ사과해야 한다"
"2차 가해자에 실형과 징벌수준의 손해배상 책임 물어야"
"정부ㆍ지자체, 여성폭력방지법 따라 2차 가해 대응해야" [※ 편집자 주= 김재련 변호사의 오늘 인터뷰 기사는 두 번째입니다.
첫째 기사는 19일 [삶] 김재련 "박원순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스스로 당당해서 결단했다니"라는 제목으로 송고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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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련(50)은 성폭력 사건만 1천 건을 넘게 법률대리를 했던 변호사다.
이중 박원순 성폭력 사건처럼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오랫동안 집요하게 이어진 적은 없다고 그는 말했다.
김재련 변호사는 1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인들은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보통 사람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라면서 "이런 사람들이 진영논리에 빠져 반성과 사과 없이 직무 유기와 비겁한 행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민주당은 님의 뜻을 기억하겠다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피해호소인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당헌ㆍ당규를 어기면서 서울시장 후보를 냈다"면서 "이런 행위가 2차 가해를 해도 좋다는 신호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2차 가해를 한 사람에 대해서는 실형을 선고하고, 징벌 수준의 손해배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여성폭력방지 기본법은 '피해자에 대해 2차 가해가 있을 때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적극적 조처를 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을 두고 있다"면서 "국가와 지자체가 2차 가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1996년 이화여대를 졸업한 김재련 변호사는 2000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후 성폭력, 외국인노동자, 가정폭력 변론을 많이 맡았다.
고려대 의대생 성폭행 사건(2011년), 30대 남성의 60대 여성 성폭행 사건(2012년)의 피해자 측 변호를 맡기도 했다.
그는 현재 법무법인 온세상의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 변호사로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 내가 대리했던 사건의 결과가 좋을 때, 제 의뢰인이 그걸로 위안을 얻으면 보람을 느낀다.
특히 피해자가 재판 후에 결과와 상관없이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오는 용기를 내고,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보람이 있다.
-- 실망감을 느낄 때는.
▲ 실망감이라기보다는 배신감을 느낄 때가 있다.
피해가 분명한데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이 나왔을 때, 어렵게 기소됐는데 죄가 없는 것으로 나올 때는 높은 벽 앞에 서 있는 기분이기도 하고, 믿었던 검사나 판사한테 배신당한 것 같은 기분도 든다.
-- 명백한 피해에도 상대방에게 무죄가 선고되면 피해 당사자는 상당히 고통스러울 듯한데.
▲ 무죄가 나왔다고 해서 피해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증거 재판주의이고 무죄 추정의 원칙이다 보니, 오래전에 일어났던 사실에 대해 객관적으로 증명받지 못하기도 한다.
피해자는 그런 결과를 예견하면서 소송을 시작하기도 한다.
수사와 재판과정을 통해 피해자가 어떤 절망 속에서 살아야 했는지를 가해자가 알게 되기 때문이다.
가해행위에 대한 법적 심판 과정 자체가 피해자에게는 자신의 존엄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피해자들은 소송 결과보다 과정을 통해 힘을 얻는 경우가 많다.
-- 패소한 경우 피해자에게 뭐라고 말하나.
▲ 판사도 신이 아니기에 오판한다고 말한다.
피해자 진술을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 정황증거가 없기에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된 것이라고 설명해 드린다.
법원이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지만, 절대자가 가해행위에 대해 심판을 내려줄 것이라는 말을 덧붙일 때도 있다.
내가 열심히 기도할 테니 보란 듯이 멋지고, 씩씩하게 일상생활을 하자고 응원한다.
-- 1천여 건의 성폭력 사건을 대리하면서 얻은 인간에 대한 통찰이 있다면.
▲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변호사도, 판사도, 검사도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영웅을 쉽게 만드는 것 같다.
자신들이 믿는 영웅은 옳은 행동만 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건 착각이다.
사람의 특정 행위를 훌륭하게 평가할 수는 있지만 그 또한 인간일 뿐이다.
영웅도 인간이기에 잘못할 수 있고, 실수하기도 한다.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는 비판받고 책임져야 한다.
-- 성폭력을 하는 사람은 어떤 유형인가.
▲ 특별한 유형은 없다.
정치인, 기관장, 기업 임원, 교수, 사회적 저명인사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성폭력을 한다.
특히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성폭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위력 성폭력이라고 한다.
위력 성폭력의 특징은 가해자 존재 자체가 위력이어서 물리적 폭행이나 협박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 '이 사람은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은 걷어내는 게 좋다.
