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베덴의 서울시향, 디오니소스를 얻고 아폴론을 잃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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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7월 2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츠베덴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의 정기연주회가 있었습니다. 이미 올해 초에 전임 서울시향의 상임 지휘자였던 반스카가 갑자기 낙상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츠베덴이 대타로 등판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참 좋은 인상을 받았기에(특히 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 서곡의 신선했던 울림은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이번 공연은 오래 전부터 큰 기대를 가지고 기다려왔습니다.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은 협연 없이 1부, 2부 모두 교향곡으로 채워졌는데요, 특히 베토벤 교향곡 7번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4번 등 어느 곡보다도 화려한 피날레를 가진 곡인지라 서울시향 상임 지휘자 취임을 축하하는 성격의 이번 공연을 위한 멋진 선곡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날 공연에서 오케스트라의 배치는 1, 2 바이올린 파트를 나란히 배치한 후 오른쪽으로 첼로, 비올라의 순으로 펼치는 소위 '푸르트뱅글러식' 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베토벤 7번의 경우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 파트 상호간의 대화가 강조된 곡이어서 이들 파트를 무대 좌우로 양날개처럼 펼친 소위 유럽식 오케스트라 배치가 베토벤에 의해 입체적으로 설계된 음향을 정교하게 맛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점에서 좀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완전히 미국식으로 하지는 않고 절충형이라고 할 수 있는 '푸르트뱅글러식' 배치를 통해 최소한 비올라 파트만이라도 좌우 입체감을 느낄 수 있는 구성이었다는 점은 다행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공연에서는 지휘자 포디엄 부근에서 울리는 음향을 한 번 체험해보고자 그로부터 아주 가까운 롯데콘서트 홀 C구역의 맨앞자리를 선택하였는데, 예비박을 넣는 지휘자의 호흡과 몸동작, 그리고 클라이막스에서 가끔씩 발구르는 소리까지 느낄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이날 연주에 대하여 우선 총평을 먼저 말씀 드리면 악보에 없는 인위적 템포 조정이나 과도한 루바토 사용을 자제하면서 선이 굵고 매우 다이나믹한 표현을 만들어내는 츠베덴 스타일이 더욱 분명히 드러난 연주였지만 미시적 관점에서 군데군데 좀 더 섬세하고 세련된 피니싱 터치가 좀 아쉬웠던 그런 연주였습니다.
우선 1부 프로그램인 베토벤 교향곡 7번의 경우 음악의 아폴론적인 측면과 디오니소스적인 측면이 거의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츠베덴의 이날 연주는 오케스트라의 기량을 극한으로 몰아세우며 이 곡이 가지는 디오니스소스적인 측면을 잘 드러낸 연주였습니다.
그리고 템포 설정의 측면에서도 츠베덴은 과거 국내 오케스트라에서 만연하였던 낭만적인 접근 방식을 벗어던지고 베토벤이 악보에 지시한 원래의 템포에 한 걸음 더 바짝 다가선 즉물주의적 인템포를 구사하였는데, 이 점은 매우 신선하였습니다.
