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나 전설, 동화 속에 등장하는 몇몇 동물들은 신령한 능력을 지녔다고 여겨진다. 우리나라와 동아시아에서는 대표적으로 꼬리 아홉 달린 여우, 구미호가 그렇다. 반면 스코틀랜드의 고원지방(하이랜드)과 북유럽에서는 목숨이 아홉 개라고 알려진 고양이, 카트시(Cat Sí)에 대한 전설이 있다.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 1628~1703)의 동화 <장화신은 고양이>에 등장하는 바로 그 고양이이다.

샤를 페로는 발레와 인연이 깊은 프랑스의 동화작가이다.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The Sleeping Beauty, 1890)’와 ‘신데렐라(Cinderella, 1948)’는 모두 페로의 동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19세기 러시아에서 완성된 고전발레에는 여러 형식이 있는데, 줄거리와 전혀 상관없이 여흥과 재미거리로 넣는 ‘디베르티스망(divertissement)’도 주요한 형식이다.

샤를 페로의 동화 속 주인공들은 디베르티스망에 종종 등장한다. 특히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3막 결혼식 장면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늑대와 빨간 두건의 춤도 페로의 동화 <빨간 두건>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다. 장화신은 고양이도 이 장면에는 등장하는데, 암컷 고양이에게 반해서 쫓아다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보통 백조가 발레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알고 보면 고양이야말로 발레와 잘 어울리는 동물이다. 가장 큰 이유는 고양이의 움직임이 중력을 거스르며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여기저기로 뛰어오르기 때문이다. 요정이나 다름없는 움직임이다. 그래서 발레에서는 고양이의 움직임에서 따온 동작도 있다. 바로 파드샤(pas de chat)이다. 프랑스어로 샤(chat)는 고양이로, 파드샤는 ‘고양이 걸음’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파드샤는 공중에서 고관절과 무릎이 양옆으로 바라보는 턴아웃 상태로 마름모 모양의 다리 모양을 만들면서 가볍게 뛰어오르되 두 다리가 한꺼번에 뛰어오르지 않고 한 다리씩 순차적으로 움직이며 착지하는 동작이다. 공기를 가르며 가볍게 다리가 교차되는 모습은 상당히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래서 종종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장면에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파드샤 동작이 가장 주요하게 쓰인 경우는 ‘백조의 호수’에서 백조들이 추는 춤에서다. 2막에서 4명의 여성 무용수가 팔을 교차로 잡고 등장하는 4인무가 그것이다. ‘네 마리 백조의 춤’으로 불리는 이 장면은 백조들의 군무 중 하나로 어린 백조들의 춤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거나 귀여운 무용수들이 주로 맡는다. 서로 손을 엇갈려서 잡고 춤추는 모습과 머리와 다리의 움직임을 똑같이 맞춰서 움직이며 정교한 미를 자아내는 게 특징인데 중간에 등장하는 파드샤는 어린 백조들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한껏 살려낸다.
발레 <백조의 호수> 2막 中 ‘네 마리 백조의 춤’ © The Royal Ballet
발레 <백조의 호수> 2막 中 ‘네 마리 백조의 춤’ © The Royal Ballet

이 장면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종종 다른 작품들에서 패러디되기도 하고 유머러스한 장면으로 연출되기도 한다. 남성 무용수로만 구성돼 있고 코미디 발레 작품들을 공연하는 트로카데로발레단(Les Ballets Trockadero de Monte Carlo)의 ‘네 마리 백조의 춤’도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제40회 서울무용제’에서 네 마리 백조의 춤을 다양하게 변화시켜 개성 있는 4인무로 창작하는 ‘4마리 백조 페스티벌’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었다.
트로카데로발레단의 ‘네 마리 백조의 춤’ 中 파드샤 동작 ©Les Ballets Trockadero de Monte Carlo
트로카데로발레단의 ‘네 마리 백조의 춤’ 中 파드샤 동작 ©Les Ballets Trockadero de Monte Carlo

동물의 움직임에서 가져와 발레의 동작으로 완성한 경우는 백조의 날갯짓, 고양이의 발동작인 파드샤, 그리고 말의 발동작인 파 드 슈발(pas de cheval)이 대표적이다. 특히 백조가 주연이라면 고양이는 빠지면 섭섭하고, 작품의 재미를 더하는 비중 있는 조연이기도 하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세계를 바라본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고양이의 발은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어디를 어떻게 걸어도 불필요한 소리를 내지 않는다. 하늘을 밟는 것처럼, 구름 위를 가는 것처럼, 물속에서 석격을 울리는 것처럼, 동굴 속에서 슬을 켜는 것처럼,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불교의 가르침의 진수를 스스로 깨우치는 것처럼”

이 글을 읽고 고양이의 걸음걸이는 세상이 태풍같이 휘몰아쳐도 그 속에서 자신만의 도도한 신념을 지키는 소리 없는 힘이자 현자의 자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길고양이에게 집사로 간택 받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반려묘 시장은 지난해보다 18.8%나 급증했다는 뉴스도 나왔다. 8월 8일은 국제동물복지기금(IFAW)이 만든 세계 고양이의 날(International Cat Day)로 지정되기도 했다. 우리가 고양이에게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에도 휩쓸리지 않는 태도에서 여유롭게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주위가 시끄러울수록 기억한다. 소리 없이 공기를 가르며 어두운 공기를 밝게 변화시키고, 8월의 더운 공기조차 산뜻하게 만들어줄 파드샤의 사뿐한 자태를.

이단비 작가·<발레, 무도에의 권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