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유족이 제기한 재심서 무죄 선고 처음…총 8명 굴레 벗어
유족, 재심 대상자 20명 및 수백명의 피해자 조사 직권 청구 촉구
사북항쟁 국가폭력 희생자 4명 재심서 무죄…43년 만에 명예회복(종합)
"6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재심받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하셨을 때 좀 더 일찍 서둘러 드렸더라면 눈 감으시기 전에 무죄 판결을 받았을 텐데…그 점을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
13일 춘천지법 원주지원 형사1부(이수웅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포고령 위반 재심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사북 항쟁 국가폭력 희생자 박노연(당시 31세)씨의 딸 수정(46)씨는 법정을 나서면서 어머니 시태남(67)씨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1980년 사북 항쟁 당시 계엄 군사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옥고를 치른 아버지 박씨를 비롯해 고 오항규(당시 48세)·진복규(당시 45세)·양규동(당시 41세)씨 등 4명에게 재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사북항쟁 국가폭력 희생자 4명 재심서 무죄…43년 만에 명예회복(종합)
사북 항쟁 이후 43년 만이다.

피해자들은 43년 만에 명예를 회복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법정에 없었다.

굴레를 벗기 전 오씨는 2005년, 진씨는 1992년, 양씨는 2010년, 박씨는 2017년 각 사망했다.

사북 항쟁 국가폭력 희생자인 당사자가 아닌 유족이 제기한 재심에서 무죄 선고는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사북 항쟁 주동자로 처벌받은 이원갑(당시 40세)·신경(당시 38세) 씨가 2015년 재심에서 무죄 선고받은 데 이어 2021년 황한섭(당시 41세) 씨, 지난해 강윤호(당시 33세) 씨 등 4명도 재심 법원에서 굴레를 벗었다.

이로써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사북 항쟁 국가폭력 희생자는 8명으로 늘었다.

사북항쟁 국가폭력 희생자 4명 재심서 무죄…43년 만에 명예회복(종합)
유족과 사북 항쟁 동지회는 이들과 함께 기소됐던 나머지 20명에 대한 검찰의 직권 재심청구와 수백명에 달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직권 조사 결정을 검찰에 촉구하고 있다.

동지회는 입장문에서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도 있으나 뒤늦게라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해 준 재판부에 감사드린다"며 "후속 조치로 이들에 대한 형사 배상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끔찍한 국가폭력을 당하고도 단지 기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현행 법령에서는 어떠한 피해 구제도 받을 수 없는 수백 명의 희생자와 가족들이 보상받을 수 있도록 사북 항쟁 특별법 제정을 서둘러 달라"고 정치권과 정부에 촉구했다.

사북 노동 항쟁은 1980년 4월 21∼24일까지 당시 국내 최대 민영 탄광인 동원탄좌 사북 광업소 광원과 가족 등 6천여명이 열악한 근로 환경과 어용 노조에 반발해 정선군 사북읍 일대에서 벌인 탄광 근로자들의 총파업 사건이다.

사북항쟁 국가폭력 희생자 4명 재심서 무죄…43년 만에 명예회복(종합)
당시 피고인들을 비롯한 노동자들은 노조 지부장 부정 선거 무효화와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자 했으나 경찰이 불허하면서 충돌로 이어져 경찰 1명이 사망하고 8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항쟁 직후 당시 제1군 계엄사령부 지휘하에 군·검·경으로 구성한 '사북 사건 합동수사단'은 200여명을 구금 수사하면서 가혹한 고문 등을 일삼았다.

계엄 군법회의는 이 중 무죄 선고를 받은 8명을 포함한 31명을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처벌했다.

이때 고 오항규·진복규 씨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양규용·박노연 씨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받아 1980년 8월 형이 확정됐다.

검찰은 "당시 불법 구금 상태에서 수사가 진행된 점 등을 고려해 무죄를 구형했고, 재판부가 구형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사북항쟁 국가폭력 희생자 4명 재심서 무죄…43년 만에 명예회복(종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