특히 2악장의 경우는 베토벤의 Allegretto라는 지시어가 무색하게 이를 장송행진곡처럼 연주하는 것이 다반사였는데, 츠베덴은 이러한 낡은 관행을 과감히 털어내고 인템포로 이 2악장을 멋지게 조탁해내어 베토벤이 드러내고자 했던 느낌이 원래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다만, 이렇게 전반적으로 도취적이고 디오니소스적인 측면은 이 교향곡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곡의 나머지 절반인 아폴론적인 측면까지 균형있게 표현해내기 위해서는 매우 논리적이고 정교한 아티큘레이션과 리듬, 그리고 음향밸런스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1악장의 발전부 중간에서 그 핵심 동기라고 할 수 있는 붓점 리듬에 의한 음형(아래 파란색 박스 부분)은 곡이 진행되면서 쉼표가 삽입되어 마치 스카타토의 느낌으로 변해가면서(아래 빨간색 박스 부분) 결국 클라이막스에 오르는 것으로 베토벤은 매우 섬세한 아티큘레이션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발전부 중간
물론 밋밋한 템포에 섬세함도 없는 연주들도 허다한 상황에서 이날 츠베덴의 인템포에 의한 굴곡있는 조형감각은 그 자체로도 높이 살만하였지만, 그렇게 선이 굵고 박력있는 스타일로 멋진 숲을 그려가는 과정에서 나무들의 섬세한 결이 뭉게지지 않고 살아나도록 하였더라면 정말 최고가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음향의 밸런스의 측면에서도 이날 음향은 아주 호쾌하였습니다만, 전반적인 밸런스, 특히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 등 내성부의 처리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예를 들어, 베토벤 7번 교향곡 1악장에서 아래 악보와 같이 제시부의 주제가 노래될 때,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의 미묘한 리듬이 이와 결합되면서 매우 독특하고 다이내믹한 리듬과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따라서 이 경우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충분히 들리도록 음향의 밸런스를 맞추되 제1바이올린과 톱니바퀴처럼 리듬이 수직으로 잘 결합되는 것이 중요한데, 이런 디테일에서의 섬세함이 좀 아쉬웠습니다.
발전부에 있어서도 이러한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음향 밸런스가 매우 중요한데, 츠베덴은 제1바이올린에 치중하여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약동하는 리듬(아래 악보의 붉은색 박스 부분)을 충분히 잘 드러내지 못하여 좀 아쉬웠습니다.
제2바이올린/비올라
마지막 4악장까지도 Allegro con brio치고는 너무 빨라 거의 Presto con fuoco 수준이었는데, 4악장을 과속 주행할 때 얻게 되는 엑스터시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베토벤이 지시한 알레그로의 범위를 벗어나 프레스토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릴 경우, 작곡가가 섬세하게 지정해 놓은 모든 표현들이 속도에 묻혀 드러나지 않는 부작용이 수반됩니다.
물론 이날 청중들은 1부에서부터 종래 경험하기 어려웠던 과속 주행에 짜릿해하며 큰 환호를 보냈습니다만, 앞으로 너무 이러한 스타일이 고착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살짝 들었습니다.
인터미션 시간에는 몇몇 주자들이 스테이지에 먼저 나와 연습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는데, 특히 피콜로 주자가 3악장의 아래 일부 패시지를 연습하는 것을 들어보니 역시 매우 빠른 템포였습니다. 물리적으로 위와 같은 정교한 아티큘레이션을 제대로 표현해내기 어려운 속도였고 세부가 당연히 뭉게지는 소리여서 다이나믹하게 몰아부치는 츠베덴의 스타일이 2부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에서도 거의 그대로 적용되겠구나 하는 예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2부 역시 아주 마쵸적으로 시원시원하게 몰아부치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그러한 템포가 1악장이나 2악장까지는 큰 무리가 없이 잘 흘러갔습니다. 운명이 지배하는 가혹한 현실과 (물방울과 같이 끝이 흐려지는 선율이 수반되는) 꿈의 세계가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모습도 매우 잘 그려냈고 꿈의 세계 이후 늘 이어지는 활기찬 리듬(이것은 공교롭게도 1부의 베토벤 교향곡 7번의 1악장의 핵심 동기의 리듬과 크게 닮아 있습니다)도 아주 예리하게 잘 표현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3악장 이후부터였습니다. 