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는 본캐, 록-탱고는 부캐! 오은철의 모먼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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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전공해 슈퍼밴드 우승한 '멀티 뮤지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오은철이 10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로비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몇년 전 세상에 나온 '부캐(부 캐릭터)'란 신조어는 이제 초등학생도 다 아는 용어가 됐다. 또 다른 자아, 낯선 나의 모습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하지만 누구나 다 부캐를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본업을 잘 챙기면서 부업에서도 성과를 내는 게 쉬울 리 있겠는가.
이런 점에서 오은철(29·사진)은 별종이다. '본캐'(본 캐릭터)인 피아니스트 뿐 아니라 부캐인 퍼포머와 프로듀서로도 이름을 날려서다. 그런 그가 본캐인 피아노로 관객과 만난다. 최근 자신이 만든 12개의 피아노 곡으로 구성된 첫 정규 음반 ‘모먼츠’를 발매하면서다. 16일에는 서울 금호아트홀연세에서 기념 리사이틀도 연다.
최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사옥에서 만난 그는 "프로듀서 경험을 활용해 여러 장르를 결합하고 화려한 편성으로 곡을 만들 생각도 했지만 결국 내가 가장 잘 하는 피아노로 나의 얘기를 그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피아노는 오은철을 음악과 처음으로 연결해준 악기다. 그래서 피아노 앞에 설 때 자신의 본모습이 나온다. 초등학생 때 중국으로 건너가 국제학교에 다니던 그는 친구없이 외롭게 학교생활을 했다. 영어도 중국어도 할 줄 모르던 어린 오은철에게 피아노는 언어를 뛰어넘어 친구와 소통할 수 있게 하는 매개체였다.
“친구가 거의 없었어요. 그러다 교실에서 폴 드 세느비유의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쳤는데 애들이 제게 관심을 갖고 다가오더라고요. 한국 피아노 학원에서 대충 배운 곡이었는데…. "
피아노 전공을 결심한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 선화예중으로 편입했다. 피아노과에 들어가려 했지만, 작곡과를 선택했다. "한국에서 일찍이 음악하는 애들과는 접근 방식이 달랐어요. 다른 친구들은 쇼팽 에튀드를 치는데, 그때 저는 그런걸 칠 줄 몰랐거든요.(웃음). "
그는 작곡을 배우면서 자신이 만든 음악이 표현되는 맛을 깨우쳤다. "중학교 정기음악회에서 제 곡을 무대 위에 올렸습니다. 그 곡에 다들 환호하고 박수를 치더군요. 그때 알았습니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음악을 다른 사람들도 좋아한다는 걸요. " 연세대를 거쳐 미국 인디애나 음대 작곡과에 진학했지만, 클래식 작곡에 전념할 수 없다는걸 깨달았다. 학구적인 클래식 작곡이 자신에게 맞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현대음악은 음악 자체를 연구하고 깊이를 추구하는 성격이었어요. 제가 추구하는 것과 달랐죠. 특히, 같은 학교에 다니던 천재 작곡가 김택수 형을 보고 더욱 제 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웃음) 저는 학구적인 음악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함께하는 음악을 하고 싶었거든요. "
그는 과감히 학교의 품을 떠나 전혀 다른 길을 스스로 찾아갔다. 군복무를 위해 경찰군악대를 들어가 악단의 반주와 편곡을 도맡으며 음악적 저변을 넓혔다. 전역을 한 뒤로는 크로스오버, 탱고 등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와 협업했다.
팬텀싱어1의 우승자 '포르테 디 콰트로'의 예술감독을 맡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와중에 JTBC '슈퍼밴드2'에서 우승을 하며 인지도도 급격히 상승했다. 그는 슈퍼밴드에서 록밴드 '크랙실버'의 키보드를 맡았다. 이외에도 젊은 클래식 아티스트로 구성된 '클럽M'에서 편곡 작업을 맡았고, 영화 OST 작업에도 참여했다. 이처럼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며 그는 각 장르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매력을 체득했다. 그의 이런 유연함이 작곡과 편곡 작업에도 시너지 효과를 냈다.
"클래식은 정말 부드럽고 섬세합니다. 그 아름다움을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어 숨죽이고 듣게되죠. 이에 비해 다른 음악들은 굉장히 자극적으로 다가와요. 록 밴드를 했을때는 그 엄청난 음압에 자극을 받았고, 각자의 역할에 맞게 '티키타카'하며 케미가 맞을 때 극도로 황홀하고 자극적이었습니다. 이런 음악 재료를 활용해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지, 작곡가로서 항상 고민해요."
'대중형 아티스트'인 그는 자신의 곡을 무대에 올리며 피아노와 지휘를 동시에 하는 게 꿈이다. 그는 "이번 음반 작업을 하며 작곡한 곡 중 수록되지 않은 곡이 있다"며 "대규모 피아노 협주곡인데, 올림픽 개막식같은 큰 무대에서 선보이는 게 나의 꿈"이라고 강조했다. 그에게 이번 음반과 리사이틀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다양한 음악을 하면서 내 음악은 뭘까 고민하다 이번 음반 작업을 하게됐어요. 뭐가 됐든 '오은철이라는 장르'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작곡이나 편곡을 할 때 누가봐도 '오은철 음악이다'라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이번 음반이 그 여정의 첫 걸음입니다. "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