'그럴 줄 알았다'고 예상됐던 사람은 거의 없다.
-- 성폭력 가해자는 대체로 지인인가.
▲ 성폭력 범죄는 다른 범죄보다 아는 사이에 발생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
폭행, 상해 사건은 갈등, 반감 등으로 싸우다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건과 달리. 성폭력은 일방적이기는 하지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느낀 경우에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가 즉각 문제의식을 느끼거나 법적 조처를 하지 못한 채 참고 견디려고 애쓰는 경우가 많다.
-- 가해자는 주변의 지지와 응원을 사랑으로 오해하기도 하나.
▲ 위력 성폭력, 권력형 성폭력이 특히 그러한 것 같다.
부하 직원은 상급자에게 존경심을 표하고, 친절하게 보좌하고, 세심하게 심기까지 살필 수밖에 없는 위치다.
가해자는 부하 직원의 이런 업무상 친절을 자신에 대한 이성적 호감으로 해석한다.
이것이 자기중심적 착각이다.
부하 직원은 상급자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도 항의하기 어렵다.
불편한 속마음을 드러내기도 쉽지 않다.
위력 관계, 권력관계이기 때문이다.
권력자는 끊임없이 자기 행동을 점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드러나지 않는 성폭력 사건이 많은가.
▲ 성폭력 사건은 암수율이 높다.
실제로 범행이 발생해도 드러나지 않는 사건이 많다는 뜻이다.
문제를 제기하면 지지받고 공감받는 게 아니라 행실에 대해 비난받고, 문제를 제기한 의도를 의심받고, 인신공격을 당하기도 한다.
특히 직장 내에서 피해자가 상급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경우, 상급자가 징계받은 이후에도 피해자가 조직 내에서 수군거림의 대상이 되곤 한다.
피해자들은 이런 일들이 오랜 기간 반복되는 것을 목격했기에 상관의 성폭력에 대해 침묵하게 된다.
그런 침묵을 동의로 생각하는 가해자는 더 빈번하게 성폭력을 하고, 그 수위를 높이게 되는 데, 피해자는 더는 참지 못하고 문제를 제기하게 되는 것이다.
-- 본인도 성추행당한 사실이 있나.
▲ 중학교 시절에 시외버스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어떤 남성으로부터 추행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당시 버스 안에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나는 소리를 질러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
소극적으로 양팔에 힘을 주어 가해자의 손이 내 겨드랑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의 전부였다.
공부도 잘했고 말도 잘했던 나도 그 순간 즉각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내가 소리를 지르면 사람들이 내 말을 믿어 줄까? 이 사람이 안 했다고 하면 그만 아닌가? 나 혼자 버스 탔는데 혹시 이 아저씨가 차에서 내려 나한테 해코지하면 어쩌지? 부모님이 알게 되면 창피하고 번거로워서 어쩌지?' 등의 생각들만 머릿속에 가득했었다.
-- 변호사 생활을 할 때도 그런 일을 겪었나.
▲ 한 모임에서 성적으로 불쾌한 일을 당한 적이 있다.
변호사였던 나는 그때 그 자리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분위기가 썰렁해질 것 같아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동석했던 분들이 곤란한 상황에 부닥치게 될 것도 신경 쓰였다.
당시 나는 매우 불쾌한 상태였지만 헤어질 때 환하게 웃으면서 작별 인사를 나눴다.
내가 그들에게 웃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는 사실이 나의 성적 피해를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실제 재판에서는 헤어질 때의 웃음이 그 전의 추행 피해를 부정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 성폭력을 당했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 일단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당장 고소할 결심을 하지 못한 경우에도 증거는 확보해서 안전하게 보관해 둬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부당하게 무고 꾼으로 공격당하지 않는다.
증거확보보다 중요한 것은 상담 기관 또는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핫라인 상담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상담을 통해 법적, 심리적, 의료적 지원기관과 연결될 수 있다.
상담한다고 해서 바로 고소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고소에 대한 부담감 없이 상담을 최대한 신속히 받는 게 좋다.
-- 박원순 성폭력 사건 2차 가해가 심하게 일어나는 이유는.
▲ 국가기관을 통해 사실관계가 정리됐는데도 3년여 기간에 걸쳐 2차 가해가 계속되고 있다.
주로 박 시장 지지자들이 2차 가해를 하고 있다고 본다.
그들은 사실을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믿었던 박 시장이 그럴 리가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종교적 수준의 믿음이다.