꿈의 몽환적인 세계를 그리는 현의 피치카토부터 너무 인템포로 몰아부치다 보니 술에 취해 들어가는 느낌이 아니라 각성의 느낌마저 들었고, 이어지는 행진곡풍의 리듬도 행진곡으로서의 성격을 완전히 잃은 채 앞서 말씀 드린 피콜로의 아름다운 가락도 휘리릭 겉만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4악장 역시 1부의 베토벤 7번 4악장처럼 차이코프스키는 템포를 알레그로로 지정하였는데 역시 거의 프레스티시모 수준으로 광포하게 몰아부치다 보니 (속이 후련한 느낌은 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디테일이 모두 뭉게져버리는 희생은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민중들이 즐기는 민요가락에 의한 주제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을 드러내는 부분에서 트라이앵글을 강조한 것은 참신한 시도였고, 그렇게 프레스티시모로 몰아부치는 과정에서도 큰 그림의 골격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 단단함이 인상적이었습니다만, 후반부에 다시 소환되는 1악장의 운명의 동기의 일관성 있는 템포까지 감안하여 작곡가가 4악장의 템포로 지시한 알레그로의 범주를 벗어나 시종 광포한 템포로 일관하다 보니 오히려 거대한 코다의 형성은 방해를 받은 감도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것은 츠베덴만의 스타일이라기보다는 현장에서의 일반 청중들의 말초적 반응에 신경을 쓰는 요즈음의 많은 지휘자들에게 공통된 경향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츠베덴의 연주를 통해 감지되는 일종의 경향성으로 읽히기도 해서 약간의 걱정은 들었습니다.
사실 츠베덴이 홍콩필과 연주한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이 정도의 광포한 속도는 아니었기에 혹시 이번 연주에서는 지휘자가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될 서울시향의 기능적 가능성을 극한으로 몰아부치며 시험해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홍콩필 - 베토벤 7번
뉴욕필- 베토벤 7번
뉴욕필 - 차이코프스키 4번
아무튼 이러한 지휘자의 주문을 (비록 가끔씩 헉헉 대는 대목도 있었지만) 받아 소화해내는 서울시향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당연히 객석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 열광을 했습니다.
결국 서울시향에 취임하는 자신의 데뷔 무대에 걸맞게 연주회를 광란의 축제 분위기로 몰아가려는 포석이었다면 그 점에 있어서는 분명 목표는 달성한 연주였다고 할 수 있는데, 앞으로 츠베덴이 마초적 카리스마를 통해 빚어내는 디오니소스적인 쾌락에 더하여 애호가들의 아폴론적 욕구까지 충족시켜 줄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임성우 변호사/클래식 칼럼니스트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은 협연 없이 1부, 2부 모두 교향곡으로 채워졌는데요, 특히 베토벤 교향곡 7번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4번 등 어느 곡보다도 화려한 피날레를 가진 곡인지라 서울시향 상임 지휘자 취임을 축하하는 성격의 이번 공연을 위한 멋진 선곡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날 공연에서 오케스트라의 배치는 1, 2 바이올린 파트를 나란히 배치한 후 오른쪽으로 첼로, 비올라의 순으로 펼치는 소위 '푸르트뱅글러식' 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베토벤 7번의 경우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 파트 상호간의 대화가 강조된 곡이어서 이들 파트를 무대 좌우로 양날개처럼 펼친 소위 유럽식 오케스트라 배치가 베토벤에 의해 입체적으로 설계된 음향을 정교하게 맛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점에서 좀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완전히 미국식으로 하지는 않고 절충형이라고 할 수 있는 '푸르트뱅글러식' 배치를 통해 최소한 비올라 파트만이라도 좌우 입체감을 느낄 수 있는 구성이었다는 점은 다행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공연에서는 지휘자 포디엄 부근에서 울리는 음향을 한 번 체험해보고자 그로부터 아주 가까운 롯데콘서트 홀 C구역의 맨앞자리를 선택하였는데, 예비박을 넣는 지휘자의 호흡과 몸동작, 그리고 클라이막스에서 가끔씩 발구르는 소리까지 느낄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이날 연주에 대하여 우선 총평을 먼저 말씀 드리면 악보에 없는 인위적 템포 조정이나 과도한 루바토 사용을 자제하면서 선이 굵고 매우 다이나믹한 표현을 만들어내는 츠베덴 스타일이 더욱 분명히 드러난 연주였지만 미시적 관점에서 군데군데 좀 더 섬세하고 세련된 피니싱 터치가 좀 아쉬웠던 그런 연주였습니다.
