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 회의서 성명 문구 '러시아 침공 개탄→전쟁 우려' 완화
중남미 정상들, EU 기대 저버리고 러시아 규탄 거부
유럽을 방문 중인 중남미 정상들이 유럽연합(EU)의 기대와 달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성명을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을 비롯한 중남미 국가공동체(Celac) 국가 지도자 33명은 17∼18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27개국 지도자들과 정상회의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등 EU 정상들은 중남미 정상들이 "가장 강력한 말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략 전쟁을 개탄한다"는 공동 성명 초안에 서명하기를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중남미 정상들은 이를 거절했고, 결국 격론 끝에 성명은 전쟁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는 방향으로 완화됐다고 이 신문은 설명했다.

샤를 미셸 EU 상임의장은 정상회의를 시작하면서 중남미 정상들에게 러시아의 불법 전쟁을 규탄해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지구의 모든 나라는 안전해야 한다.

이는 러시아의 성공이 허용되지 말아야 할 이유"라며 "이 침공은 식량 안보와 에너지 가격, 세계 경제에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Celac 회원국 입장에서 EU의 바람은 비현실적인 요구 사항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많은 Celac 회원국은 자국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중립적인 비동맹 국가로 규정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 같은 관점을 공유하지도 않고 있다는 점에서다.

쿠바,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등 Celac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편에 서 있기도 하다.

지난해 '우파'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돼 유럽의 환대를 받은 '좌파' 룰라 대통령도 이번 전쟁에 대해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부분적인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룰라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의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세계 불확실성이 커졌다면서 경제·사회 프로그램에 필요한 자원이 전쟁에 투입되고 있고, 군비 경쟁 때문에 기후변화 대응력이 약해졌다고 비판했다.

EU는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중남미 국가들과 관계를 복원하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가 주도하는 남미공동시장(MERCOSUR·메르코수르) 자유무역협정(FTA)을 두고도 입장 차를 보이고 있다.

EU와 메르코수르는 2019년 FTA 체결에 합의했으나, 프랑스 등 주요 식품 수출국들이 지지하는 환경 문제 관련 세이프가드에 브라질이 반발하면서 개시가 지연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