그들의 믿음 앞에서 국가인권위와 법원도 무용지물이다.
성폭력은 인권에 관한 문제인데, 진영논리에 잠겨버렸다.
정치적 논리로 사안을 바라보기 때문에 위력 성폭력이라는 본질에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다.
-- 영화 '첫 변론' 상영에 대해 민주당은 어떤 입장인가.
▲ 민주당 의원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내년 총선 공천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지만 가해자가 소속돼 있는 정당의 의원이라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공동체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보통 사람들과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정치인들이 책무이다.
네편 내편 가릴 것 없이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
그런데 침묵뿐이다.
정치적 직무 유기라고 생각한다.
그 대가는 가혹할 것이다.
반대진영에서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민주당이 정당한 목소리를 내더라도 조롱당할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 된다.
민주당이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하는 이유이다.
국가기관을 통해 인정된 사실관계조차 부정하고 왜곡하는 행위는 법치주의의 토대를 무너트리는 행위이다.
-- 민주당은 박원순 사건에 대해서는 일관성을 유지하는 듯한데.
▲ 처음에 그들이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박 시장이 사망하자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그 이후 '피해자'가 아닌 '피해 호소인'이라는 퇴행적 호칭을 사용했고, 당헌·당규를 어기면서 서울시장 후보를 냈다.
후보를 내는 것으로 책임지겠다고 했는데 언어도단이다.
후보가 당선되지 못한 후 그들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낙선이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세월호 사고에 대한 국가 책임을 묻고,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 책임을 묻는 민주당 아닌가? 박 시장, 안희정, 오거돈 사건에 대해 민주당은 앞장서서 책임졌어야 했다.
그러나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들의 무책임이 결국 가해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상황을 초래했다.
2차 가해자들의 가장 큰 심리적 뒷배는 무책임한 정치인들이다.
-- 민주당 의원들은 개인적 사과도 하지 않았나.
▲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의 사과와 반성의 메시지는 있었다.
다른 분들은 침묵을 지켰다.
'피해 호소인'이라고 한 데 대해 책임진 사람이 없었고, 박 시장이 피소된 사실이 누설된 것에 대한 어떤 조치도 없었다.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건 데 대해서도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이러니 민주당은 영화 '첫 변론'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민주당이 위력 성폭력 사건에 대해 제대로 반성하지 않고, 무책임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
-- 그 사회적 비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나.
▲ 나는 오래전에 있었던 위력 성폭력에 대해 용기를 내서 고소한 피해자분을 대리하고 있다.
수사절차가 진행되던 중 박 시장을 미화하는 다큐멘터리가 제작됐다는 보도들이 이어졌다.
피해자는 자신이 고소한 사건도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2차 가해에 시달리게 될까 봐 두렵다면서 심리적 불안감을 호소했다.
이 사례는 내가 대리하고 있으므로 피해자의 불안해하는 목소리를 직접 들었던 것이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 숨죽인 채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피해자들에게는 이런 2차 가해가 엄청난 위협이 될 것이다.
가해자의 잘못이 증명돼도 피해자가 공격당하고, 실명이 공개되고, 지지자들에 의한 사실 부정이 계속되는 박원순 사건을 바라보면서 어느 피해자가 권력자 범행에 대해 목소리 낼 수 있겠는가?
-- 성폭력 대처에 대한 그동안의 진보가 후퇴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 박 시장을 믿는다는 사람들의 2차 가해행위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명백한 해악이 상당히 크다.
피해자들이 침묵하지 않고 법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오랫동안 국가와 사회 차원에서 교육해 왔고, 수사와 재판과정에 피해자가 법률적, 의료적, 심리적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해 왔다.
지금 벌어지는 2차 가해는 그런 진전을 후퇴시키고 있다.
-- 다른 피해자들이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인가.
▲ 박 시장 사건 2차 가해는 피해자 김잔디 한 명만을 공격하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위력 성폭력 사건, 직장 내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에게 "입 다물라. 세상에 알리면 너도 이렇게 된다.
네 이름으로 살아가기 어렵게 해주겠다.
네 얼굴로 직장 다니기 어렵게 해주겠다"라고 위협하는 것이다.
지금도 진행 중인 2차 가해가 우리 공동체에 미치는 사회적 해악이 너무 크다.
-- 박원순 사건에 대한 일부 시민단체의 행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최근에 시민단체들이 영화 '첫 변론' 상영에 반대하는 집단 성명을 냈을 때 일부 상징적인 시민단체가 명단에 이름을 넣지 않은 것이 기사화됐다.