우선 1부 프로그램인 베토벤 교향곡 7번의 경우 음악의 아폴론적인 측면과 디오니소스적인 측면이 거의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츠베덴의 이날 연주는 오케스트라의 기량을 극한으로 몰아세우며 이 곡이 가지는 디오니스소스적인 측면을 잘 드러낸 연주였습니다.
그리고 템포 설정의 측면에서도 츠베덴은 과거 국내 오케스트라에서 만연하였던 낭만적인 접근 방식을 벗어던지고 베토벤이 악보에 지시한 원래의 템포에 한 걸음 더 바짝 다가선 즉물주의적 인템포를 구사하였는데, 이 점은 매우 신선하였습니다.
특히 2악장의 경우는 베토벤의 Allegretto라는 지시어가 무색하게 이를 장송행진곡처럼 연주하는 것이 다반사였는데, 츠베덴은 이러한 낡은 관행을 과감히 털어내고 인템포로 이 2악장을 멋지게 조탁해내어 베토벤이 드러내고자 했던 느낌이 원래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다만, 이렇게 전반적으로 도취적이고 디오니소스적인 측면은 이 교향곡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곡의 나머지 절반인 아폴론적인 측면까지 균형있게 표현해내기 위해서는 매우 논리적이고 정교한 아티큘레이션과 리듬, 그리고 음향밸런스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1악장의 발전부 중간에서 그 핵심 동기라고 할 수 있는 붓점 리듬에 의한 음형(아래 파란색 박스 부분)은 곡이 진행되면서 쉼표가 삽입되어 마치 스카타토의 느낌으로 변해가면서(아래 빨간색 박스 부분) 결국 클라이막스에 오르는 것으로 베토벤은 매우 섬세한 아티큘레이션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발전부
클라이막스
물론 밋밋한 템포에 섬세함도 없는 연주들도 허다한 상황에서 이날 츠베덴의 인템포에 의한 굴곡있는 조형감각은 그 자체로도 높이 살만하였지만, 그렇게 선이 굵고 박력있는 스타일로 멋진 숲을 그려가는 과정에서 나무들의 섬세한 결이 뭉게지지 않고 살아나도록 하였더라면 정말 최고가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음향의 밸런스의 측면에서도 이날 음향은 아주 호쾌하였습니다만, 전반적인 밸런스, 특히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 등 내성부의 처리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예를 들어, 베토벤 7번 교향곡 1악장에서 아래 악보와 같이 제시부의 주제가 노래될 때,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의 미묘한 리듬이 이와 결합되면서 매우 독특하고 다이내믹한 리듬과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따라서 이 경우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충분히 들리도록 음향의 밸런스를 맞추되 제1바이올린과 톱니바퀴처럼 리듬이 수직으로 잘 결합되는 것이 중요한데, 이런 디테일에서의 섬세함이 좀 아쉬웠습니다.
제2바이올린/비올라
발전부에 있어서도 이러한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음향 밸런스가 매우 중요한데, 츠베덴은 제1바이올린에 치중하여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약동하는 리듬(아래 악보의 붉은색 박스 부분)을 충분히 잘 드러내지 못하여 좀 아쉬웠습니다.
마지막 4악장까지도 Allegro con brio치고는 너무 빨라 거의 Presto con fuoco 수준이었는데, 4악장을 과속 주행할 때 얻게 되는 엑스터시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베토벤이 지시한 알레그로의 범위를 벗어나 프레스토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릴 경우, 작곡가가 섬세하게 지정해 놓은 모든 표현들이 속도에 묻혀 드러나지 않는 부작용이 수반됩니다.
