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 대통령 충실히 따르는 존재 전락" vs "대통령 만난 적도 없다"
재판부, "법정은 길거리 싸움과 달라야" 제지
정의용·검찰, 탈북어민 강제북송 재판서 '격한 설전'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으로 기소된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의 재판에서 정 전 실장 측과 검찰이 격하게 설전을 벌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1부(허경무 김정곤 김미경 부장판사) 심리로 21일 열린 정 전 실장,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의 4회 공판준비기일에서 양측은 상대를 강하게 질책했다.

정 전 실장 측이 먼저 "검찰이 전 정권을 흠집내기 위해 권한을 남용했다"며 포문을 열었다.

정 전 실장의 변호인은 "검찰은 수십장에 이르는 공소장을 통해 범행 동기, 공모관계를 소설 쓰듯 썼다"며 "귀순 의사를 표시하기만 하면 어떤 경우에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처벌해야 한다는 만용을 부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사건 기소는 대북관계를 대결로만 보는 윤석열 정부의 정파적 이해관계에 좌우된 것"이라며 "전 정권에 흠집을 내기 위한 검찰의 공소권 남용"이라고 비난했다.

또 한 시민단체가 발간한 보고서 내용을 인용하며 "검찰이 대북정책을 사실상 결정하는 주체로 기능하고 있다'며 "윤 대통령의 뜻을 충실히 떠받드는 존재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검찰은 "검찰의 기소 자체를 시민단체의 평가로…"라며 변호인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양측의 격한 설전에 법정이 소란스러워지자 재판부는 "잠깐만요"라고 외치며 양측을 진정시켰다.

검찰은 발언 기회를 얻어 "'기소권 남용', '주제를 넘었다'는 것은 거리 현수막에서 쓰는 표현 아닌가"라며 "신성한 법정에서 변호사로서 법리적 판단 표현을 써 논쟁하면 좋겠다"고 반박했다.

또 "변호인의 발언은 국가 기관으로서 한 축을 담당하는 검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며 "검사도 변호사의 특정 성향이나 정치적 입장을 언급해 공격해선 안 되지 않나"고 지적했다.

이어 "자꾸 이 사건 수사가 대통령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데 저는 윤 대통령을 만난 적도 없고 같이 일한 사실도 없다"며 "검사들은 주어진 증거를 법과 원칙에 따라 검토해 철저히 수사했을 뿐"이라고도 강조했다.

재판부는 "양측 모두 상대방에게 감정이 상했을 수 있는데 법정에서의 싸움은 길거리에서 주먹질하는 싸움과 달라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형사소송법과 관행에 따라 만들어진 전통을 양측이 지키며 재판에 임해 달라"고 주의를 줬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증거에 대한 피고인들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9월 8일 공판준비기일을 한 차례 더 열기로 했다.

정 전 실장 등은 2019년 11월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것으로 지목된 탈북 어민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혔는데도 강제로 북한에 돌려보내도록 관계 기관 공무원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시킨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