내가 알지 못하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시민단체라고 해서 다큐를 규탄하는 성명서에 의무적으로 이름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명단에 이름이 없다고 해서 그 단체가 다큐 제작을 옹호하거나 가해자를 미화하는 일이 정당하다고 생각할 리도 없다.
몇몇 시민단체 이름이 빠져 있는 것을 그 단체 공격의 빌미로 삼는 것 또한 진영 논리적인 공격이라고 생각한다.
성명서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당 단체를 비난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그동안 그 단체들은 피해자 곁에서 함께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믿는다.
-- 주요 여성단체가 광범위한 2차 성폭력 가해를 보고 침묵을 지키는 것은 이를 옹호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닌가.
▲ 여성민우회 같은 곳은 오랜 기간 피해자 지원활동을 적극적으로 해 온 단체다.
민우회가 '박 시장을 미화하는 다큐'를 옹호한다는 입장을 발표한다면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
그러나 다큐 규탄 성명에 이름이 들어있지 않다는 이유로 단체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은 지나치다.
권력형 성범죄와 일상 속 성폭력에 맞서 피해자와 연대하고 세상을 향해 목소리 냈던 사람들이고, 지금도 공동체 시민들을 대신하여 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막을 방법은.
▲ 2차 가해는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된다.
피해자 김잔디가 박 시장에게 보냈다는 편지가 공개됐고, 피해자의 얼굴 사진도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김잔디를 '잡초'라고 조롱하는 현직 변호사도 있다.
여성폭력방지 기본법에는 '피해자에 대해 2차 가해가 있을 때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적극적 조처를 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있다.
2018년에 제정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국가와 지자체가 무슨 조처를 하고 있는가? 명백한 2차 가해를 보고도 손 놓고 있다.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경기장 안에서 피해자 혼자 그들에게 맞서고 있는 것을 관중석에서 구경하고 있는 것과 같다.
-- 정부와 지자체가 구체적으로 어떤 조처를 해야 한다는 것인가.
▲ 다큐 '첫 변론' 상영에 대해 한 시민단체가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해당 다큐는 국가기관을 통해 인정된 사실관계를 부정하는 내용이 많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 행위로 형사고발 하는 방법이 있다.
해당 다큐 상영이 가능하도록 상영관을 대관하는 행위도 명예훼손에 가담하는 행위다.
방조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성매매 행위에 대해서는 성매매업소를 운영한 사람뿐 아니라 그런 불법 사업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장소를 빌려준 건물주에 대해서도 방조 책임을 묻는 것과 마찬가지다.
-- 여성가족부가 조처해야 할 사안인가.
▲ 성폭력 자체는 개인 간 법률적 문제다.
2차 가해행위는 피해자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이다.
여성폭력방지법은 이런 2차 가해행위에 대해 국가와 지자체의 적극적 조치 의무를 규정해 국가개입의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그렇다면 2차 가해행위에 대해서는 피해자 개인보다 국가기관이 관련 법률에 따른 적극적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의 존재 이유 중 하나이다.
-- 2차 가해에 대한 처벌이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 미국의 엘리자베스 진 캐럴이라는 여성이 전직 대통령 트럼프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사실과 명예훼손을 당한 사실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성폭력 자체보다 명예훼손 즉 2차 가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액이 훨씬 컸다.
나는 대한민국에서도 권력형 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에 대해 징벌에 가까운 손해배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변론' 다큐를 만든 사람들에 대해서도 배상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피해자의 손 편지와 함께 실명을 공개한 혐의로 현재 재판받고 있는 교수가 있는데, 그에 대해서는 실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결자해지다.
피해자는 법치주의 국가에서 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법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도 2차 가해가 지속하는 것은 정치인들에게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민주당의 플래카드는 지지자들에게 피해자를 마음껏 공격해도 좋다는 시그널이었다.
그 시그널이 2차 가해의 시발점이 됐다.
안희정 사건, 현직 검사 미투 사건에서도 정치인들은 진영논리로 사안을 바라봤다.
민주당은 지지자들에게 지금이라도 멈추라는 메시지를 명확한 언어로 보내야 한다.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밝히고, 피해자에게 제대로 사과하고, 2차 가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책임감 있게 이행해야 한다.
피해자 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피해자를 위해, 더욱 나은 세상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
이미 발생한 일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데에 있어서 '늦었다'는 없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