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기구 아닌 외무성 국장 담화…전문가 "적대국가로 대한다는 의도"
"방북문제 아태평화위에 권한 없어"…대남기구 조평통은 폐지된 듯
북, 현정은 방북거부 '외무성'이 발표…南도 외국으로 여기나
북한이 1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측의 방북 계획에 대해 수용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대남 기구가 아닌 외무성을 발표 주체로 내세워 주목된다.

북한이 남한을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가 아닌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성일 북한 외무성 국장은 이날 담화에서 "남조선(남한)의 그 어떤 인사의 방문 의향에 대하여 통보받은바 없고 알지도 못하며 또한 검토해볼 의향도 없음을 명백히 밝힌다"고 밝혔다.

현 회장 측은 내달 4일 고(故) 정몽헌 회장 20주기에 맞춰 방북을 추진 중으로 지난달 27일 통일부에 대북접촉신고를 제출했는데, 정부가 이에 대한 수리여부도 결정하기 전에 사전에 방북을 차단한 것이다.

남북관계가 악화한 상황에서 애초 남측 인사의 방북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작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방북 불수용' 자체는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대남기구가 아닌 외무성이 이를 발표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통상 남북관계 현안은 과거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나 통일전선부(통전부) 등 대남기구에서 발표해왔고, 최근에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직접 발언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달라진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이에 대해 "남북관계를 특수관계가 아닌 일반적 국가관계로 보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남쪽과의 관계를 '민족끼리'가 아니라 대적 관계로 설정하고 우리를 동포로 대하는 게 아니라 적대 국가로 대한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북, 현정은 방북거부 '외무성'이 발표…南도 외국으로 여기나
특히 북한이 "금강산 관광지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영토의 일부분이며 따라서 우리 국가에 입국하는 문제에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는 아무러한 권한도 행사할 수 없다"고 밝힌 점도 주목된다.

그간 현대 측은 아태평화위와 접촉해 방북을 위한 초청장을 받고, 통일부로부터 승인받으면 방북했는데 이런 방식이 더는 유효하지 않음을 공식화한 것이다.

향후 방북을 위해서는 다른 나라처럼 비자를 발급받는 절차를 거쳐야 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양 총장은 "우리가 다른 나라에 갈 때 비자가 필요하듯 그런 외교관계에 따라 외국인에 준해 남측 인사의 방북을 처리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북측이 "남조선의 그 어떤 인사의 입국도 허가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을 보면 다른 방식으로도 방북은 쉽지 않아 보인다.

남측의 통일부에 해당하는 기구로 여겨졌던 조평통은 아예 폐지됐을 가능성이 크다.

과거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리면 남측의 통일부 장관과 북측의 조평통 위원장이 수석대표로 마주 앉았다.

그러나 김여정 부부장이 2021년 3월 담화에서 "현 정세에서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 대남 대화기구인 조평통을 정리하는 문제를 일정에 올려놓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폐지를 경고했고 실제 이후 조평통의 활동은 관찰되지 않고 있다.

이번 북한의 현 회장 방북 거부는 최근 급속히 냉각된 남북관계를 보여준다.

현 회장은 2018년 8월만 하더라도 정몽헌 회장 15주기 행사차 금강산을 방문했지만, 5년새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북한의 거듭된 무력 도발로 한미일 안보협력이 강화되고, 북한은 이를 빌미로 군사력 강화에 열을 올리면서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다.

더군다나 북한은 최근 해금강호텔 등 금강산의 남측 시설을 무단으로 철거하고 있어 현 회장의 방북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애초에 희박했다.

임 교수는 "현 정부에 대한 적대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아무리 자신들이 친분이 있다는 사람이더라도 이번 초청으로 의미 있는 대남 메시지를 보내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 자체를 원천 봉쇄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연합뉴스