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괴물의 이름은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다
‘프랑켄슈타인.’ 이 단어를 들으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나요. 초록빛의 괴기스러운 얼굴, 머리에 박힌 나사못 같은 걸 상상하기 쉽죠.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그 괴물의 이름은 프랑켄슈타인이 아닙니다.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소설을 영화로 옮긴 작품으로 더 유명합니다. 제임스 웨일 감독이 만든 영화 포스터에 등장한 초록빛 피부 인조인간이 워낙 인상적이라 ‘프랑켄슈타인’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돼버렸죠.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자기 손으로 인간을 만들려 했던 괴짜 과학자의 이름이에요.

소설은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들어 있는 액자 구조예요. 프랑켄슈타인이 들려준 기묘한 이야기를 영국 청년 로버트 월튼이 편지에 적어 누나에게 전해주는 형식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은 제네바공화국의 귀족으로, 과학자를 꿈꾸며 독일로 유학을 갔죠. 그곳에서 여러 사람, 동물의 사체를 짜깁기해 키 2m40㎝의 거대한 ‘창조물’을 만들어요. 누렇고 쪼글쪼글한 얼굴에 거무스름한 입술. 막상 살아 숨쉬는 창조물을 마주하니 혐오감을 느낍니다. 이름조차 붙여주지 않습니다. 소설 속에서도 시종일관 ‘창조물’ 혹은 ‘괴물’이라고 부를 뿐입니다.

사람들의 멸시에 지친 괴물은 자신을 닮은 가족을 갖고 싶다고 말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또 다른 괴물을 만들기를 거부합니다. 분노한 괴물은 이후 프랑켄슈타인의 친구와 신부를 죽입니다. 복수심에 불탄 프랑켄슈타인은 방랑하다 죽기 직전에 월튼에게 발견된 것이었죠. 프랑켄슈타인이 세상을 떠난 뒤 괴물은 세상에 다시는 자신 같은 존재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스스로 불타 없어지겠다며 사라집니다.

오늘날 ‘공상과학(SF)의 효시’로 불리는 이 소설은 ‘인간이 창조주가 됐을 때 그 결과물을 인간이 완벽하게 예상하거나 통제할 수 있을까’ 하는 공포스러운 질문을 담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 등 기술이 발전해 갈수록 이 소설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죠. 전북도립미술관은 오는 28일부터 인간과 기계의 공존에 대한 특별전 ‘미안해요, 프랑켄슈타인’을 개최해요. <프랑켄슈타인>을 재해석한 소설 <가여운 것들>은 엠마 스톤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져 곧 개봉됩니다.

이 소설은 혐오와 낙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모든 인간이 나에게 죄를 지었는데 왜 나만 죄인으로 몰려야 하지?” 괴물은 묻습니다. 소설 속에서 그를 따뜻하게 대해준 존재는 앞 못 보는 노인 ‘드라세’뿐이었어요.

괴물에게 제대로 된 이름조차 없다는 건 의미심장해요. 아무도 그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의미니까요. 그런데 이 소설에서 이름이 없는 건 괴물뿐이 아니었습니다. 저자 셸리는 18세의 나이에 익명으로 소설을 출간합니다. 어린 여성이 책을 내기 힘든 사회적 분위기 탓이었습니다. 어쩌면 인간은 미지의 존재, 그 잠재력을 다 가늠할 수 없는 존재를 무턱대고 배척하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