물론 이날 청중들은 1부에서부터 종래 경험하기 어려웠던 과속 주행에 짜릿해하며 큰 환호를 보냈습니다만, 앞으로 너무 이러한 스타일이 고착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살짝 들었습니다.
인터미션 시간에는 몇몇 주자들이 스테이지에 먼저 나와 연습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는데, 특히 피콜로 주자가 3악장의 아래 일부 패시지를 연습하는 것을 들어보니 역시 매우 빠른 템포였습니다. 물리적으로 위와 같은 정교한 아티큘레이션을 제대로 표현해내기 어려운 속도였고 세부가 당연히 뭉게지는 소리여서 다이나믹하게 몰아부치는 츠베덴의 스타일이 2부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에서도 거의 그대로 적용되겠구나 하는 예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2부 역시 아주 마쵸적으로 시원시원하게 몰아부치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그러한 템포가 1악장이나 2악장까지는 큰 무리가 없이 잘 흘러갔습니다. 운명이 지배하는 가혹한 현실과 (물방울과 같이 끝이 흐려지는 선율이 수반되는) 꿈의 세계가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모습도 매우 잘 그려냈고 꿈의 세계 이후 늘 이어지는 활기찬 리듬(이것은 공교롭게도 1부의 베토벤 교향곡 7번의 1악장의 핵심 동기의 리듬과 크게 닮아 있습니다)도 아주 예리하게 잘 표현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3악장 이후부터였습니다. 꿈의 몽환적인 세계를 그리는 현의 피치카토부터 너무 인템포로 몰아부치다 보니 술에 취해 들어가는 느낌이 아니라 각성의 느낌마저 들었고, 이어지는 행진곡풍의 리듬도 행진곡으로서의 성격을 완전히 잃은 채 앞서 말씀 드린 피콜로의 아름다운 가락도 휘리릭 겉만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었습니다.
행진곡과 피콜로
그리고 마지막 4악장 역시 1부의 베토벤 7번 4악장처럼 차이코프스키는 템포를 알레그로로 지정하였는데 역시 거의 프레스티시모 수준으로 광포하게 몰아부치다 보니 (속이 후련한 느낌은 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디테일이 모두 뭉게져버리는 희생은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민중들이 즐기는 민요가락에 의한 주제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을 드러내는 부분에서 트라이앵글을 강조한 것은 참신한 시도였고, 그렇게 프레스티시모로 몰아부치는 과정에서도 큰 그림의 골격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 단단함이 인상적이었습니다만, 후반부에 다시 소환되는 1악장의 운명의 동기의 일관성 있는 템포까지 감안하여 작곡가가 4악장의 템포로 지시한 알레그로의 범주를 벗어나 시종 광포한 템포로 일관하다 보니 오히려 거대한 코다의 형성은 방해를 받은 감도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것은 츠베덴만의 스타일이라기보다는 현장에서의 일반 청중들의 말초적 반응에 신경을 쓰는 요즈음의 많은 지휘자들에게 공통된 경향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츠베덴의 연주를 통해 감지되는 일종의 경향성으로 읽히기도 해서 약간의 걱정은 들었습니다.
사실 츠베덴이 홍콩필과 연주한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이 정도의 광포한 속도는 아니었기에 혹시 이번 연주에서는 지휘자가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될 서울시향의 기능적 가능성을 극한으로 몰아부치며 시험해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지휘자의 주문을 (비록 가끔씩 헉헉 대는 대목도 있었지만) 받아 소화해내는 서울시향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당연히 객석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 열광을 했습니다.
결국 서울시향에 취임하는 자신의 데뷔 무대에 걸맞게 연주회를 광란의 축제 분위기로 몰아가려는 포석이었다면 그 점에 있어서는 분명 목표는 달성한 연주였다고 할 수 있는데, 앞으로 츠베덴이 마초적 카리스마를 통해 빚어내는 디오니소스적인 쾌락에 더하여 애호가들의 아폴론적 욕구까지 충족시켜 줄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임성우 변호사/클래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